중앙과 중앙이 아닌 곳. 단 하나의 기준으로 삶은 달라진다. 중앙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중앙에 사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역에서 멀어진다. 나보다 먼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의 실제 삶은 드라마 속 허구의 삶을 마주하는 일보다 멀고 낯설다.
중앙에서 지역을 바라볼 때, 대개 지역 범주로 바라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떤 삶을 꿈꾸는지 들여다볼 기회가 사실 드물다. 정부의 지역 정책도 사람을 대신하는 것을 앞세운다. 인구수로 지역의 힘을 말하고, 각종 산업에서 비롯된 수치로 삶을 설명한다. 중앙은 지역 사람들이 생산할 수 있는 가치를 환산하여 경제력으로 본다. 면적이 커도 인구수가 적으면 한데 묶으려는 시도도 그 일환이다. 지역 사람들은 자의와 상관없이 중앙의 잣대로 언제든지 동원될 수 있는 ‘인력’으로 치환되곤 한다.
사실 지역보다 사람이 우선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애초 사람이 있어야 마을이 형성되고 힘이 생긴다. 좋은 의도의 프로젝트가 생겨도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고, 또 그들의 삶을 모르면 좋은 기획도 도출할 수 없다. 로컬 콘텐츠를 담은 매체 운영자들은 지역을 바라보는 중앙의 어법이 잘못되었음을 경험으로 인지하고 지역을 우위에 둔 시선으로 선회한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지역의 본질에 바짝 다가서며 자생(自生)의 길을 모색한다.
뉴스레터 ‘안녕 시골’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 개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고, 로컬 비즈니스 미디어 ‘비로컬’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비즈니스를 연결한다. 각종 정보를 중앙에 실어 나르고, 지역 홍보를 빗대어 손에 잡히지 않는 가능성을 다루는 시기는 지나간 듯 보인다. 다양한 미디어와 플랫폼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재, 자신들만의 목소리와 색깔을 갖춰 지역 상생에 도움이 되고 매체 스스로도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그 길목에서 만난 화두가 다시, 사람이다.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안녕, 시골>
안녕, 시골 시즌 1 배너 이미지 ⓒ안녕시골
어마어마 캐릭터 ⓒ안녕시골
안녕, 시골 시즌 3 배너 이미지 ⓒ안녕시골
‘도시민을 위한 랜선 시골라이프’. 2020년 7월부터 매주 금요일 발송하는 뉴스레터 <안녕, 시골>의 모토이다. ‘안녕, 시골’을 알기 위해서는 브랜드쿡의 존재를 알 필요가 있다. 브랜드쿡은 1996년부터 시작된 광고홍보 대행사이다.
특이할 만한 부분은 업(業)의 분야가 농업과 농촌이라는 것. 지역에 관한 오랜 내공을 갖춘 회사에서 보내는 뉴스레터가 <안녕, 시골>이다.
농촌의 삶을 다양한 기획으로 전달해온 브랜드쿡은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 ‘어마어마’를 만든다. ‘어쩌다 마을, 어서와 마을’을 줄인 말인 어마어마는 2022년 구축되었다. 전국 각 마을에서 일어나는, 다시 말해 사람이 모이는 프로젝트를 한데 모은다. 그런데 플랫폼도 있고 프로젝트도 있는데 결정적으로 사람이 없다면 어떨까? 해마다 콘텐츠 리뉴얼을 해온 뉴스레터 <안녕, 시골>은 어마어마에서 쌓은 경험으로 사람에게 중심을 둔 기획에 집중하기로 한다.
<안녕, 시골>을 구독하는 독자는 시골에 대한 관심과 로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스스로 지역을 선택해 살 수도 있는 세상에서 시골의 삶을 다룬 뉴스레터는 지역과 지역 사이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브랜드쿡의 강미숙 대표가 <안녕, 시골>을 처음 기획할 때 화두 삼은 질문은 ‘전국에 100명의 시골 친구들이 있다면?’이었다. 그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관계’가 되길 바라고, 그 관계의 시작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능하면 로컬 영역에서 많이 알려진 사람들보다 곳곳에서 재미있게, 의미 있게 일하는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며 읽고 볼거리를 만든다.
‘시골 친구’는 리뉴얼된 <안녕, 시골>의 새 코너이다. 뉴스레터에 등장한 인물들을 통해 지역을 알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고, 종국에는 나도 그 지역에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다. 사는 지역은 달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안녕, 시골>의 첫 번째 목표이다.
<안녕, 시골>은 지난 6월까지 총 153호를 발송했다. ‘이런 일은 공공에서 해야 하는 사업 아니냐’는 지인들의 조언을 들으며 27년째 업력을 쌓고 있는 강미숙 대표는 로컬 콘텐츠가 깊게 뿌리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찾은 듯 보인다. “지금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나 사업은 공공의 자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이러한 자금은 마중물은 될 수 있지만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에요. 지속가능한 콘텐츠 사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자본의 투입이 필요해요. 시골친구로 등록된 분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이뤄지는 지역 사업과 프로젝트에 스스로 비용을 들여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늘리려고 해요. 아마도 그들은 도시 친구이겠지요?”
로컬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비로컬>
비로컬의 B.I. ⓒ비로컬
일러스트로 표현된 비로컬이 하는 일. ⓒ비로컬
로컬다이브는 지역 생태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는 현장이다. ⓒ비로컬
매주 금요일마다 발송되는 페이퍼로컬 초대장 ⓒ비로컬
비로컬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거쳐 실제 독립 미디어가 되어 2018년 로컬 커넥트 스타트업 비로컬(BE LOCAL)로 출발한다. 비로컬은 지역에서 삶과 일을 고민하고, 자유롭게 구축하는 대상을 포괄하는 제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곳에서’라는 비로컬의 슬로건은 변화한 라이프스타일의 의미를 품고 있다. 사람들은 획일화된 가치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은 취향의 영역과 가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비로컬 미디어에 등장한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삶을 대변하고 지지하는 목소리이다. 전국 로컬 크리에이터를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 사이에 형성된 담론들을 담았다. 비로컬은 콘텐츠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사업을 병행해왔다. 지역 박람회와 토크쇼와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로컬 창업을 컨설팅하는 등 비즈니스 영역과 연결하고 있다.비로컬의 김혁주 대표는 “로컬 비즈니스 영역에서 창업으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가는 개인과 회사들이 이제 사람이 지역을 살리는 일을 전개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인구 감소로 지역이 소멸된다고 하지만, 실제 소멸되는 것은 정부 기관과 세금일 뿐 지역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지역 환경과 특수성이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지역 환경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비로컬과 비슷한 시기에 창간한 로컬 미디어 스타트업들 대부분이 경영상의 문제로 문을 닫았다. 그 바람에 비로컬은 국내 로컬 데이터를 많이 확보한 회사가 되었다. 온라인 콘텐츠와 실제 지역 내의 콘텐츠, 사람과 로컬이 만나는 플랫폼의 역할을 계속해 선순환시키며 끊임없이 다음을 고민하고 있다. 비로컬은 비:트립과 비:팝업 등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준비 중이다. “현재 비로컬은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 브랜드를 엮어서 로컬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시켜 구체화하고 있어요. 자신만의 삶을 지역에서 자유롭게 꿈꿀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던 비로컬의 BE는 ‘Better Experience’, 더 나은 경험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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