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느끼고,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
지난 3년간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고립,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팬데믹은 모든 이에게 강제된 고립을 야기했기에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전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한 촉발 기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은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외로움’이 팬데믹 이전에도 존재했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삶의 조건 중 하나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외로움’은 때로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엄습한다. 외로움은 주관적인 감정이지만, 이를 촉발하는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 간의 간극이다.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2021)에서 외로움이 외부적 조건에 의해 형성됨을 강조하고, “외로움은 느낌인 동시에 실존적 상태”라고 말한다.
2018년 영국 정부가 전 부처를 아우르는 《연결사회, 외로움 대처 전략》(2018)을 발표했던 배경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양하게 제시된 정책사업 중에서 특히 주목되었던 것은 바로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사회적 처방’이었다. 외로움과 우울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약물이 아닌 지역 내 문화자원과 연계한 활동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민들 간의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하자는 것이 핵심 골자였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통계청이 발표한 《2021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10명 중 2명(22.2%)이 “외로움을 느끼고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사회적 고립도(위기 상황 시 주변에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는 34.1%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 6.4% 높아진 수치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OECD 삶의 질 지표>(BLI: Better Life Index)의 국가 간 비교를 통해 확인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연결’ 수준은 41개국 중 38위로 최하위이다. 우리는 사회구조적으로 언제든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관계가 고픈’ 금천구 청년들을 엮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역문화진흥원이 올해 4월부터 추진하는 <2023 연결사회 지역거점 프로그램>은 외롭거나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지역 내 다양한 문화자원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고안된 사업이다. 영국식 사회적 처방 아이디어를 모태로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추진되는 ‘연결사회’ 사업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2022년 외로움·사회적 고립감 사례관리 사업>을 실시하고(주관: 한국심리학회), 사업의 일환으로 <외로움·사회적 고립감 사례관리 사업: 외로움 척도 개발 및 사회적 연결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2023 연결사회 지역거점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5개 지역은 강원도 춘천시(춘천문화재단), 충남 아산시(텃밭인문학작은도서관), 부산 영도구(영도문화도시센터), 서울 동작구(총신대 산학협력단)와 금천구(수상한협동 조합)이다. 이들 지역 중 유일한 민간단체인 ‘수상한협동조합’이 주목된다. 이들의 활동 계기가 이미 수년 전 지역 청년들의 ‘외로움’에 착안한 문화예술적 ‘관계 맺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수상한협동조합의 김명환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시작은 그가 서울 금천구로 거주지를 옮긴 직후인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이전부터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 거버넌스25 퍼실리테이터, 금천마을예술창작소 어울샘 공간지기로 활동하면서 금천구와 인연은 있었지만, 거주지로서 금천은 그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줬다.
수상한 창고의 간판 서울시 금천구 시흥5동 주민센터 옆 ⓒ전새벽 작가 블로그
<소음>행사를 준비중인 수상한협동조합 김명환 이사장 ⓒ전새벽 작가 블로그
“막상 이사 왔을 때 좀 막막한 거예요. 원래 고향은 인천인데 거리가 있고, 저녁에 일 끝나고 만날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프로그램으로 만났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아! 오셨어요’ 인사하고, 끝나면 ‘네, 안녕히 가세요’ 이게 끝이었던 거죠. 공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나처럼 일자리 때문에 여기 온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들도 나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실제로 금천구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인 가구 증감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전체 인구는 계속 줄고 있으나, 가산디지털산업단지 등 일자리로 인한 20~30대 이주 청년들의 유입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관계’가 고팠던 김명환 이사장은 궁리 끝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을 한번 모아보자는 취지로 파티를 열었고, 10명 정도의 청년들이 모였다. 이후 협동조합의 전신인 ‘컬쳐프로젝트 닻’을 만들어 청년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할 공간도 중요해졌다. 2020년 복합문화공간 ‘수상한창고’를 마련했고, 청년들과 함께하는 문화행사, 축제, 강좌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청년들이 모여 현재의 ‘수상한협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책모임 커뮤니티 신청안내 ⓒ 수상한창고 홈페이지 책모임 커뮤니티 신청안내 ⓒ 수상한창고 홈페이지
“영국에 외로움 장관도 있고, 일본에서도 고독문제 대처기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어요. 시기적으로 보니 그게 2018년~2019년이더라고요. 제가 외롭다고 느꼈던 시기에 다른 곳에서도 이걸 고민했구나,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신기했어요. 전 여기서 같이 얘기하고 술 먹을 사람이 없어 시작했던 건데,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였구나’ 싶었어요.“
2022년 수상한협동조합은 금천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지원을 통해 ‘외로움 케어를 통한 청년 커뮤니티 형성’ 사업을 진행했다. 500만 원 정도의 작은 예산이었지만, 금천구 청년들의 전반적인 상황을 실증적으로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UCLA 외로움척도를 활용해서 청년(20세~40세) 대상 설문조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했는데, 전체 응답자(175명)의 외로움 평균은 46.61점으로 대부분 ‘상당히 외로운 상태’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44점 이상 외로움 수준 높음, 29~43점 평균적인 외로움, 28점 이하 외로움 수준 낮음). 외로움이 나와 주변을 넘어 금천구 청년들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지역으로의 확장이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던 찰나, ‘연결사회 지역거점 프로그램 개발·운영 사업(이하 연결사회)’ 프로그램 공모 소식이 더없이 반갑게 느껴졌다.
‘커뮤니티 런처’ 통해 유연하게 접근하다
하지만 막상 사업 운영과정에서 그는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역문화진흥원 사업 매뉴얼에 따르면 ‘외롭거나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참여자의 ‘사회적 연결성 척도’(외로움 설문조사) 측정을 통해 문화예술활동과 심리상담 등 ‘맞춤형 처방’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되어 있다. 그 자체만으로는 이상적이다. 문제는 정책과 현장 간의 속도이다.
현실적으로 5개월 안에 진행되어야 하는 사업설계 속에는 사회적 연결성 척도 외에 사람들을 충분히 알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제공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연결망 척도 상, 같은 점수를 가진 이들이라도 외로움의 원인과 유형이 모두 상이할 수밖에 없다. 현재 지역문화진흥원은 사회적 연결망 척도를 활용하기 위한 전문 매뉴얼 개발연구와 프로그램 모델링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사업설계 상 현장에 요청되는 속도와 정책개발의 속도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사업 자체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외로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테니까요. 헤비한 고립감, 우울감 직전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나와주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어떻게 만날까 하는 부분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편의점 같은 곳도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해서 자주 가는 공간이기도 한데, 거기에 가면 항상 수염이 덥수룩하거나 후드를 뒤집어쓰고 오시는, 뭐랄까 모종의 기운이 느껴지는 분들이 있거든요.”
수상한협동조합이 ‘연결사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타 기관과 다른 점은 ‘커뮤니티 런처(community launcher)’를 양성하는 데 있다. 커뮤니티 커넥터(거점센터의 사업 운영을 담당하는 매개 인력)가 사업 전반의 운영과 지역 내 협력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커뮤니티 런처’는 지역의 외로운 이들을 만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로 발로 뛰면서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 거점’의 역할을 담당한다.
커뮤니티 런처 아이디어 매핑 ⓒ최보연
“‘런처’라는 표현은 지금 함께하는 PD님 아이디어인데요, 원래 게임에서 쓰는 말을 차용한 거예요, 최우선의 시동을 거는 역할이라는 의미로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희는 세 사람의 커넥터가 있고요, 현재 11명의 런처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커넥터가 전체 그림을 보고, 행정적인 부분들도 처리하고 런처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면, 런처는 실제 사람들을 만나서 발굴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거죠. 지금 11명이 지원해서 활동을 준비 중인데, 그렇게 되면 11개의 새로운 방법들이 나올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거죠.”
11명의 커뮤니티 런처들 중에는 주민자치회나 마을공동체 관련 활동 이력이 가진 이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 이들을 구심점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런처들이 모인 워크숍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병리학적 느낌도 있어 참여자 관점에서 볼 때 ‘처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런처의 역할을 정해진 자원들 내에서 연결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참여자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구상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외로움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지역사회가 이걸 대응해야 한다는 지점에 대해서는 아직 인식 확산이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조금씩 만들어 놓고, 계속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겠다고 계획하며 추진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런처 워크숍 단체사진 ⓒ최보연
외로움 문제,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문화안전망으로 풀어야 한다
수상한협동조합은 이번 사업 참여를 계기로 장기적으로 금천구 문화안전망 구축을 위한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정책적으로 논의되는 ‘문화안전망’ 개념은 문화접근권, 문화향유권, 문화참여권 차원에서 물리적 환경(시간, 비용, 시설과의 거리 등)에서의 최소기준 설정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강조되고 논의된다. 그러나 하나의 조건이 더 필요하다. 문화안전망이 실질적으로 지역 내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적 활동과 맞닿되, 사람들 간의 ‘관계의 근육’이 단단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가 말하는 ‘관계의 평상’과도 같은 맥락이다.)
수상한협동조합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이들이 지향하는 세상을 바꾸는 변화의 시작이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에서 비롯됨을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단체 명칭에서의 ‘수상한’은 ‘수천 개의 상상이 가득한’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수-상-한’ 협동조합이 이 사업을 통해서 만들어 갈 관계 맺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본 사업은 외로움을 국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감정으로 인식하며,
문화적 방식을 통해 고립·은둔의 단계 이전에 외로움을 예방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 예방을 위해 다양한 지역의 문화자원을 개인에게 연결해 줌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의 창구를 만들고 사회적 관계 형성과 회복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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