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무엇으로 사는가? 로컬의 미래 혹은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다중재난(복합재난) 시대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하마스 간 전쟁이 멈출 줄 모르고, 경제 불황과 기후 위기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문화정책 환경 또한 급변했다. 인구 소멸, 지역 소멸이라는 이슈에 잘 대응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행동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지만 지역을 위한 여건도 여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역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역의 가치(로컬리티)와 문화적 가치(아이덴디티)는 어떻게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지역의 미래는 누가 어떻게 가꾸어가야 하는가. 지역 소멸, 인구 소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서사의 소멸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때다. (편집자 주)
‘서사의 위기, 지역의 미래’를 주제로 지역문화진흥원 웹진 [지:문] 신년호 좌담회를 진행했다.
고영직 편집위원장, 임선이 전남 담양군 문화도시추진단장, 유신애 경북 구미시 생활예술콘텐츠연구소 프리즘 대표,
김인섭 강원도 고성문화재단 사무국장, 최보연 편집위원
*신년좌담회 참석자
*함께 나눈 이야기
2023년, 나는 어떻게 활동했는가?
고영직 위원장:
최근 『황해문화』 30주년 기념 기념호(2023년 가을호)에서 ‘다중재난’이라는 주제를 갖고 얘기하더라구요. 지금의 위기가 어떤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개혁이라든가 정의로운 전환이 세계적으로 부진한다든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재난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다중재난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현실에서 지금 어떻게들 살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임선이:
담양은 2023년이 제5차 예비문화도시였어요. 2021년부터 2023년 최종 사업 마무리까지 보니까 사업 자체가 마을에서 시작해서 마을에서 끝났더라구요. 담양이 달려왔던 문화도시 사업은 ‘마을 안에 답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구요.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마을에 있는 한 공간을 중간 거점으로, 문화 거점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큰 자부심이 있어요. 슬로시티 창평면에 ‘달뫼미술관’을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마지막 사업이었어요. 1970년대 동네 어르신들과 마을 분들이 십시일반 벽돌을 직접 쌓은 곡식창고였는데, 화가 부부가 들어와서 ‘달뫼미술관’이라는 미술관으로 운영을 했다가 제자가 이어 받아 주민들과 함께 예술을 생활속으로 녹여나가기 위해 활동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리더로서의 역할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지역도 사업을 통해 성장하지만 내가 앞으로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나의 성장도 있더라구요.
마을형 문화커뮤니티공간으로 재탄생한 달뫼미술관. 2023년 11월에 주민분들의 초상화, 연대기, 삶의 역사가 묻은 물건들을 전시했다. ⓒ 담양군 문화도시추진단
고영직 위원장:
‘마을에서 시작해서 마을에서 끝났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마을이란 걸 어떻게 우리가 봐야 될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김인섭:
저는 고성에서 신생재단을 이끌고 있는데, 문화도시와 연계시켜보자면 고성은 2021년도 7월에 재단이 생겼어요. 저희는 고성 사람들을 발견하자라는 의미로 모든 사업에 ‘고성과 나’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활동집 이름, 책자명, 잡지 이름 모두 ‘고성과 나’라고 붙이고 사람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하니까 고성군에서도 긍정적이에요. 사회혁신에서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1)’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까? 10년 앞을 내다보고 하되 이게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효용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길게 가지는 말자, 짧게, 실용적으로 보여주려고 했죠. 그걸 저희 내부적으로는 ‘호미를 드는 마음’이라고 말해요. 잘 나가는 기계 좋은 거 갖다 쓰면 단기간에 대량생산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돈도 없고, 땅도 없고, 인프라도 없는데 그냥 호미 들고 여기저기 긁어보고 파헤치다 보면 시간 지나서 이랑도 되고, 배수로도 되고, 잡초도 끼긴 하겠지만, 이런 마음으로 2022년 활동을 했습니다.
2023년도에는 지역문화진흥원의 모두의 생활문화와 문화가 있는 날에 선정돼서 군이 좋아했어요. 이제 종잣돈을 마련해서 시민, 주민문화팀을 만들어서 2023년에 했던 사업들을 연장해서 해보려고 합니다. 공모사업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의 지표를 따라가면 다는 아니더라도 몇 개는 성공할 수 있는 여지가 남는데, 고성같이 작은 지역에서는 그 파장이 굉장히 커요.
7번 국도를 따라 고성을 발견하는 콩닥콩닥 탐사단 3기 ⓒ 고성문화재단
2022 활동기록집 ‘고성과나’ ⓒ 고성문화재단
고성 아트스테이 ⓒ 고성문화재단
고영직 위원장:
‘고성과 나’ 괜찮네요. 유신애 선생은 구미에서 문화도시 사업을 전혀 안 하고 계시죠?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시겠지만 다른 얘기를 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유신애:
지역에서 이런 일을 한 지는 오래됐고 창업을 한 지는 올해 7년 차가 됐어요. 사업을 위탁받아 중간조직 성격을 띠고 있는데 문화기획자로 15년을 살면서 인력을 존중하기보다는 소비하기만 하는 것 같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존중의 방식을 찾다가 회사 자체적으로 직원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경북권의 문화인력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의 삶의 무늬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꽁:무늬’ 프로젝트도 했었고, ‘소행성’이라는 타이틀로 예비 예술가 친구들을 만나는 사업을 했습니다. 문화 인력이나 예술가들을 단순히 창작 수혜대상으로 보는 기존의 지원이 아니라, 이들의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올해 힘들었지만 이런 일들로 버틸 수 있었고, 중간 지원 조직을 하며 행정과 마을주민들 사이에서 세심한 관계성을 만들지 못했던 게 아쉽습니다. 기초, 마을, 아주 작은 생물 단위에 대한 이야기나 이들을 대하는 방식, 세심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들이 점차 사라지겠구나 하는 공포심과 두려움, 2024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막연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문화인력들의 삶의 무늬를 살펴보았던 ‘꽁무늬프로젝트’ ⓒ 생활예술콘텐츠연구소 프리즘
예비예술인들을 발굴하고 지원했던 ‘소행성 사업’ ⓒ 생활예술콘텐츠연구소 프리즘
고영직 위원장:
이따가 기회가 되면 ‘꽁:무늬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시고요. 이 와중에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시는 최보연 선생님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웃음)
최보연:
유신애 대표님이 공포스럽다고 한 말에 공감합니다. 직장 때문에 원주로 옮겨간 지 4년 정도 됐는데(원주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지요? 원주 문화도시와 아카데미극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역문화행정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다 보니 공감할 수밖에 없어요. 문화도시 효용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원주도 사람들의 관계를 일궈내고 만들어 내는 것에 굉장한 공을 들였어요.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아카데미극장을 위해서 시민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거대한 국책사업 안에서 그걸 움직이는 사람들의 관점이나 그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문화도시를 통해서 원주를 변화시켜야 한다’라는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의제가 강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원주는 버텨야 하는 시기가 왔고 생물처럼 그 밑에 같이 있다고 느껴요. 한편으론 마음 아픈 시기를 보내고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어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고영직 위원장:
네 분 다 처음부터 세게 나가시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정책이라고 하는 게 예산이 투입되고 제도가 정비되면 지역이 활성화될 거라고 기대하지만 이게 싹 빠졌을 때 ‘정책의 소나기 효과’라는 말이 있잖아요. ‘소나기가 지나갔을 때 지역에 과연 무엇이 남을까?’를 전망하는 게 중요할 텐데요. 어쩌면 그런 면에서 우리 지역에 저력이 있는지 이런 걸 확인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까 김인섭 선생님이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호미를 드는 마음’ 이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김인섭:
개인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문화마을 사업을 2~3년 했다가 제가 빠져나오고, 코로나 이후로 그대로 멈춰 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와 면적, 우리 직원과 고성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하자’라고 해서 시작한 거였고요. 그게 지금도 유효해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미라는 단어는 ‘씨 뿌리는 마음’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화학비료 넣는 것보다 풍토부터 생각하고 처음부터 하자, 어차피 고성은 가진 것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고영직 위원장:
잘 알겠습니다. 씨 뿌리는 마음이라는 표현에서 백무산이라는 시인의 ‘정지의 힘’이라는 시가 딱 떠오르는데요.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라는 멋진 표현이 있습니다. 그동안 정책 사업에 너무 길들여진 현실에서 우리 지역을 발전, 활력, 촉진, 활성화 이런 단어 싫어해서 쓰고 싶지 않은데, 경제학자 홍기빈 선생님이 표현한 대로 ‘피어나는 삶’이라는게 가능할까. 이런 측면에서 ‘꽁무늬 프로젝트’라는 말이 솔깃해요.
유신애:
꽁꽁 숨겨 놓은 자기 삶의 무늬를 찾는다는 개념으로 대구 경북에 있는 청년 문화 인력들 한 10명이 모여서 질문을 하고 얘기를 나눴어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내 삶의 안녕을 묻고, 이 친구들한테 동료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저처럼 홀로 외롭게가 아니라 서로 안부를 물어줄 수 있는 동료를 만드는 차원에서 꽁무늬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습니다. 아까 공포를 말씀드렸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슬픈 건 뭐냐면 이 친구들한테 “그래도 나아질 거야. 내년에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는 게 너무 슬퍼요. 문화기획자로서 제가 짊어져야 할 일이죠.
임선이:
담양은 광주가 인근에 있잖아요. 아무래도 문화 활동을 하는 친구들은 광주에서 온 케이스가 많아요. 이런 환경을 바꿔보자라고 했는데 사실은 어렵더라고요. 그럼 인정하자. 우리는 어디에다 방점을 둘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아까 말한 달뫼미술관을 재오픈한 작가는 문화도시 사업을 3년간 함께 했던 예술가이고, 삶 자체를 바꾼 계기가 됐다고 얘기해요. 이 작가가 지역 어르신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간을 꾸몄는데 저도 2024년을 장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부에서는 사업이 끝나고 난 이후를 깊게 고민해보자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가치(로컬리티)와
문화적 가치(아이덴디티)는 무엇인가?
고영직 위원장:
다정한 이웃을 발견하고 동료를 만들어 주는 게 참 좋은데요. 우리가 사는 지역이 과연 안녕할 수 있는,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인지. 라임이 괜찮아요? (웃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지역을 다소 비관적으로 보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역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과연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런 조건이 되어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이게 로컬리티라는 관점하고 아이덴티티라는 관점하고 이게 서로 충돌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최근 로컬 담론이나 이런 논의에 대해서 덧붙여 주셔도 좋습니다.
김인섭:
청년 얘기와 연결해보자면 속초 같은 경우는 로컬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1세대, 2세대 이렇게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지역에서 로컬이라고 얘기했을 때 트렌디한 개념으로 지역에 이식시키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2021년, 2022년에 고성에서 만났던 청년들을 보면 이 작은 단위의 지역에서 청년이 갖고 있는 영향력은 구미와 담양과는 또 다를 것 같거든요. 같이 일하는 5~6명의 청년이 있는데, 적어도 다음, 내년 걱정은 현재 없어요. 왜 없냐면 자기가 관계 맺고 있는 지역 안에서 역할이라는 게 주어지더라고요. 가령 고성의 온다프레스 대표 같은 경우는 개인이 잘하는 것도 있지만 개인이 지역 관계에 있어서 덜 외로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적절한 간격, 적절한 멈춤, 적절히 스며들 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이 잘 맞물리기만 한다면 외지의 청년들이 지역으로 올 수 있겠다 싶어요. 중간조직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 저희가 하는 일, 행정 이렇게 세 가지를 연결시켜서 지역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고영직 위원장:
온다프레스에서 펴낸 서진영 선생의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이 책을 단숨에 읽었는데요.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이 ‘여건’보다 ‘여지’가 있는가라는 말이었어요. 지금 말씀하신 맥락하고 비슷한데, 지역 청년들이 뭔가를 시도해 보고 실험해 볼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여지’라고 표현하는 거겠죠. 과연 젊은 여성들이나 청년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가? 이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여지는 이런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로컬 담론이 과연 의미 있는 현장들을 만들어 놨는가, 사람들의 마음에 여지를 비출 수 있는 활동을 남겼는가.
최보연:
제가 늘 고영직 위원장님께 배우는데 지난 회의 때 또 ‘면면함’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배웠어요. 늘 끊임없이 돌을 쌓는 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는 그런 면면함, 지역의 면면함, 제가 지금 원주를 보면서 지역을 배우고 있는데 뼈에 하나씩 새기면서 지역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사실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이렇게 중간조직으로 활동하고, 예술 활동을 하고, 작업을 하고, 같이 만나는 청년들과 사람들의 얘기인데 사실 우리가 흔히 지역에서 늘 자원이 없다, 연결이 안된다, 쉽지 않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만 안에 한 발짝 더 들어가서 보면 늘 거기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힘을 가지고 안에서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지난 2~3년 동안 원주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봤던 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만들어 낸 면면함의 힘들이 결국은 견디게 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그게 말씀하신 ‘여지’인 거 같아요.
유신애:
지역이 자기 결정을 하려면 철학이든 문화든 예술이든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계속 비관적으로만 얘기해서 그렇지만 저희 동네는 없는 것 같아요. 내년에 저희 동네에 재단이 생기는데 거대한 이벤트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걸 존중하는 일을 해줬으면 좋겠고, 기초와 기본을 만드는 일을 재단이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하나 있어요. 지역의 가치, 시군구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로컬리티로 보면 구미는 산업도시기도 하고 전직 대통령의 도시잖아요. 거대한 두 개의 기둥으로 충분히 돌아가고 있는데 이거 외엔 아무 움직임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선생님께서 정체성이 없는 게 정체성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되게 위안이 된 게, 저희는 점처럼 다양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이분들의 캐릭터와 관계성이 너무 재미있어요. 저희처럼 관계를 맺고 묶어주는 활동가와 기획자가 있고,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마을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이런 것들이 두 개의 기둥을 넘나들면서 공백을 잘 채워주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임선이:
담양에서 예술야시장 월담의 전시 이름도 ‘면면전’이었어요. 담양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대나무, 죽녹원 이게 전체 90%예요. 문화도시를 하면서 50~60년 동안 죽세품을 만들어 오셨던 어르신과 청년들이 같이 만드는 ‘노작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어르신이 저를 불러서 “이거 하면 나 명인 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셔서 놀랐어요. 죽공예, 부채 장인 이런 분들에게는 기술, 기능 보유자라는 걸 주는데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해온 분들은 인정을 잘 못 받는 거죠. 이런 분들이 자기가 살아왔던 삶에 대한 인정을 갈구하고 계신다는 거죠. 그래서 지역이, 시군구와 기초 단체가 면면한 지역의 이야기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분들의 이야기만이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20대들이 3, 40년이 지나면 대나무가 자기 지역의 정체성이 될까? 그건 아니라는 거죠. 결국은 지역의 문화 정체성도 함께 만들어 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청년들하고도 ‘딴지 클럽’이라는 걸 만들어서 “너희 무엇이든 해봐, 딴짓 한번 해보자”며 여러 가지를 했어요. 딴짓들이 지역의 문화를 다시 재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안아가면서 축적을 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22년 노작프로젝트
죽세품을 만들었던 어르신들의 기술이 담양의 손기술장인학교로 이어지도록 콘텐츠화했다. 22년에는 전남도립대학교 학생들과 대바구니를 만들어보았고 23년에는 바구니 전수자와 죽물생심 교육과정을 가졌다. ⓒ 담양군문화도시추진단
담양에는 청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딴짓클럽. 담양의 뱅크시가 되어서 빈집 담벼락에 그림도 그려보고, 담양의 향기를 만들어내는 ‘담향’활동도 했다. ⓒ 담양군문화도시추진단
고영직 위원장:
흐르는 정체성에 대해 표현해주신 것 같고요. 정체성의 기원을 따지는 시도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기초 지자체들이 지나치게 관광 정책을 끌어들여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뭘 하잖아요. 양양이 그런 대표 지역 중의 하나인데, 관광 어떻게 봐야 합니까.
김인섭:
올해 저희들의 모토가 ‘사는 게 예술인 고성을 만들자’였어요. 고성 노을도 예쁘고 자연환경 되게 좋거든요. 관광 정책의 대상을 외지인의 유입에서만 찾지 말고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행하듯이, 일상을 여행하듯이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정책 그리고 그에 따른 행정적인 사업들이 일어난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로컬리티하고도 연결을 시키자면, 고성에 해녀가 되게 많아요. 제주도에서 시집온 해녀가 아니라, 제주도에 해녀가 너무 많아서 먹고살 걸 찾아서 여기 온 해녀들이에요. 바다 하나 갖고 바라보는 관점이 여러 가지예요. 외지에서 와서 정착한 청년들이 항포구에서 설치 미술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주제가 ‘바람에 맞서서’예요.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보기에 고성군 대부분 항포구 쪽은 바람에 맞서기 위해서 뭘 묶어놓고, 짓눌러 놓고 바람을 걱정하더래요. 사실 고성에서 내세우고 있는 문화 정체성은 금강산, DMZ 이런 거거든요. 행정의 욕망도 당연히 저희가 인정을 해 줘야 하지만, 지역에서 이러이러한 작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되게 좋지 않을까? 고성 절반 정도는 이주민이다 보니까, 다양성이 굉장합니다.
저희는 목표가 딱 하나예요. 로컬리티나 지역의 특성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고 다양한 시선들이 교차하고 넘나들 수 있도록만 만들게 된다면 우리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적인 힘이라는 건 되게 풍부해질 거다. 그런 의미에서 ‘고성과 나’라는 모토로 접근을 했던 거죠.
고영직 위원장:
프랑스와 줄리앙이라는 철학자는 하나의 해석으로만 귀결되게 만드는 것을 ‘단형화’라고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복수의 길들이 있는데 어떤 하나의 해석만을 강요한다는 거죠. 김인섭 국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일종의 특이성에 대한 이야기, 싱글러리티(singularity)에 대한 얘기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 것들이 지역에 로컬리티를 고정된 것으로 만들지 않고 흐르는 정체성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바꾸어가는 힘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것들이 지역에 축적되면서 새로운 어떤 무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은데요.
유신애:
구미는 관광에 집착을 많이 해요. 공단도시다보니까 관광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게 금오산 정도인데 굳이 금오산 보려고 관광을 오시진 않잖아요. 얼마 전에도 지자체 평가로는 나름 구미 라면 페스티벌이 성황리에 끝났다고 얘기하시는데, 목적이 관광을 위해서예요. 요즘 K-드론, K-불꽃 이런 게 많아서 관광의 뜻을 찾아보니까 관자가 볼 관(觀)자, 광자가 빛(光)이랑 세월 광자더라고요. 단어로만 풀면 사람들이 말하는 의미가 아니었던 거죠.
2022년에 금오천에서 3년 동안 예술가 친구들과 축제를 했는데, 시의원 한 분이 오시더니 “며칠 전에 푸드페스티벌에는 3만 명이 왔는데 이 축제는 3천 명도 안 돼 보인다” 하시더니 예산이 30% 이상 줄었어요. 마을에서 5명으로도 축제를 할 수 있는 건데 활동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그렇죠. 지역 축제를 경험하면서 ‘관광은 사실 이런 뜻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나름대로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고영직 위원장:
관광이라는 뜻이 주역에 ‘관국지광(觀國之光)’이라는 말에서 나왔고, 원래 뜻이 그 지역의 문화를 본다라는 뜻이에요. 원래 어원이 그렇습니다.
지역 소멸 시대, 서사의 위기 시대에
기초자치단체 시군구는 무엇으로 사는가?
최보연:
관광은 아까 주역의 뜻처럼 본래 지역의 문화를 본다, 그 지역에 얼마나 예쁜 부분들이 많은지 성찰하면서 바라본다는 그 의미가 와전되어 정책적으로 쓸 때는 외부로 향하는 힘에 방점을 두잖아요. 제가 강원영상위원회 회의를 들어가서 원주 아카데미극장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스토리를 팔아야 되는데, 스토리를 안 팔아서 그렇다”는 거예요. 스토리를 팔면 사람이 올 거라고. 답답했어요. 스토리텔링이라는 건데, 사실은 스토리셀링을 말하는 거죠. 근데 최근에 한병철 선생님의 <서사의 위기>라는 책에서 그 얘기를 딱 하시더라고요. ‘스토리셀링에 포커스를 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없다.’ 우리는 서사에 주목을 해야 되는데 계속 스토리텔링, 셀링을 목적으로 하는, 소비하기 위한 쪽으로만 자꾸 가고 있어요.
원주도 그랬지만 다이내믹 원주도 있었고요. 무슨 친화도시도 있었고요. 스물 몇 가지의 무슨 도시, 그게 다 외부를 향하는 힘이에요. 안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들의 서사에 주목을 해야 되는데 그러지는 않고, 외부로 향하는 힘에만 포커스를 두니까 힘을 가질 수 없지 않을까요?
고영직 위원장:
제가 참 좋아하는 말 중에 인류학자 김현경 선생님이 쓴 ‘서사편집권’이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개인의 삶이든 집단이든 간에 자기 서사를 편집할 수 있는 권한, 권리 이것을 얘기하는데 저는 특히 어르신들한테 되게 중요하다고 봐요. 어르신 문화, 노년 문화예술교육이 왜 필요한가를 얘기할 때 서사를 편집할 수 있는 권한, 이게 자기의 민족지를 만들어가는 거죠. [지:문] 가을호에서 원주 로컬리티:의 ‘할매발전소’ 친구들의 짧은 영상을 보면서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할머니들의 삶에 밀착하며 어떤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게 놀라웠거든요. (https://youtu.be/q5Vs6BfWcOU?si=JJrU5lpTPG3yANZ8) 그런 것처럼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떤 지역이든 그런 태도가 필요한데 우리는 그런 것들은 깡그리 다 버리고 남들에게 뭔가 ‘있어빌리티’한 것만을 얘기한다는 거죠.
지속적인 문화생태계 구축은 가능한가?
관광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요, 중요한 논의 중 하나가 우리가 2024년을 또 전망하는 자리다 보니까 논의가 다소 추상적인 측면도 없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는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중앙정부가 지역문화정책을 손절하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고 지역문화진흥원뿐만 아니라 아르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지역’자 들어간 예산을 다 잘랐다고 하죠. 정부가 지역을 대하는 톤 앤 매너가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경기도 김포를 서울에 편입시킨다고 하지 않나, 메가시티를 추진한다고 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여하튼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역의 자기 결정권도 문제지만 지역의 힘을 축적할 수 있는 문화생태계는 어떻게 구축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씀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유신애 선생은 구미에서 지난 7년 동안 간판을 지켰단 말이에요. 두 가지 기준이 아주 확실한 지역에서 어떻게 간판을 잘 지키셨습니까?
유신애:
서울이나 경기 기관에서 오퍼가 많이 왔는데 ‘동네에 나라도 있어야지’ 하는 알 수 없는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도 사실은 이 마음 때문에 괴롭긴 하거든요. 구미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거든요. 위원회 같은 조직이 건강한 위원회거나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위원회가 아니고 부서에 국비가 들어오면 지역 유지들로 위원들을 다 구성해요. 도시재생도 그렇고 문화도시도 그렇고 공모에 넣으려면 청년을 넣어야 하니까 인력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갖다 쓰고 국책이 되면 팽하고, “너 때문에 망했다”라면서 동네를 떠나게 만들어요. 슬픈 것 중 하나는, 구미에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촘촘하게 사람을 품어주는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고 다 떠나게 하는 토양이 이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없게 만들었죠. 예술가나 기획자, 젊은 친구들이 생존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저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지역에 왔지만, 지금도 내가 지역에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가 없어서 힘들어요. 하지만 민간에서 선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그래도 조금씩 만들고 있다는 안도감이 있어서 버티고 있어요. 결국에는 민간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공공도 산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고영직 위원장:
‘안돼요. 없어요. 못해요.’ 이게 노답 3종세트인데 이런 데는 답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력과 동료들이 나를 버티게 하는 동력이라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이제 웹진이 나올 때쯤 임선이 선생님은 백수가 되어 있을 텐데요. (웃음)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임선이: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하셨다고 했는데 담양은 문화재단 안에 문화도시 추진단이 있어요. 저희는 ‘씨앗을 찾는 작업을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요. 마을의 어르신, 청년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 단체나 기관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씨앗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라는 작업을 3년 동안 추진단에서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관광과 연계해서 담양은 대나무 축제를 해요. 저희가 문화도시를 준비하면서 ‘담양 예술야시장 월담’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담양에서 살거나, 담양에서 태어났거나, 담양에서 나온 생산물을 갖고 나와야 해요. 굉장히 제한적이고 지역적이죠. 담양은 1년에 700만 명 정도가 관광객이에요. 말 그대로 보고 지나가는 거지만 저희가 자부심을 갖는 건 ‘월담을 하면서 관광의 의미가 아니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의 얼굴과 씨앗을 내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도시 사업이 사라지면서 다들 ‘월담 어떻게 하냐’ 이 걱정을 해요. 이런 것들이 지역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기본 베이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고 있는 분들이 자기를 드러내 줄 수 있는 역할들을 탄탄하게 했을 때, 말 그대로 일상을 들여다보고 드러내게 하는 역할을 기초문화재단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월 새로운 주제로 상인, 농부, 예술가들이 한 곳에 모여 전시, 공연, 체험, 판매가 이뤄지는 담양예술야시장 월:담’. ⓒ 담양군문화도시추진단
담양의 부채명인이 체험을 열고, 닭집 할머니의 이야기 있고, 직장인 밴드가 무대에서 헤드뱅잉을 하는 곳이다. ⓒ 담양군문화도시추진단
고영직 위원장:
지금 임선이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월담 얘기는 지역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자기 얼굴을 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그게 또 재미있고, 그런 것들이 진정한 의미로 동네 문화를 바꾸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최보연:
결국 태도와 관점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지가 중요하죠. ‘내가 기획해서 하고 싶은 걸 한다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할 수 있는 자원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계속 지속가능하게 갈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라는 걸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되는데 그걸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게 문제인 거죠. 구미, 원주, 고성, 거기서 만나는 행정의 민낯이 어떤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같아요. 태도나 부분들을 고민하는 게 하나의 운동처럼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문체부나 중앙의 눈은 포월(匍越)적으로 갈 수가 없어요. 그들이 성과지표를 결정하는 맥락 자체가 그렇게 움직여지지 않으니까요. 근데 지역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합의, 규약, 조례 이런 게 얼마나 무의미할수도 있는지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언서라든가, 의제로 ‘우리가 하는 지역의 문화행정이라는 것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고, 어떤 태도를 해야 하는가?’ 민낯을 까고 다투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영직 위원장:
문제는 태도예요. 항상 지역을 바라볼 때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팽배해 있다는 거죠. 사실은 사람도 그렇고 지역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바라볼 때는 문제만 보이게 돼 있어요.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거든요. 최근에 제가 봤던 현장 중에 충북 괴산두레학교라고 있는데 지난 십여 년 동안 할머니들 문해교육을 하며 달력을 만들었는데 시들이 너무 좋아요. 시화집을 2024년 3월경 출간한다고 하는데, 경북 칠곡 할머니들 시집 <시가 뭐고?>(2015)만큼 재미있는 시화집이 나올 것 같아요. 노인을 문제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노인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인데요. 지금 중앙정부가 지역을 문제로만 바라보니까, 항상 “성과가 뭐야? 사례가 뭐야?” 이것만 따지는 거죠. 관료제의 가장 큰 문제는 ‘내용’을 묻지 않고 형식만 따지는 거잖아요.
임선이:
갑자기 생각났는데,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이 쓰신 글씨로 만든 이 마스킹테이프도 ‘인생 필자’라고 해서, ‘인생을 기록하는 사람, 또 느끼는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진행을 했었어요. 마스킹테이프도 그분들이 쓰는 일상의 언어가 우리를 얼마나 즐겁게, 흥나게 하는지를 보여줘요. 인생은 언제 필지 모르잖아요. 60에 필 수도 있고, 70에 필 수도 있고. 지역에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 자체가 아주 깊게 들어갔을 때 위원장님 말씀처럼 그 지역의 문화가 될 수 있는데, 그분들이 살아온 삶 자체를 존중했을 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보연:
태도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제가 예전에 영국 아츠카운슬에서 ‘창의적인 사람과 장소’(Creative Peoples and Places) 사업을 한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흔히 문화민주주의 이런 말을 쓰잖아요. 문화가 있는 날의 지역 특성화 콘텐츠 사업 같은 혹은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 지역 문화예술교육 이런 콘셉트인 것 같더라고요. 이분이 설명할 때 관점을 어떻게 얘기하냐면, ‘우리는 자산기반형(Asset-based model)이라 지역의 사람들이 무얼 가졌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에서 시작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결핍형 모델(Deficit model)로 간다는 거예요. 무언가가 결핍이다. “너 그거 내가 채워줄게. 그것만 있으면 돼? 뭐가 필요해? 그럼 내가 그것만 주면 되는 거지.” 근데 이 결핍형 모델로는 절대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적 삶이 달라질 수 없다라는 거죠. 저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 다 말씀해 주시는 게 에셋 베이스로 어르신들이 가진 거 가지고 얘기해 주시는 거잖아요.
고영직 위원장: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얘기 많이 하셨습니다만, 2024년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자기 앞의 인생을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또 한 사람의 기획자 혹은 활동가, 시민으로서 우리가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4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인섭:
2024년에는 재단이 3년차가 되고, ‘지역학을 한다는 개념으로 재단이 일하자’라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우리 고성군이 접경 지역이라고 했는데,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풍경은 기원을 은폐한다’라는 아주 유명한 표현이 있잖아요. 접경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고성이 놓치고 있는 걸 찾는 방법으로, 지역학이라고 하는 학제적 방식도 있고 사람으로 찾는 방식이 있어서, 이런 것을 융합하는 사업들을 만들면 한 10년 정도는, 때꺼리(끼닛거리의 경남 방언)가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지역학이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왔던 논의들, 활동들이 쭉 축적되어 있었다면 K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서 “지역에서 알아서 해요”라고 했을 때 우리가 더 든든해지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짓이어도 어쨌든 10년은 갈 수 있게끔 쓰려고 합니다. 원주 되게 절망적으로 보셨는데 원주 아카데미극장 무너질 때 연대하는 서명들 그리고 계속해서 행정에 뜨겁게 저항하는 그런 걸 보면서 되게 부러웠어요. 원주가 원래 되게 센 도시잖아요. 저는 속초, 고성에 살면서 그런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고영직 위원장:
지금 말씀하신 게 문학작품을 바라보는 데에도 지역을 서울의 눈으로 바라보거든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울 빼놓고는 다 로컬로 간주하잖아요. 현기영 선생의 <제주도우다>(2023) 이런 작품을 평가할 때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울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죠. 지역의 눈으로 바라보려면 최보연 선생 말씀처럼 눈이 낮아져야 해요. ‘언더스탠드(understand)’처럼 아래에 서는 거잖아요. 제가 어떤 통계를 보니까, 226곳 지자체 중에 서점이 한 군데도 없는 데가 7곳이고, 서점 소멸 예정지역은 29곳으로 추산된다고 해요. 이런 실정이잖아요. 이런 데서 지역학을 말하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속초 문우당서림 갔을 때 놀랐던 게 지역을 대표하는 서점과 출판사가 있는 것이었죠. 이런 걸 우리는 너무 등한시한 게 아닐까. 예를 들어 광주나 대구를 대표하는 출판사가 없어요. 다 서울에 있어요. 이웅현 대한출판문화협회 지역출판분과위원장의 글을 보니까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82% 이상이 수도권이에요. 지역은 아예 없는 거예요. 이런 상태에서 지역 생태계를 얘기하고 지역학, 지역문화의 씨앗을 얘기한다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신애:
개인적으로는 경북에 있는 대표님과 문화인력들을 찾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책을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고요. 지역을 돌보는 일과 지역의 선한 관계들을 만드는 일들을 꾸준히 할 거예요. 전투력과 동료애를 얘기했는데 동네에서 이런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주는 것과 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는 일을 할 거고요. 늘 외부에서만 사람을 찾는데 동네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소개할 거예요. 2022년 12월 중순에 구미에서 ‘예술가를 만나는 기획자들’이라는 심포지엄을 만들었어요. 지역에 문화도시든 도시재생 같은 큰 사업이 들어오면서 예술가를 이야기하는 것들이 많이 사라지고 소외되고 있는데, 변방에 있는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을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예술정책 ZERO to TEN을 주제로 진행되었던 청년예술가 네트워크 사업 ‘청년 예술가가 말하다’ ⓒ 생활예술콘텐츠연구소 프리즘
도시에서 취향을 꺼내 먹어요! 취향박스 ⓒ 생활예술콘텐츠연구소 프리즘
고영직 위원장: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 지속되는 것이고 지역도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임선이:
3년 동안 문화도시 사업을 하면서 문화도시뿐만 아니라 문화 활동을 했던 것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프로젝트, 그리고 담양이라고 하는 지역, 함께 했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것들이 각개전투처럼 분산되어 있었어요. 각각의 경험치들이 다음의 문화 활동으로 어떻게 연결될까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신애 대표님 말씀처럼 좋은 동료 찾기, 좋은 이웃 만들어주기 이런 게 일상적인 측면에서 지속돼야 하는 게 아닐까. 문화활동, 관계, 지역이 맞물려 갈 수 있도록 맵(map)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만들어서 다른 지역에 가져가야죠. 사람이 움직이면 그 움직임의 힘이 만들어질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고영직 위원장:
좋은 동료를 만들고 좋은 이웃을 만드는 건 동료 시민을 만드는 것. 이게 문화의 힘이겠죠. 제가 좋아하는 미국 철학자 파커 J. 파머라는 사람이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진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이다’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소유’가 아니라 ‘행위(doing)’하는 데서 우리들의 작은 민주주의가 구현될 것이라고 얘기하는데요. 문화활동이 문화활동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커뮤니티를 변화시키는 의미와도 통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보연 선생님,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최보연:
저도 원주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기록하는 작업을 미뤄왔는데 이제는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선생님들께서 결국은 지역의 서사를, 맥을 끊지 않고 이어가는 역할을 그 관점에서 얘기를 해주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지역의 면면함 이런 것들이 다 어깨와 발에 가지고 가신다는 거죠? 저도 그런 몫을 찾아서 하려고 합니다. 원주의 이야기를 조용히.
고영직 위원장:
제가 몇 년 전에 홍세화 선생님하고 좌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분이 운동을 정의한 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내 몸이 거(居)하는 곳에서의 주체성과 정체성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내 몸이 대한민국에 있으면 과연 대한민국에서 나는 주체로 살고 있는가, 나는 서울에서 주체로 살고 있는가, 내가 사는 양천구에서 주체로 살고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운동을 정의하는데 내가 지금 발 딛고 사는 삶터에서, 일터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라는 차원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 같아요. 네 분 선생님 말씀이 내 몸이 거하는 곳에서의 지금 고민과 또 앞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중모색(暗中摸索)하겠다는 다짐으로 들었습니다. 긴 시간 고생하셨고요. 2024년, 개인의 삶에서든 또 사시는 곳에서든 재미있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활동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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