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내가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술과 탄수화물의 문제가 아니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SNS에 중독되어 있었고, ‘배민’과 당근 앱에 중독되어 있었다. 나는 자주 ‘오늘의집’ 앱을 열어 소파와 책상, 스탠드 등을 들여다보았다. 서재와 거실을 꾸미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말이다. ‘이 소파에 앉아 슈베르트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면 더 안락하고 행복하고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에게 이렇게 위로와 변명을 해대가며, 또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스마트폰을 탐닉했다. 그리고는 자랑해댔다. ‘난 말이야,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뭔가 있어 보이지 않아?’ ‘오늘은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었지. 난 이토록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하지만 사실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반백의 나이인 나는 가끔 내 남은 인생이 궁금해 유튜브를 켜고 사주풀이를 들었던 이유는.
지금 내 모습이 과연 내가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남이 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그것을 느껴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삶이 피곤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야. 왜 머리가 아픈지, 왜 매일 어깨가 아픈지 모르던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탓이라고만 여기던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죽을 것 같아 강릉으로 갔다. 바닷가 앞에 숙소를 잡고 한 달을 살았다. SNS를 끄고, 배민도 되지 않는 곳에서 지냈다. 아침에는 숙소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아침을 먹었고, 저녁이면 포구의 횟집에서 밥과 매운탕을 먹었다. 생필품이 필요하면 걸어서 다이소에 갔다. 해가 뜨는 해변을 산책했고, 베란다 너머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고, 파스타를 만들어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내 삶을 살았다.
예전부터 서울을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고 있었는데, 강릉에서 한 달을 보내며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짙어졌고 자신감이 생겨났다. 강릉에서 지내는 동안 업무 때문에 서울에 세 번을 오갔다. 한 번은 KTX를 이용했고, 두 번은 차를 운전했다. 오전에 업무 관련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강릉으로 돌아오면 해가 뉘엿했다. 아, 여기 살아도 별문제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이 여행작가라 지방으로 취재 여행을 다니며, ‘탈서울’을 감행해 지방에서 ‘잘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경북 의성에서, 강원 양양에서, 경남 하동과 거창에서, 전남 영광에서, 제주 서귀포에서 모두 잘살고 있다. 삼십 대 후배들도 많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며 만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잡지를 만드는 이도 있고, 국수 공장을 하는 이도 있다. 서점을 하며 농사를 지으며 살고, 맥주를 만든다. 그들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서울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꼭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살아도 괜찮은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세 권은, 책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묘하게 맞물려 있다. 거짓 삶을 떨쳐내고 진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들은 풍부한 자료와 성실하고도 집요한 취재를 통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들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진실한 내 삶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고, 인터뷰이들이 보여주는 대답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독 너머에 있는 진짜 삶을 찾아가는 길
-도우리,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한겨레출판사, 2023)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사
'배민맛'이라는 게 있다. 딩동하고 벨이 울리면 후다닥 뛰어나가 배달된 음식을 집 안으로 들고 온다. 포장 용기를 열면 집을 꽉 채우는 기름 냄새.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며 유튜브를 본다. 남은 소스와 함께 온 반찬은 버리기 아까워서 끝까지 먹는다. 결국 과식. 수세미에 세제를 잔뜩 부어 설거지해도 쉽게 씻기지 않는 플라스틱 용기를 내려다보며 ‘이젠 정말 배달 음식 끊어야지’ 하고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배민맛이다. MSG로 범벅된 배민맛에 한 번 길들여지고 나면 이제 다른 음식은 끊을 수 없다. 다시 배민을 주문하면서 이렇게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배민맛이 좀 찜찜해서 그렇지, 장 보고 요리하는 시간을 이만큼 아껴주는 걸 따지면 계속 맛봐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못다 한 일을 하고, 경력을 쌓고, 돈을 좀 벌면 그때 가서 대안적인 삶 좀 챙겨도 되지 않을까?”
이 책은 현시대 한국에서 가장 ‘핫’한 스마트폰 서비스 아이템인 갓생, 배민맛, 방 꾸미기, 랜선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 앱, 좋아요 등 아홉 가지 주제를 ‘중독’이라는 코드로 풀어낸 책이다. ‘좋아요’와 ‘별점’에 자기도 모르게 집착하며, 온갖 서비스를 홀린 듯이 사용하는 우리의 모습을 예를 들어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왜’라는 질문을 빼놓지 않는다. 왜일까?
저자는 이를 ‘자기 위로’ 때문이라고 말한다. 골치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 즉각적이고 잠시나마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임시 도피처인 셈이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지만 ‘현생(현실 인생)’에서 이만큼 소소한 위로가 되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자해’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들 서비스가 우리를 이 척박한 현실에서 결코 구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중독이 되어 ‘성실하게’ 엉망진창의 삶을 이어간다. 물론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해나가면서 말이다.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히지만 때로 섬찟하다. 내가 중독에 빠져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니라, 중독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는 걸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빠져 있는 중독과 ‘헤어질 결심’을 해보시길. 그리고 진짜 삶으로 옮겨갈 결심을 가져보시길.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있을 것 같다.
로컬적인 삶에 관한 실용적이고 세세한 안내서
-김미향, 『탈서울 지망생입니다』(한겨레출판, 2022)
탈서울 지망생입니다.(김미향 지음) ⓒ 한겨레출판사
‘서울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 한 문장이다. 그리고 그 증거를 세세하게 제시하고, 탈서울의 삶을 감행한 자들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서울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리는 자주 주저하고, 두려워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만다. “서울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지식과 트렌드, 감수성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일이 쉽게 마음먹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나처럼 뚜렷한 기술이 없는 평범한 문과생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이들이 이와 비슷한 이유 때문에 서울을 떠나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고 탈서울을 감행한 이들이 있다. 이 책은 ‘탈서울 지망생’인 작가가 자신보다 앞서 탈서울에 성공한 14명의 선험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탈서울 (미리) 체험기’와 ‘Q&A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탈서울을 위해서는 “일단 한 달이라도 먼저 살아보라”고 권한다. 그래도 서울을 떠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때는 과감하게 실행해보라고 조언한다. 자, 그렇다면 무얼 준비해야 할까. 며칠 쉬러 가는 것도, 놀러 가는 것도,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러 가는 것도 아닌, 살러 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습게 보면 안 된다. 3장 ‘탈서울 체크리스트’는 여기에 대한 방법과 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준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귀농이 아니라고’ ‘욜로가 아닌 현실로서의 지방행’ ‘지방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지방은 텃세가 장난이 아니다?’ 등의 꼭지를 읽다 보면 ‘현실로서의 지방살이’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장 ‘서울 아닌 곳에서 행복을 찾은 7인의 기록’은 뜨거운 ‘열탕’ 같은 대도시의 삶과 사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냉탕’ 같은 농어촌의 삶 사이에 자리한 ‘나만의 온탕’ 같은 도시를 찾은 사람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이천, 춘천, 부산, 양양, 제주, 전주, 창원 등지에서 ‘잘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탈서울의 장점과 단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은 필요하지 않았는지 등 실용적인 정보를 자세하게 전한다.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고,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즐기는 것, 분명 좋다. “휴일에 산에 가기 위해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퇴근 후 저녁을 먹고 강가로 산책하러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상적인 생활이다. 하지만 인터뷰이들은 공통으로 유의해야 할 점을 당부한다. 바로 돈벌이다.
“일해서 벌 수 있는 소득이나 앞으로 모을 자산을 생각하면 서울에 사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직업의 기회가 더 적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할 것.” “로컬은 우물 안 개구리로 느껴질 만큼 볼 수 있는 것이 적습니다. 그만큼 느끼는 것도 적고, 아무래도 기회가 적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로컬의 삶을 꿈꾸는 이라면 꼭 일독해야 할 책이다.
강원도에서 산다는 것, 그 낭만과 현실의 기록
-김준연, 『온다씨의 강원도』(온다프레스, 2018)
온다 씨의 강원도(김준연 지음) ⓒ 온다프레스
지방에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강원도와 제주도가 아닐까. 이 책은 미리 강원도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묻는 인터뷰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 김준연은 여행과 사진이 업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저자는 강원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아니 ‘굳이’ 강원도에 가서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그들은 왜 강원도로 갔고, 왜 강원도에서 살고 싶어 했을까. 강원도에 살면 뭐가 좋을까.
작가는 속초와 양양, 고성에 자리 잡고 살고 있는 8명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것들을 책으로 엮었다. 각자 어떤 연유로 강원도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정착하고 난 뒤 어떤 일을 겪었으며, 강원도에서 살아가며 어떤 점을 느꼈는지를 들려준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빵 굽는 사람도 있고, 서핑슈트를 만드는 사람도 등장한다. 북스테이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떤 사람은 부모님의 고향이다. 전혀 연고가 없는데도 강원도로 내려와 자리를 잡은 이도 있다.
이들은 강원도에서 모두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고군분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힘겹다. 그렇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행복하다’고 말한다. 강원도 생활에서는 뭔가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핑슈트를 만드는 이는 서핑을 마친 후 다른 이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고, 속초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벌이는 일 등, 강원도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책의 말미에는 인터뷰이들이 소개한 맛집도 실려 있다. ‘그냥 가서 먹는’ 식당이라고 했지만,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들이다. “그들의 시선에 의해 재해석된” 산책길도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인터뷰이들이 평소에 자주 걷는 길이다.
이 책은 에세이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떠나고 싶은 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를 읽고 난 후 읽어보면 더 깊게 와닿을 것 같다.
“다만 자신이 머무는 곳을 벗어나 낯선 어딘가를 걸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낯선 길을 걷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 길이 전에 겪어본 바 없이 급변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리하여 당신도 어느 곳에선가 새롭고도 생소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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