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신년호_담다
담다 : 지역문화 정책, 동향을 담습니다
인구소멸이 가져오는 서사의 소멸을 우려하며
지난해 11월의 어느 날. 출장으로 남쪽의 어느 군(郡)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작은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었는데 어쩐지 6시 30분이 되어도 동네는 조용하기만 했다. 서울에서는 한 블록에 하나씩 있는 카페도, 패스트푸드점도 찾을 수 없는 그 군(郡)은 총인구 41,000여 명으로 지역소멸 도시 중 하나다. 다행히 7시가 되니 행사장은 가득 찼지만, 행사가 끝난 저녁 9시의 풍경은 스산하리만치 길에 다니는 사람도, 다니는 차도 드물었다. 아니, 오히려 사람이 나타나면 놀랄만한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학원이 너무나 드문 읍내에서 ‘큰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날 행사에 온 사람들은 기존 동네 사람들보다 귀촌으로 자리 잡은 이들이 더 많았고, 그중 일부는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을 것인지 수도권으로 돌아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어느 집에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역소멸이 코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하지만 이 도시가 소멸될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참석한 행사는 주민들이 직접 쓴 수필집의 출판기념회였는데, 그 속에는 자신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지역이 녹아 있었다. 개인의 서사를 존중하는 도시는 공동체가 자연스레 형성되고, 새로운 사람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주민들의 ‘서사’에서 지역이 사라지지 않을 동력을 찾은 것이다.
이미 소멸하고 있는 지역들
지역은 현재 수도권과 비교할 때 매우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며 2050년에는 경기, 세종, 제주, 충남을 제외한 13개 모든 도시의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2020년에 이미 12개 시도(전남, 강원 전북, 경북 등)에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었고, 2045년 이후에는 모든 시도에서 인구 감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도별 인구성장률, 2020년, 2035년, 2050년 ⓒ통계청 보도자료(2022.5.26.)
하루가 멀다하고 ‘지역소멸’을 우려하고, 정부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를 발족하여 대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소멸이 대두된 이래 뚜렷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무능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문제는 너무나 복잡한 구조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저출생과 자연감소 인구, 일자리의 부족과 유출되는 인구, 인프라의 부족과 노후화로 인한 도시의 소멸은 문화정책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다.
인구감소지역 지정 결과 ©NABIS(국가균형발전 종합시스템) https://www.nabis.go.kr
세계 정세와 소멸의 위기
소멸의 위기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인한 위기를 실감하고 대책을 준비해왔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1억 2,500만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는 28.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2023.9. 기준). 또한 일본도 세계에서 출산율이 낮은 국가 중 하나로 오랫동안 인구 고령화 문제로 고심해오고 있다. UN은 인구 대비 65세 인구 비율로 봤을 때 일본의 인구가 전 세계 최고령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2022년 일본의 출생아 수는 80만 명 이하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 19세기부터 기록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낮은 수치다. 1970년대에는 무려 200만 명이 출생한 것과 분명히 대조된다.
이 가운데 일본은 지역 소멸의 대책으로 ‘관계인구’의 개념을 내세운다. 다나카 테루미가 쓴 ‘인구의 진화-지역소멸을 극복하는 관계인구 만들기’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된 이 개념은 정주인구보다 지역과 교류하는 인구 수를 늘리는 방식의 인구정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생활인구’ 개념으로 도입되었으며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은 이미 생활인구의 증감폭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전쟁으로 갑작스럽게 소멸의 위기에 놓인 도시들도 존재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은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고, 중동의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이스라엘-하마스 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민간인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이 전쟁들은 도시를 넘어 국가들의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고 만다.
한편 세계는 새로이 맞이한 기후 위기와 저성장 경제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또한 결국 인간이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대책 수립이 비롯된다. 소멸은 ‘사라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자취와 삶이 잊힌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낳는다. 내가 살던 지역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오로지 기억 속에서만 가져야 한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상실감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이미 상실감으로 슬퍼하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서사, 지역이 지켜야 할 유산
세계는 복잡한 위기를 안고 있고 우리나라는 더욱 심각한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잃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인구를 숫자로 계산하며 줄어드는지 늘어날 수 있는지 모니터링과 예측만을 쫓는다.
인구가 소멸한다는 것은 삶의 자취가 사라진다는 의미와 같다. 즉, 내 삶의 발자취가 곧 우리 지역의, 우리 동네의 서사임을 굳이 인식하지 않는다. 『서사의 위기』의 저자 한병철은 서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사는 오늘날 계속해서 탈정치화되고 있다. 이들은 개별 대상, 스타일, 장소, 집단 또는 사건처럼 문화적 특이점을 만듦으로써 사회의 독자화에 기여하곤 한다. 이들은 더 이상 공동체를 형성하는 힘을 펼치지 못한다. 공동의 행위, 그것은 우리의 서사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서사가 사업에 의해 본격적으로 독점되고 있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공동체가 아닌, 소비사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서사는 마치 상품처럼 생산되고 소비된다. (중략) 서사적으로 중개된 도덕적 소비는 그저 자기 가치만을 높일 뿐이다. 서사를 통해 우리는 서사를 발전시키는 공동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자아와 연결된다.
-한병철, 『서사의 위기』, 다산초당, 2023 중에서
공동체의 행위는 개인의 서사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한 교수의 글처럼 우리는 개인의 삶이 하나의 서사라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때문에 지역은 개개인의 삶을 유산화하는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서사가 쌓일 때, 주민은 존중받는다고 느끼며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으려 할 것이다.
2022년 생활문화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 마을예술가 프로그램 활동 사진 ⓒ지역문화진흥원
지역에 딱 맞는 중앙정부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문화도시 사업, 문화적 도시 만들기 사업 등을 통해 개인의 서사를 모으고 존중하는 작업들을 끊임없이 해 왔다. 그러니 지역의, 그리고 개인의 서사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지역문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많은 보조금 사업이 지방이양이 되었다. 지방이양은 지역이 권한을 도맡아 예산편성부터 운영까지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실상은 지방이양은 곧 ‘사업의 종료’를 뜻하는 단어처럼 해석되고 있다. 예술교육, 문화기반시설 등이 대표적 지방이양 사업인데 이를 포괄하여 계획하고 추진하게 하는 동력인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현 정부의 지방시대의 정책은 더욱 지역의 성장을 지역의 힘으로 이룰 것을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 보조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지역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것은 지역이 정책을 추진하려는 동력에 달려 있다.
지역을 잘 아는 이들은 모두 지역에 있다. 지방정부를 이루는 사람들이 그 지역의 정책개발과 추진에 더욱 능하다. 중앙에서는 숫자와 지수로 지역을 판단하고 ‘모든 지역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책에 집중한다. 그래서 공모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고, 상대적 낙후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물론 중앙정부는 끊임없이 지역을 탐구한다. 인구, 사회변화, 경제, 인프라 등 꼼꼼하게 전문적으로 나누어 살핀다. 하지만 어느 지역이 기준이 되거나, 혹은 어느 수치가 표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역 정책 수립을 위해 ‘이런 상황이다’라는 현황에서 출발하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낙후된 지역에 도움을, 상대적으로 정책이 잘 이행되는 지역은 우수사례로 제안할 뿐이다.
지역에서는 직접 설계하는 기본계획들에 신중히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엇을 ‘성공’이라 부를 것인지 지역의 창의성과 독창성에 기반한 성과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 지역의 발전에 저해가 되는 것이 반드시 ‘인구’뿐인지 점검해야 한다. 문화기반시설, 교육환경, 돌봄환경, 산업환경 등 도시가 노후화되는 모든 것에 관해 관심을 두고 연계해야 한다.
우리 지역에 딱 맞는 중앙정부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이 선택하여 집중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개인의 서사에서부터 출발할 때 쉽게 인지될 것이다. 이젠 지역이 중앙정부에 정책전략을 요구해야 할 때가 왔다.
지역소멸의 위기에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지역의 서사이며, 문화정책은 지역의 서사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개인의 서사가 모인 공동체의 서사는 곧 지방정부가 나아가야 할 정책 방향성을 가리킬 것이다. 정책은 숫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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