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4 신년호_현장의 맥을 [짚다]
짚다 : 펄떡이는 로컬 현장의 맥을 짚습니다
삶은 짜릿하게, 마을은
기름지게 교하의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들
‘보자…,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으려나….’ 하는 일들이 있다. 매력적인 까닭에 마음 같아서는 미주알고주알 막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은데 쉽사리 혹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파주 교하 지역의 마을활동 공동체 모임인 ‘마을발전소’가 딱 그렇다.
마을발전소는 2008년 여름에 개관한 교하도서관에서 안면을 트고 교류하게 된 주민 몇몇이 모여 이듬해 ‘책벗’이라는 독서동아리를 만든 것이 시작점인데, 그 활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현재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하는 ‘쩜오책방’을 구심점 삼아 함께 마을잡지 <디어 교하>를 만들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 ‘디어교하TV’까지 개국하였으니 지난 15년간 쌓이고 얽힌 이야기들은 단숨에 풀어내기 쉽지 않아 보였다.
이름부터가 발전소 아니던가. 발전소가 돌아가려면 에너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하여 지금에 이르렀는지 마을발전소의 서사를 톺으려 애쓰지 말고 발전소의 에너지원이 무엇일까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어찌하여 그네들은 누구도 시키지 않은 마을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그네들은 누구도 시키지 않은 마을활동을 나날이 키워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에너지원은 어떻게 고갈되지 않고 이 공동체를 지속시키고 있는지 마을발전소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더불어 사는 재미가 있는 마을을 꿈꾸는 ‘마을발전소’ 사람들 ⓒ 디어교하 홈페이지
신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목마름
교하. 이제는 신도시라는 표현이 다소 머쓱해진 신도시. 때문에 ‘구(舊)신도시’ 또는 ‘중년의 신도시’라고 눙을 치는 이들도 있다. 1997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된 교하는 개발계획안이 승인된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교하는 1기 신도시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규모 면에서는 인구 5만 명 이내로 계획된 ‘미니 신도시’이고, 형태 면에서는 아파트와 단독주택단지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공원녹지율을 20% 이상 확보하여 ‘친환경적 전원도시’로 개발됐다.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새로이 조성된 교하에는 인근의 1기 신도시인 일산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상당수다. 개중에는 부동산 투자 호재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그들 대부분은 이후 교하 인근에 더 큰 규모로 조성된 운정 신도시로 이미 떠났거나 떠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정설) 그들과는 다른 기대치를 품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디어 교하> 특별판으로 제작한 <교하 산책 지도> 속 ‘일상을 지나는 산책길’ 그림 지도 ⓒ디어교하
이마담
2008년 여름에 교하도서관이 문을 열었어요. 저도 개관 전부터 언제 문을 여나 하고 잔뜩 기대를 했지만 글쎄 개관하자마자 난리가 난 거예요. 무슨 강연이 열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어요. 더 놀라웠던 것은 강연 끝자락 (으레 주어지기 마련인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이 끊이지 않아 도서관 관계자들이 질문을 끊어야만 끝이 나더라는 거예요.
신도시 조성 초기는 여전히 공사 중인 곳이 많아 어수선하기도 하고, 원주민보다 이주민들이 많아지면서 데면데면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무엇보다 생활문화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교하도서관 개관은 교하 이주민들에게 문화적 오아시스이자 서로에게 ‘나와 닮은 이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했다.
쩜오책방 책방지기 이마담 ⓒ서진영
<디어 교하> 1호에 실은 교하도서관의 모습 ⓒ디어교하
이마담
적어도 교하도서관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초기 이주민들 중에는 교하를 운정이나 서울 등으로 ‘입성’하기 전에 잠깐 머무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게 꼭 ‘나는 여기서 평생 살 거야’ 이런 이야기는 아니고요, 누구든 언제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내 삶’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인식이 있는 (그리하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좀 많긴 했던 것 같아요.
그 주민들의 열의를 범상치 않게 본 교하도서관에서는 2009년 총 5강으로 기획한 ‘탈경계 인문학’ 강의가 진행될 때 평소 강연에 참여해 질문을 쏟아내던 주민 몇몇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렇게 강의를 듣고 끝내는 것은 아깝지 않느냐 토론회 같은 것을 한번 해보자, 그러다가 독서동아리도 한번 만들어보면 어떠냐, 쿡쿡 찌르더란다. 그렇게 다섯 명의 주민이 ‘책벗’이라는 독서동아리를 조직하게 됐다.
재미로 가볍게 시작한 셋방살이 책방이 협동조합으로
책벗 사람들은 함께 책을 읽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설득하고 설득당하기를 기꺼이 즐겼다. 분야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책벗은 자연스럽게 사회학 도서 토론 모임의 성격을 띠게 됐고,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지금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도서관은 모임 장소로 여러 제약이 따른다. 도서관 바깥에서 그때그때 성격에 맞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카페 ‘커피발전소in교하’는 책벗 사람들의 단골 가게였다.
2016년 봄 책벗을 포함하여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만남들을 지켜보던 커피발전소in교하 대표는 단골 주민들에게 책방 운영을 제안했다. ‘그것 참 재미있겠다’ 호기심이 인 이웃들이 요즘엔 창업 용어로 샵인샵(shop in shop)이라 부르는 형태로 커피발전소in교하 한편에 서가를 마련하게 됐다. 우리는 홀로 완전할 수 없고,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자는 의미로 책방 이름은 ‘발전소책방.5(쩜오)’로 지었다. 쩜오는 ‘0.5’를 뜻한다. 각자 얼마씩 갹출해서 시작한 책방은 책을 들여놓을 돈이 없어지면 그만두자 했는데 신기하게도 계속 책을 구매할 만큼은 책이 판매됐다.
커피발전소in교하 카페에 샵인샵 형태로 문을 연 발전소책방.5 ⓒ 발전소책방 브런치 @booksdotfive
이마담
책방을 만든 지 1년쯤 되었을 때 책방 운영과는 조금 별개로 우리가 마을에서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좀 더 키워나가보자, 마을을 기름지게 할 수 있는 재미난 일들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마을발전소’라는 이름으로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았죠. 그게 2017년 7월 4일이에요. 그러고는 그해 경기도의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을 통해 ‘마을에서 사회적 경제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강연도 열고, 마을의 장인들과 워크숍도 하고, 공연도 하고, 골목잔치도 열었어요.
마을발전소는 2018년 여름 협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된다. 협동조합을 만들 때 책벗 회원들도 많이 참여했다. (협동조합의 공식 명칭은 ‘발전소책방.5협동조합’이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마을발전소는 그들이 기획했던 강연처럼 마을에서 사회적 경제가 가능한지 직접 모색해 볼 기회를 맞게 된다. 이웃한 동네서점이 영업 종료를 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책으로 뭉친 사람들에게 동네서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은 사건이었으리라. 커피발전소in교하에 셋방살이를 하던 발전소책방.5는 동네서점이 있던 자리로 독립했다. 이때 책방 이름을 보다 부르기 쉽게 ‘쩜오책방’으로 바꾸었다.
자체 공간이 생기자 조합원들은 더욱 대차게 일을 벌였다. 큐레이션 서점인 만큼 책을 기반으로 한 독서모임, 강연 등의 행사가 열리는 것은 물론이고 조합원들은 저마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책방을 활용했다. 그리하여 쩜오책방은 누군가의 연구소이고, 바(bar)이고, 편집실이고, 예술공간으로 공유됐다.
쩜오책방 외부 전경 ⓒ서진영
쩜오책방 내부 전경 ⓒ서진영
쩜오책방은 조합원들이 큐레이션하는 교하의 동네서점이다. ⓒ서진영
이웃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안내문 ⓒ서진영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시작한 마을잡지
마을발전소에서 발행하는 마을잡지 <디어 교하>는 2017년 8월에 창간했다. 사진활동가 김지하(시시)와 동화작가 박채란(란)이 2016년 교하 이주민들의 삶을 기록한 사진 인터뷰집 <교하, 다가가다>를 발행한 이후 교하도서관에서 사진과 인터뷰 워크숍을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시시
저는 사진활동가로 포토보이스(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질적 연구 방법의 하나)를 활용하여 다양한 공동체 사람들을 만나왔어요. 2015년 여름 교하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신도시 이주민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박채란 작가와 함께 (경기북부 청년문화에술활동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도시이민자-신도시로 떠난 사람들’의 결과물로) 사진 인터뷰집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 사진 인터뷰집의 인터뷰이 중 일부가 후속 지원사업인 ‘디어교하프로젝트’에 다시 참여했다. 디어교하프로젝트는 사진 인터뷰집의 인터뷰이들이 반대로 인터뷰어와 사진작가가 되어 교하의 사람과 공간을 만나 취재를 하고 책을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시시와 란이 교하도서관에서 각각 사진 워크숍과 인터뷰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은 단순히 사진 잘 찍는 법, 인터뷰 노하우를 일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의 생각을 표현할지, 어떻게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아낼지 고민케 했고 이는 참가자들에게 굉장한 자극이 됐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단발성의 책보다 지속적으로 마을 이야기를 축적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제시됐고, 곧이어 마을기자단이 결성됐다. 마을기자단 가운데 마을발전소 조합원들도 있었다.
마을발전소 대표 시시 ⓒ 서진영
교하 이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 인터뷰집 <교하, 다가가다> ⓒ 발전소책방 브런치 @booksdotfive
시시
우리가 살고 있는 교하라는 지역, 교하의 재미난 사람과 공간들을 우리가 직접 기록해보자 해서 <디어 교하>라는 마을잡지를 발행하게 됐어요.
이마담
일종의 고현학(考現學, 변동이 심한 현대의 세태를 기록하여 미래 발전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는 학문. 현대 고고학이라고도 한다)이에요. 지금의 우리, 지금의 여기 교하를 담는 거죠.
곰토미
그러니까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거예요.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르잖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많은 잡지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자꾸 뭔가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는 점이에요. 가르치려 하는 게 있죠. <디어 교하>는 오늘을 담을 뿐이에요.
시시
초반에는 그래도 마을잡지인데 지역을 주제로 한 칼럼은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고도 했죠. 좋은 공간,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도 좋지만 그게 마냥 좋기만 할까, 마을살이를 더 좋게 만들려면 우리 지역에 어떤 문제점들도 담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칼럼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 이런 현상이 있고, 이런 게 문제점이니까, 이러이러하게 나아가야 해, 하는 일련의 형식과 성격이 있잖아요. 결론적으로는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 우리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내면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삶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이 묻어나게 되어 있고, 보는 이들이 스스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곰토미
여전히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없지는 않은데 사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던 적은 없어요. 누구 한 명이 고민하는 게 아니라 모여서 같이 콘텐츠에 대한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요. 그러다 보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되고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다들 저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게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계속 깐죽거리기는 합니다. 그런 역할이 있어야 더 좋은 게 나올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어떤 의견에 계속 살이 보태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마담
누군가 어떤 제안을 했는데 사람들 의견이 다를 수 있잖아요. 그에 대해 또 다른 누군가가 다른 의견을 보탰을 때 그걸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어요. 서로 좋은 말만 한다고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의견이 다를 때 서로 설득하고 설득당할 수 있어야 해요. <디어 교하>를 통해 이런 과정을 겪고, 배우고 있어요. 다행히 서로 ‘흥칫뿡’ 하기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요.
<디어 교하> 창간호를 준비할 때 진행한 워크숍 현장 ⓒ 디어교하 홈페이지
발행 후 잘못된 부분을 발견해 일일이 수정하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 ⓒ 디어교하 홈페이지
쩜오책방에서 진행되는 <디어 교하> 회의 ⓒ 디어교하 홈페이지
쩜오책방에서 열람할 수 있는 <디어 교하> 과월호 ⓒ 서진영
<디어 교하>는 다양한 형식으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7년 8월 창간호를 시작으로 12월에 2호가 나왔고, 2018년부터는 계간지로 발행한다. 가을호는 잡지가 아닌 특별판으로 제작한다. A4보다 큰 가로 23센티미터, 세로 32센티미터의 판형에 분량은 40쪽 남짓. 매호 1,000부를 무가지로 발행하는데 기획에서 취재와 편집, 제작과 배포까지 모두 마을기자단과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후원으로 진행된다. 순수한 마을잡지의 결을 유지하고자 광고는 싣지 않지만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지원사업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기도 한다. 마을발전소 홈페이지(https://deargyoha.kr/)에서 <디어 교하> 전권을 열람할 수 있다.
이마담
<디어 교하>는 순수하게 마을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마을기자단으로 참여해 만들게 된 것인데 왜 뭘 하려고 해도 단체로 조직되지 않으면 힘든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서로 동의하에 마을발전소나 쩜오책방의 이름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경우가 생겨났어요. <디어 교하>뿐만 아니라 마을발전소와 얽히고설킨 여러 가지 작업들이 있어요. 종속 관계가 아니라 중첩되는 사람과 일들이 많아요. 그만큼 마을활동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2023년에 정리를 좀 했어요. 파주 교하 지역의 마을활동 공동체로서 마을발전소가 있고, 함께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나가자. 그 활동들 가운데 마을미디어사업은 ‘디어 교하’의 이름으로 특성화해보자고요.
2022년 10월에는 유튜브 채널 ‘디어교하TV(https://www.youtube.com/@deargyohatv/featured)’를 개국했다. 영상 콘텐츠가 주목받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또 인쇄 매체보다 영상 매체로 풀어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거나 매력적일 때가 있다. 디어교하TV는 영상으로 교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드는 공간이다. 영상 전문가인 곰토미가 국장을 맡고 있다.
디어교하TV 유튜브 채널을 이끌어가고 있는 곰토미 ⓒ서진영
디어교하TV 콘텐츠 촬영 현장 ⓒ 디어교하 홈페이지
디어교하TV 유튜브 채널 첫 화면 ⓒ 디어교하TV
디어교하TV 유튜브 채널 콘텐츠 ⓒ 디어교하TV
곰토미
사실 채널을 만들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어떤 주제로 가야 하는지, 다양한 콘텐츠를 나름대로 만들어 왔는데 콘텐츠 간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를 말이죠. 동네의 숨은 실력자를 소개하는 ‘교하사람들’,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알려주는 콘셉트의 ‘안드로메다’와 같은 콘텐츠가 있는가 하면 일본어 강의, 낭독 콘텐츠도 있어요. 최근에는 지역에 있는 환경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진행하기도 했고요. 지난 1년간 실험을 한 것 같아요. 2024년에는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실험해 볼 계획이고요.
2023년 제5회 경기마을미디어공모전에서 마을발전소는 우수활동가(팀)으로 경기콘텐츠진흥원장상을 수상했다. <디어 교하> 18호는 우수콘텐츠 부분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제5회 경기마을미디어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한 마을발전소 사람들 ⓒ 디어교하 홈페이지
우수콘텐츠 부문 대상을 수상한 <디어 교하> 18호 표지 ⓒ디어교하
결국엔 내가 좋아하고, 내게 기쁨이 되는 일
마을공동체, 협동조합과 같은 조직의 경우 비교적 초기에는 활력이 넘친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구성원에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고, 특히 소수라도 열성적인 인자가 빠져나가게 되면 조직 자체가 위태해지는 경우가 많다. 마을발전소도 구성원에 변화가 있어왔다. 다행인 것은 빠져나간 사람이 있음에도 와해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마을활동이 더욱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곰토미
특정 인물에게 의지하거나 역할이나 결정권이 몰려 있지 않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자기 몫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주요 구성원들 나이대가 40~50대에 걸쳐 있는데 이 나이대가 되면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했고, 자신의 장점을 발현할 수밖에 없어요. 마을발전소 사람들은 그걸 아는 거죠.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마을발전소의 인적 자원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다는 걸 느껴요.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이런 것도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시
저희라고 갈등이 왜 없었겠어요. 그런데 갈등 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활동의 결과물들만 쌓인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랄까 상호작용이랄까 이런 것도 굉장히 많이 쌓였다고 생각해요.
한편 쩜오책방이 수익을 내고 있고, 후원금과 여러 지원사업을 통해 마을활동을 위한 비용을 확보하기도 하지만 마을발전소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재능 기부와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최소한의 인건비를 받더라도 마을활동을 위해 다시 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궁금했다. 마을발전소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보상이 되는지.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있어야 동력이 생기는 법이다.
이마담
저는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에요. 남을 위한, 마을을 위한 공동체성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일을 하는 거라고 할까요. 마을활동을 통해 나 자신이 다듬어져 왔어요. 지금도 많이 배워나가는 과정이고요. 나에게 남는 게 있고, 내 삶에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죠. 무엇보다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게는 사람책이에요. 그게 제게는 보상인 것 같아요. 또 다르게 말하면, 가령 <디어 교하>에 원고를 쓸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여유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을활동이라는 것이 내가 엄청난 부자여서 지역을 위해 흔쾌히 얼마를 기부해서 보탬을 준다, 이런 게 아니고 내가 우리 마을을 위해 할애를 할 수 있는 시간과 행위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여유를 사회적 가치에 투자하는 거고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우리 사회에 이런 활동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곰토미
사실 보상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따져본다면 역시나 사람일 것 같아요. 사람은 모여 살아야 해요. 본능적으로 그래요. 혼자는 외롭고 힘들어요. 저는 사람이 삶의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요.
쩜오책방에서 만난 마을발전소 조합원 곰토미, 시시, 이마담 ⓒ서진영
마을발전소 소개 리플릿 ⓒ서진영
하면 할수록 함께하고픈 일들은 늘어만 가고
마을발전소의 씨앗이 된 책벗이 다섯 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조합원은 19명이다. 물론 느슨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는 이보다 훨씬 넓다.
이마담
저희가 마을활동이라고 으샤으샤하고 있지만 쩜오책방이 책방인지, 우리 동네에 책방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예요. (마을 전체 인구 구성을 놓고 보면) 저희는 소수에 불과해요. 그런데 그 소수가 움직인다는 것이 되게 중요해요. 움직여야 동력이 생기잖아요. 저희가 뭘 대단히 잘 알고 잘하는 사람들이라 마을활동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해보는 거예요. 책방도 해보고, 마을잡지도 만들어보고. 하다가 잘 안될 수도 있어요. 그럼 어때요. 누군가에게는 “어머 쩜오책방이 그래서 망했대잖아” 하는 게 디딤돌이 될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규정되지 않은 것, 형식이 불분명한 것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을 자꾸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곰토미
마을공동체 자체가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결과를 모르는데도 해보는 것에 매력이 있는 거죠. 활동을 하다 보니까 (결과물의) 형식을 먼저 정해놓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형식에 이야기를 끼워 맞추게 될 위험이 있죠. 그건 마을공동체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마을활동을 하면 할수록 함께하고 싶은 일들은 늘어만 간다. 그렇지만 마을발전소는 지역의 범주든 구성원이든 자금이든 규모를 키우는 것은 경계한다. 활동의 지속성을 고려하면 지금의 규모, 가능한 작은 단위가 효과적일 거라는 판단이다.
곰토미
서로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정도로 일을 벌여야 한다고 봐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재미보다는 관리해야 하는 게 많아지고, 그 자체로 일이 돼요. 함께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고맙고 좋은 일이죠. 이웃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소통하려고 마을활동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또 내부 조직의 구성원이 많아지는 것은 운영 측면에서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희한하게 균형을 잘 맞추어 온 것 같은데 한데 그 수가 너무 많으면 한데 모이기도 힘들어질 거예요.
이마담
규모가 커지면 그 틀에 맞는 사업을 해야 하더라고요. 저희는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가령 마을잡지 <디어 교하>의 매체력을 막 키워서 권역화하고 싶지는 않아요. 여기 교하에 <디어 교하>가 있고, 운정에는 운정에 맞는 또 다른 매체가 만들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마을발전소는 규모와 교하에 집중하려고 해요. 운정에서 누군가 매체를 만든다고 하면 필요할 때 우리가 도움을 드릴 수도 있고, 또 각각 활동하면서 서로 교류하면 되는 거예요.
마을발전소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하루 같지만 근래만 해도 마을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일례로 이웃의 표정이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지역 개발 현장 또는 인근 공단에서 필요로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수 유입된 까닭이다. 기존 주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생활 여건이나 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며 다시금 그네들이 이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마을공동체라고 해서 구성원들이 모두 하나로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 마을공동체의 역할일 것이다. 마을발전소 사람들은 그 역할을 되새기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교하에 집중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전개하며 교하가 더불어 사는 재미가 있는 마을이 되기를 꿈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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