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3년 여름호_만나다
만나다 : 사람을 통해 지역문화를 만납니다
132명의 귀촌인을 ‘배출’한 학교랍니다.
개교한 지 26년이 된 제천간디학교의 전경 ⓒ 제천간디학교
그 많던 ‘한국의 서머힐’은 다 어디로 갔나? 한때 활발했던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잠잠하다. 혁신학교니 자립형 사립고니 공교육의 틀 안에서 여러 움직임이 일어나는 동안 대안학교는 이슈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이제 연혁이 20년 이상된 대안학교들도 즐비한데 그동안 어떤 성과를 남겼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을까?
우리 대안학교의 오늘을 알아보기 위해 교육학 연구자 혹은 교육철학자로 활동하다 제천간디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교육 현장의 야전사령관이 된 이병곤 제천간디학교 교장을 만나보았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비켜서서 어떤 답을 찾고 있는지, 대안학교의 힘든 여건 속에서 어떤 길을 찾았는지 물었다.
만나보니 역설적인 답을 찾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안학교가 가야 할 길을 닦은 것이 아니라 대안학교가 지역사회에 살아남을 수 있는 터를 닦았다. 하루 이틀 닦은 터가 아니라 2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닦은 터다. 교사와 귀촌한 학부모와 졸업 후에도 지역에 남은 학생들이 함께 닦은 터다. 어떻게 터를 닦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제천간디학교 이병곤 교장은 2017년 취임한 이래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제천간디학교
대안학교가 주목받았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관심이 좀 꺾인 것 같다.
많이 어렵다. 비인가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층이 엷어졌다. 내로라하는 역사를 가진, 아주 좋은 대안학교들도 신입생을 모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단 취학 아동 수가 전반적으로 줄었다. 공교육이 안 변한다 안 변하다 해도, 혁신학교 도입과 운영 등 변화가 있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줄어서, 물리적 환경변화로 인해서 교육 환경이 좋아졌다. 특히 초등 대안학교를 선택할 이유가 줄었다. 보통 초등 대안학교가 잘되어야 그 졸업생을 받아서 중등 대안학교도 운영 유지가 되는데, 어려워졌다. 대안학교를 보낸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비주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예전처럼 자녀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한 자녀 가정의 부모가 아이를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기숙형 시골학교에 보낸다는 결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안학교 내부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비인가 대안학교는 핵심이 ‘탈입시 선언’이다. 20여 년 전에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만 해도 인성 교육이 될 것처럼 보였는데, 현재의 학부모는 ‘어떤 다른 교육과정을 보여줄 것인지’, ‘우리 아이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부분에 대해 비인가 대안학교가 체계적인 정리와 답변을 설득력 있게 내놓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대안학교를 고민하는 부모들은 설득당하고 싶은데, 그것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가 가르치는 이들 측에서 부족했다.
대안학교에서 일반학교로 전학 가는 학생들도 있다.
대안학교가 모든 아이들에게 적합하지는 않다. 특히 불안도가 높은 아이들이 있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이를 해소하고 싶어하는데 대안학교에서는 이게 확인되지 않는다. 그것에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제천시교육지원청 지원하는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사)간디공동체가 협력 파트너로서 시행해오고 있다. 제천간디학교 과학 교사가 진행하는 <별 보는 밤> 교육프로그램에 덕산초등학교 아이들이 참여해 별을 관찰하고 있다. ⓒ 제천간디학교
대안학교 초기에 붐이 형성되는 데 있어서 386세대 부모들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교육에 대한 그들의 정의감이 작용했던 것 같다.
초창기에 그런 영향이 분명히 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중산층, 의식 있는,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전문직 부모들이 많았다. 초창기에 근무했던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사, 변호사, 약사, 법조인, 대기업 중견간부의 자녀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직업의 부모는 거의 없다. 일반 회사원이나 자영업자 그리고 공교육 교사 자녀들이 많다.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시간’을 선물로 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자녀를 보내는 분들이다.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부모들이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들이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서사가 있다. 하나는 ‘탈옥 서사’라고 부르는데, ‘내가 겪었던 청소년기 불행을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반복시켜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보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의미한 경쟁 트랙을 도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행복 서사’가 있다.
여러 대안학교 중 간디학교는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는가? 경남 산청, 충북 제천, 충남 금산, 세 곳에 있다.
‘사랑과 자발성으로 더불어 행복한 사람'을 키운다는 교훈을 세 지역 학교 모두 공유한다. 그런데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각 캠퍼스마다 다르다. 제천은 6년 통합제로 운영된다는 것이 강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입학해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다. 중간 편입이 없다. 산청간디고등학교는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라 학력 인정을 받는다. 나중에 산청간디중학교와 산청간디어린이학교도 생겨서 나름 초중고 체계를 갖췄다. 산청의 중학교 이름은 '산청간디마을학교'이다. 공동체성, 전인교육, 세계시민교육이라는 교육철학 지향점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간디어린이학교도 초등 대안학교로는 드물게 기숙학교다. 금산은 금산간디중학교와 금산간디고등학교가 분리되어 있다. 금산간디고등학교의 경우 특히 생태환경과 예술 분야, 프로젝트 학습 등을 교육과정의 중심에 두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개발, 적용하려고 시도해 왔다. 금산 읍내와 가까워서 졸업생들이 전통시장 안에서 매장을 여럿 내고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들락날락협동조합’을 만들어 나름 지역에 정착하려는 시도를 해왔는데, 코로나 시기를 거치는 동안 큰 시련을 만나 고전했다.
제천간디학교 이병곤 교장은 교장실 절반을 나누어 자신의 수업 진행에 쓰거 나 교사와 학생들의 회의 장소로 내어주는 등 공용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제천간디학교
제천간디학교에 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현장 교사 출신이 아니라 오랫동안 교육 연구자 혹은 교육철학자로 활동했다.
교육학 연구를 시작할 무렵, 석사과정 때부터 대안학교는 나의 화두였다. 1995년에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와 『새로운 학교, 큰 교육이야기』라는 책을 함께 펴냈는데 집필자 이름을 ‘대안교육을 생각하는 모임’으로 정했었다.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다. 교육은 실천이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유학 시절에도 공부의 주제로 대안교육을 두었다. 영국의 서머힐을 여러 번 방문하고, 인터뷰 하고, 기사도 송출하면서 현장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깊어졌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근무할 때 공립대안학교 실태 조사와 새로운 공립학교 설립과 관련한 연구를 맡아 보고서를 썼는데 현장을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들어보지 않으니, 글이 공허했다. 그래서 50대 초반에 결행하게 되었다. 학교 운영계획안을 내고 학부모와 교사들 앞에서 발표도 여러 번 하고, 정책 토론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제천간디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현장에 와보니 어땠나?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나, 달랐나?
비유하자면, 매우 좋은 산업기술이 있는데, 적절하게 프리젠테이션 하지 못하고 투자를 못 받은 회사의 느낌이었다.
잘 버텨냈고 살아냈다. 그것을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고 설득력 있게 외부 세계에 알리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대안교육의 숙성도를 내부에서 본 셈인데, 제천간디학교는 어떤 숙성을 이뤘다고 보는가?
교사의 헌신도가 매우 높은 학교다. 여기 교사회 표현으로는 ‘뼈와 살을 갈아 넣으면서 만들어가는 학교’라고들 하는데, 학생들의 정서적 돌봄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일반 학교는 교과 담당 교사의 지식 전달이 핵심인데 여기는 아이들과의 공감과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 중1, 중2 학생들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까지 교사가 옆에서 견뎌준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을 나누면서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곁을 지킨다.
주민 모임 ‘마실’의 실행 협의체 <궁리단>과 제천간디학교 학생회 임원들이 만나서 간디교육문화센터 1층 공간 사용 규칙을 협의하고 있다. ⓒ 제천간디학교
교무실 전경. 제천간디학교는 교사들의 헌신도가 높다. 정서적 돌봄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 제천간디학교
대안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일반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받은 느낌을 말할 때 공통적으로 하는 표현이 있다. ‘동생들 같다’, ‘아이들 같다’라는 말이다. 스스로 공동체의 규약을 만들고 함께 갈등을 풀어내고 어려움을 해결했던 경험이 없는 일반학교 아이들의 심리적 미숙이 보인다는 것이다. 대안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어른이 되는 과정을 터득하게 한다.
요즘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커리큘럼을 중시한다고 했는데, 제천간디학교는 어떤 특성이 있나?
초기에는 교과 중심의 교육을 했는데 점차 통합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통합적인 교육을 하려는 시도가 꽤 많이 진척되어 있었다. 단순히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타서전 쓰기’로 해서 남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지역의 역사문화 탐방 계획을 세우고 다녀온 감상을 보고서로 작성하게 하는 등 대안적 교과과정에 대한 실천과 실행 방법이 잘 전수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아이들이 집단을 이뤄가는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다. 방금 전에도 한 주를 여는 시간을 가졌다. 학년별로, 혹은 개인별로 전교생 앞에서 15분씩 전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기회가 잦다. 6월에는 모든 학생이 학년별로 학교 밖으로 나가 ‘움직이는 학교’를 실행한다. 오늘 전체 모임 시간에는 4학년 학생들이 6월 3주 동안 교외 프로젝트 수행 계획을 들려주었다. 대구를 방문하는데 왜 그 도시를 선택했고, 무엇을 배우고 오려는지 발표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을 찾아가고 미군정 하에서의 민중항쟁 유적지를 돌아볼 것이라고 했다. 후배들이 그런 발표를 들으며 ‘4학년이 되면 저 정도 주제를 선정하고, 저렇게 풀어가는구나’ 자연스럽게 배워간다.
학교 밖 생활도 자율적으로 규율을 만들어서 한다고 들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 ‘칭찬합시다’ 시간도 있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하는 시간도 있다. 사과문이 게시되기도 한다. 이런 시간을 통해 ‘규칙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구나’ ‘우리가 정한 규칙을 어기면 사과를 하는구나’ 하면서 민주주의를 익혀간다. 규칙이 합당하지 않으면 바꾸는 절차도 있다. 이런 자율적인 규제가 잘 정착되어 있다.
제천간디학교 교장 부임 후 중점적으로 한 일은 무엇인가?
2017년 2월에 부임했으니 이제 7년 차다. 제도상으로 가장 많이 바꾼 것은 통합반 운영이다. 학년과 상관없이 10명 단위로 묶어서 통합반을 만들어 1주일에 5시간씩 함께 활동하게 했다. 기숙생활을 하기 때문에 학년별로 위계가 너무 꽉 잡히면 경직되니까, 통합반을 통해 친해질 수 있도록 해서 학교 분위기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었다.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는 과목들이 있나?
예술 향유를 중시한다. 음악 수업을 받으면 음악을 싫어하고, 미술 수업을 받으면 미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향유하고 창작하는 수업을 도모하고 있다. 지적으로 뛰어난 친구들만큼, 신체 운동능력이 뛰어난 친구, 예술 창작 능력이 뛰어난 친구들도 주목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키운 능력을 뽐내는 시간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떤 방식을 찾아서라도 해낸다.
이를테면?
대동제 전야제 같은 큰 행사가 다가오면 갑자기 댄스 공연팀이 몇 개 조직된다. 연습실 시간을 나눠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서 일과가 끝나서 한 팀이 못하게 되면 아침 6시에 내려와서 아침밥 먹기 전에 연습한다. 꼭 성사시키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낸다. 밴드 동아리도 마찬가지다. 문화축제나 대동제를 하면 비슷한 방식으로 연습실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 아이들의 창작욕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다. 학교는 그것을 실현해 내는 ‘마당’이 되어 주면 된다. 이제는 외부에서도 찾는다. 청주에서 노동절 대회를 열면 민중가요 몸짓 동아리 ‘기지개’가 초청 공연을 한다. 충북 청소년 문화축제에서는 우리 학교팀 ‘불구실’이 대상을 받았다.
주민 모임 '마실'이 주관하는 장터 '호호장'에 퓨전 국악 연주단 이 초빙되어 공연하는 장면. ⓒ 제천간디학교
마을에 자리한 '간디교육문화센터' 뒤편의 공유 공간.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위한 야외 모임 및 간식 나눔을 위해 설치되었다. ⓒ 제천간디학교
일반 학교에서 하는 커리큘럼은 어떻게 소화하나?
대안학교에서 모든 교과를 지식을 위한 수업으로 운영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 있는데 바로 읽고 쓸 줄 아는 리터러시, 즉 문해력이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능력을 중시했다. 그리고 ‘관계의 교육학’에 주목했다. 학생과 학생 사이, 학생과 교사 사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 서로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관계를 만드는 데 주목했다.
부모들은 믿고 따라주는가?
두 가지를 부모에게 부탁한다. 모든 것을 상의해서 풀어가겠지만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한다. 공교육 교사인 학부모도 있지만 교육과정과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우리가 설계한 교육과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학입시와 명확한 선을 그어줘야 했다. 입학 전에 여기는 입시와 관련해서 준비를 안 해준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부모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
부모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이들이 써내는 보고서, 한 학기마다 끝날 때 하는 교과 발표, 프로젝트 끝나고 갖게 되는 보고회 등을 통해서 증명한다. 대체로 아이가 1~2학년 때는 부모들이 ‘바른 선택한 거 맞나?’ 의아해하다가, 3~4학년 때 폭풍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의 교육 방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아이가 성장하는 지점을 확인하면서 학교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 측은 학생에 관한 정보를 학부모와 늘 공유하면서 일상적인 관계망을 확보해 둔다.
보통 대안학교 부모들은 학교 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여하지 않나?
학교가 재정적으로 늘 어려운데, 이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고, 그렇다고 학비를 올리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풀지 않고, 같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건설적인 답을 만들어낸다. 학부모들이 ‘제천간디학교 장학회’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장학장터’ 밴드 게시판을 보면 ‘바질 키워서 페스토 만들었어요’, ‘명이나물 장아찌 담궈서 팔아요’, ‘시골 통밀빵 구웠으니 보세요’라는 학부모들의 판매 안내글이 하루가 멀다고 올라온다. 이 같은 방식으로 물품을 판매해 수익금을 만든다. 1년에 5,000만 원 안팎의 장학금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해서 교육비를 납입하기 어려운 열일곱 가정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준다.
문제 해결까지 함께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학교를 지켜가는 의지로 구현되고 있다. 장터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도 된다. 경제적인 혜택 외에 이를 넘어서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대안학교를 유지하는 대안적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들에게 이병곤 교장은 어떤 존재인가?
학부모들이 나를 가지고 논다(웃음). 전자 명함을 디자인해서 빵을 만들면 ‘간디제과 대표 이병곤’이라고 하고, 건어물을 팔 때는 ‘간디수산 대표 이병곤’이라고 이름을 새겨 넣는다. 그렇게 나를 가지고 노는데, 재밌다.
제천간디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문화의 밤> 행사에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는 포스터. 문화 행사 이외에도 외부의 명사 초청 특강이 교내에서 열리는 경우 마을 주민들에게 알려 참여를 독려한다. ⓒ 제천간디학교
주민 모임 ‘마실’이 매달 주최하는 학습 강좌 <주막학교> 진행 장면. 2023년 5월에는 성공회대학교 김창남 교수를 초청하여 한국 대중음악사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 제천간디학교
위기는 기회다. 제천간디학교에게도 그랬다.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은 낮아지고 학교의 재정은 궁핍해졌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며 길을 찾아냈다. 아니, ‘터’를 닦아냈다. 제천간디학교는 지역 공동체의 핵심이 되었고 그 중심에 선 교장은 ‘간디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제천간디학교는 더이상 섬이 아니다. 덕산면이라는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부모들 중에 귀촌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학교에 자주 오고 길이 멀어서 오면 자고 간다. 입학식이나 대동제를 하면 1박 2일 동안 제천시 덕산면에 머문다. 들락날락하면서 학교 주변 마을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곳 덕산면이 마음에 들어서 귀촌하신 분들이 제법 된다. 제천간디학교가 개교한 지 26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132명이 귀촌해서 살게 되었다. 귀촌 학부모가 29가구에 57명, 제천간디학교 교사와 그 자녀들 36명, 간디학교에 자녀를 보내지는 않았고, 자신이 교사도 아니지만 ‘간디러’들과 인연을 맺어서 덕산면으로 온 ‘범 간디인’ 11명. 귀촌 가정의 미성년 자녀 28명까지 모두 합치면 132명이다.
귀촌한 부모들도 나름 공동체를 만들지 않았나?
주민자치모임 ‘마실’을 만들어서 지역사회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마실에서 ‘주막학교’라는 성인교육 강좌를 한 달에 한 번씩 한다. 10월 중하순에는 ‘수수문화축제’라는 지역축제를 연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낸 행사로 아이들도 참여해 판매 부스를 운영한다. 공연도 상당 부분 우리 학교 아이들이 한다. 댄스 동아리, 스쿨 밴드가 그동안 닦은 실력을 보여주고 무술 동아리는 궁술과 창검술 시범을 하고 풍물 동아리 ‘솔뫼바람’은 길놀이로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귀촌한 분들이 지역사회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 같은데..
인구 2,000명 남짓한 면 단위에 중ㆍ고등학교 학생이 있고, 그 학부모들이 귀촌해서 지역 주민과 함께하면서 작은 생태계를 유지해 간다. 우리를 제외한 제천시 소재 고등학교 8개 가운데 7개는 시내에 있다. 면 단위에는 하나도 없다. 농민의 자녀들은 중ㆍ고등학교 시절부터 유학을 가야 한다. 버스로 통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4대 있는데 온갖 마을을 다 들러서 가니 시내까지 두 시간이 걸린다. 이 작은 곳에 마트가 3곳, 철물점이 2곳, 음식점도 문 닫는 곳 없이 늘 성업이다. 부모님들이 주말에 오가면서 숙박하고 식사하면서 지역경제를 유지해준다. 아이들 급식을 지역의 농산물로 하고 지역 방앗간에 간식용 떡을 주문한다. 공립학교는 영수증 처리를 할 수 있는 곳만 쓸 수 있는데, 우리는 사업자 등록 없는 지역 농가와도 거래한다. 그래야만 지역 농가가 살 수 있다.
지역사업에 간디학교는 어떤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나?
우리 교직원이 21명이다. 조리원 3명을 제하면 18명인데, 그 중에 전업 한 명, 파트타임 한 명을 마을에 파견했다. 전업이신 분은 ‘사단법인 간디공동체’ 사무국장이면서, 음악교사로 활동하는 분이다. 지난 4년 동안 교사대표를 맡으면서 저와 생각의 호흡을 맞췄다. 그분을 중심으로 마을과 교육을 잇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다. 다양한 공모사업에 지원해서 사업비를 마련하고 있다.
간디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일부 지역에 남아서 지역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 제천간디학교
교과과정에는 생활자립 심화과정이 필수로 포함되어 있다. 마을에 돌아와서도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 제천간디학교
그동안 어떤 성과들을 내었나.
학교에 있던 작업장(공방)을 지역에 내보내서 비누 향초 공방 ‘설렘’을 만들었다. 우리의 비전은 학교 안의 작업장을 마을에서 활용할 수 있게 규모 있는 워크숍 장소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목공방과 도예공방을 그렇게 만들려고 한다. 땅도 확보해 놓았다. 앞으로 지원사업에 공모해 사업비를 마련하려고 한다. 다양한 강의 사업도 하고 있다. 졸업생 및 재학생 학부모 두 분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꿈터’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를 포함한 덕산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돌봄과 교육이 이뤄진다.
졸업한 아이들이 마을에 남아서 지역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한 학년 당 한두 명만 마을에 돌아와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에도 생활자립 심화과정을 두고 있다. 필수 과목 중 하나다. 제천간디학교는 필수 과목이 거의 없는데 이 과목이 그렇다. 월요일 오후에 공방에 가서 함께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중에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마을에 되돌아온 졸업생이 몇 명이나 되는가?
베트남 쌀국수와 파스타 메뉴를 제공하는 카페에 2명이 있다. 마스터 셰프와 제빵사가 우리 졸업생이다. 청년마을이라는 농업회사 법인에서 청년 정착 프로그램을 하는 졸업생이 있다. 제천 지역 맥주(솔티 맥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졸업생이 있다. 술 빚는 일에 진심인 친구다. 오지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설치미술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확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졸업생은 5명 정도다. 부모님이 귀촌했기에 함께 마을에 살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친구들도 몇 명 더 있다.
학생들의 이름이 새겨진 식판. 한 학년 당 졸업생 한두 명만 마을에 돌아와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 제천간디학교
기숙사 생활을 경험한 간디학교 아이들은 공동체에서 규약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높다. ⓒ 제천간디학교
생각보다 졸업생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 같다.
잠재력이 확인되고 있다. 지역과 밀착한 학교의 대표적인 예는 충남 홍성군에 있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다. 1958년 설립되었는데 지금과 같은 성취를 이루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역 공동체 사업은 멀리 내다보고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1~2년 사이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교사, 학부모, 졸업생이 이 지역에서 각개약진하며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흥미롭다. 제천간디학교가 시즌2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안학교가 ‘대안사회’까지 만들어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대안학교를 자꾸 학업 중단 학생, 위기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덤핑’하는 곳으로만 인식했다. 그래서 대안학교 보낸다고 하면, ‘왜 멀쩡한 애를 대안학교 보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안교육이 운동으로 전개되다가 학교 형태로 시작한 것은 1997년 산청의 간디청소년학교가 처음이다. 그때의 지향점은 입시교육을 거부하고 무의미한 경쟁을 지양하고 새로운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대안학교의 초기 이념이 대안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지금 제천간디학교가 가고 있는 길이 초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안학교가 기운 것은 사회가 대안적 사회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 답을 찾고 있는 셈이다. 그냥 우리끼리 신명나게 뭉쳐서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모습이 괜찮다면 사회적 설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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