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3 여름호_짚다
짚다 : 펄떡이는 로컬 현장의 맥을 짚습니다
‘시골언니’라는 새롭고도 더없이 든든한 ‘빽’
2022년 시골언니프로젝트를 진행한 상주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 다녀왔다. 시골언니프로젝트라… ‘시골’과 ‘언니’라는 조합이 신선하다. 달리 표현하면 낯설다. 시골언니프로젝트는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2030 청년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단기 농촌체험 프로그램이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에 따른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과 ‘청년’, 더군다나 ‘여성’ 간의 연결고리는 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시골언니프로젝트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농업과 농촌을 접할 기회가 적은 청년 여성들에게 농촌에 먼저 정착한 여성들을 만나 농촌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모색해볼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2022년 8개 지역 현장운영기관이 선정되어 시골언니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상주의 시골마을 아천1리에 소재한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그 중 하나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폐교를 임대, 리모델링하여 시골살이의 근거지로 삼고 있다. ⓒ서진영
내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시골언니가 연고 없는 시골에 정착하게 된 이유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백아름 대표는 사실 ‘도시언니’였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 노량진에서 공시생으로 2년여를 보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지?’ 고민이 깊어지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1년여 직장생활도 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고, 더군다나 첫 사회생활이었던 만큼 잘 해내고 싶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버티고 있다’라는 걸 알아챘다. 그럴수록 ‘내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은 커져만 갔는데, 어느 날 사회적기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설명회에 갔다가 당시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 이장 직(職)을 맡고 있었던 장동범 씨를 만났다.
장동범 씨 역시 ‘촌사람’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귀촌했다가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은 시골마을에서 ‘홍반장’처럼 이런저런 민원을 처리해주면서 신임을 얻어 이장까지 지내게 된 인물이다.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엔 청년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청년들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기업을 모색하게 된 그가 조카와 함께 사회적기업 설명회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 대표와 같은 청년들을 만나게 됐다. 도시 청년들은 기회가 없어 힘들고, 농촌에는 청년이 없어 막막하니 도시청년이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장동범 씨는 마을로 청년들을 초대했다. 백 대표를 포함한 청년들은 그를 ‘사부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그전까지는 귀농·귀촌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상주라는 지역이 있는지도 잘 몰랐어요. 사부님과 조카분을 만나면서 이 지역을 알게 됐고, 폐교를 마을공부방 등으로 활용하고 계시다고 해서 보러 왔었죠. 그런데 공간이 너무 좋은 거예요. 마침 사부님께서 청년들이 이 공간을 기반으로 도시에서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럼 내가 여기에 와서 다른 삶을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폐교는 2011년 문을 닫은 은척중학교 아산분교 자리다. 백 대표는 2017년 여름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폐교로 이주한 청년들과 함께 2018년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처음에는 각자 예비 사회적기업을 진행했었는데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청년들이 이렇다 할 연고도 없고, 시장도 크지 않은 지역에서 사업을 꾸려가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청년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던 장동범 사부가 각자 먹고사는 일도 좋지만 다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 운을 뗐다. 그렇게 청년들이 중심이 된 협동조합,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결성됐다.
이후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이름으로 폐교를 임대한 청년들은 이곳에 ‘달두개학교’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다. 쌀·깨·고추 등을 친환경 농법으로 함께 농사짓고 판매하는 일, 지역의 소농가·여성농가·고령농가의 농산물을 가공·판매하는 일, 그리고 마을의 문화공간이자 귀농·귀촌 플랫폼으로 달두개학교를 운영하는 일이다. 셋으로 시작한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현재 청년 9명에 장동범 사부를 포함하여 기존 마을주민 2명까지 모두 11명으로 늘었다.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협동조합을 하나 더 결성했다. 농사일과 농산물 및 가공식품 판매는 청년이그린영농조합에서, 문화사업은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 총괄한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백아름 대표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원래 학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생활하고 활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공간을 가꾸어가고 있다 ⓒ서진영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 가공·판매하고 있는 제품들. 달두개상회라는 브랜드로 계속해서 판로를 개척할 계획이다 ⓒ서진영
바라는 것 없이 돕는 기쁨을 알게 한 시골마을
이미 달두개학교를 기반으로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정보도 제공하고,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는 등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던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시골언니프로젝트 사업 공고를 보고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꼭 시골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죠. 그런데 시골은 저희가 먼저 경험을 해봤으니까 특히나 이렇다 할 연고 없이 시골에서 생활하려는 청년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귀농·귀촌과 관련한 다양한 지원사업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농촌사회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백 대표의 생각이다. 여기에 스스로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데에는 자신 또한 연고 없는 시골마을에 정착하는 데 아무런 대가 없는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희한하게도 누가 뭘 도와주면 저 사람이 뭔가 바라는 게 있나,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사부님께서 저를 포함해 청년들이 시골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거든요. 처음엔 이상한 사람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는 알아요. 뭘 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좋은 거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마침 ‘시골언니’는 꼭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었다. 시골 출신은 물론 이주해 정착한 여성까지 포함하여 시골에서 살아가는 선배이자 친구로서 다양한 정보와 자원을 나눠줄 수 있는 여성이면 충분했다. 다만 교육·숙박·식사 등 참가자들이 체류하며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법인·기업·단체를 대상으로 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구성원들이 살면서 계속해서 가꾸어가고 있는 달두개학교라는 멋진 공간이 빛을 발할 차례였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에서 제작한 시골언니프로젝트 모집 포스터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시골언니@상주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백아름 대표(오른)와 마민지 씨(왼)가 이끌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시골언니, 도시 청년과 시골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다
지난해 시골언니프로젝트로 달두개학교에서 머문 도시언니는 30명이다. 8월에서 10월까지 5명씩 총 6개 기수가 8박 9일 일정으로 ‘자급자족 시골 라이프’를 맛보았다.
도시언니들은 어떤 마음으로 시골언니들을 만나러 왔을까? 참가 대상이 만 19세에서 39세 사이의 여성이었지만 이들 역시 ‘청년 여성’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을 수는 없었다. 진지하게 시골살이를 염두에 두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도시의 일상에 지친 나머지 잠깐의 쉼을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엄청나게 낭만적인 상상을 하고 온 이들 또한 없었을 리가 없다.
“시골에서 살다보면 도시에서는 너무도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인데 ‘이게 안 된다고?’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제대로 된 독립을 해보지 않았던 거죠. 그러다 보니 시골언니들에게는 요즘 표현대로 ‘부캐’가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현장운영기관마다 주제가 있었는데 저희는 저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 그대로 경험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먼저 온 언니들이 먼저 살아보고 추천하는 ‘슬기로운 부캐생활’이랄까요. 농사일도 해보고, 간단한 목공부터 스스로 치료하기 등 시골 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생활 기술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농사일은 힘들다. 그런데 도시언니들은 의외로 농사일을 즐기더란다. 평소 운동깨나 했다 하더라도 농사일을 하며 단련된 시골언니들의 체력을 따라가기 힘든데도 부지런히 농사일을 거들었다. 잡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어서 좋다는 이들도 있었고, 제 손으로 수확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도시에서는 쉬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8박 9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백 대표는 짧다고 해도 특히 시골살이를 고민하는 청년 여성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프로그램이었을 거라고 자평했다. 시골에서 무언가를 시도해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만은 않은 일이겠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에게 더 제한적인 환경인 것도 사실이다. 청년 여성 스스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 또 얼마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단번에 삶의 환경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골언니프로젝트는 청년 여성들과 농촌사회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과도 같았다.
서툴지만 최선을 다하는 도시언니들의 깨 수확 현장. 앞으로는 참깨 한 톨도 허투루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에 모두가 웃고 만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마을 어르신들의 가르침에 따라 황금들녘에서 낫으로 베어 벼를 수확해본 도시언니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시골에서 살려면 간단한 목공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생활하기 좋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시골에서는 천연염색도 생활의 기술 중 하나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고향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 ‘고향’을 선물한 시골언니들
지난해 시골언니프로젝트가 종료되고도 시골언니들과 도시언니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11월 중에 전체 기수를 대상으로 일종의 뒤풀이라 할 수 있는 ‘홈커밍데이’를 마련했는데 절반에 가까운 도시언니들이 다시 달두개학교를 찾는가 하면, 서울에서 열린 시골언니프로젝트 성과공유회 자리에 ‘상주의 든든한 히어로’라고 플래카드를 만들어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의 시골언니들을 응원하러 온 도시언니들도 있었다. 꼭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도 근처에 왔다가 들렀다며 일손을 돕고 가는 친구들도 있고, 방학 또는 휴가라며 일부러 시간을 내 오는 친구들도 있다.
“요즘 친구들에게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것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시골에 잘 안 계신 경우가 많고, 시골이라 해도 개발이 된 곳들이 많아서 예전처럼 어떤 추억, 향수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고요. 실제 시골언니프로젝트에 참가한 분들의 경우 자신들에게도 고향이 생긴 것 같아 너무 좋다는 말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뭉클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랐거나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그래서 마음속 깊이 간직할 만큼 그립고 정든 곳을 가리킨다. 사전적 정의가 그렇다. 그런데 8박 9일이라는 시간 동안에 도시언니들이 고향을 떠올렸다는 것은 도시의 청년들에게 기댈 구석, 비빌 언덕이 없다는 현실을, 그만큼 시골언니들이 도시 청년들을 환대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골언니와 도시언니들의 소풍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달두개학교 내 마을카페 아나스타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달두개학교 운동장에 마련한 트리하우스. 달두개학교 곳곳이 쉼터의 역할을 한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시골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백 대표가 마을 사람으로 산 지 꼬박 6년이 됐다. 처음에는 주소지도 이곳으로 옮기고, 여기에서 먹고사는데 마을 주민들은 자신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단다.
“다 함께 마을 활동을 하는데도 마치 농활 온 청년처럼 대하시더라고요. 저도 마을 사람이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 마을 일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시고요. 그러니까 자꾸 집착 아닌 집착을 하기도 했어요. 나도 이 마을 사람인데… 하면서요. 이제는 마을 분들도 저를 떠날 사람으로 보지 않으시고,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마을 어른들은 그 노하우를 청년들에게 전수해주고, 청년들은 가전제품이나 휴대전화 사용을 어려워하는 어른들의 급박한 민원을 척척 해결해드린다. 서로 먹을 것을 챙기고, 아픈 곳은 없는지 안부를 물으며 평소 각자의 부모자식과 나누지 못하는 정을 나누기도 한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이 도시언니들을 마을로 초대하는 시골언니프로젝트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이제는 손님을 맞을 수 있을 만큼 ‘마을 사람’으로 뿌리를 내렸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청년이그린영농조합에서 함께 일구고 있는 농사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시골언니들이 동네 어르신들과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탄생’이 아닐까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요즘 지방이 소멸될 위기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지역 소멸이라고 하지 않고 지방 소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을 빼고는 비슷비슷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구 감소를 막고자 출산을 하면 지원금을 준다거나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이전한다거나 하는 대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숫자로 가늠하는 것만 같아 씁쓸해지곤 한다. 그 가운데 시골언니프로젝트는 사람에 방점을 찍고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두르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기에서 풀 뽑고 있는 언니 보이시죠? 지난해에 시골언니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언니인데 프로젝트가 끝나고 1년 살아보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같이 살아봅시다’ 해서 달두개학교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1년 살아보기를 하고 있는 도시언니가 1년 후 도시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떤가? 백 대표는 시골에서 살아보는 경험 자체가 그의 삶에서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시골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경험해본 도시언니들에게는 나중에라도 시골에 내려올 수 있는 어떤 계기가 생기는 거잖아요. 시골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질 거란 말이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은 올해도 시골언니프로젝트 현장운영기관 모집에 지원했고, 최종 선정됐다. 6월 28일부터 10월 31일 사이에 프로젝트가 운영될 예정이다. 시골언니프로젝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백 대표는 앞으로도 시골언니를 자처하여 귀농·귀촌을 모색하는 청년들을 돕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이 뭐 별거인가, 함께 잘 사는 것이 행복이지.
도시언니들은 좋겠다, 시골언니라는 새롭고도 든든한 ‘빽’이 생겨서!
새로운 인연을 맺은 시골언니와 도시언니들. 서로 위로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청년이그린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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