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한국 사회는 인구 구성 및 가치관에 있어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특정 국가의 이주배경인구 규모가 전체 인구의 5% 이상을 차지할 때 그 국가를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규정한다. 우리나라의 이주배경인구는 2022년말 기준, 23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4.3%를 넘어서는 수치로 머지않아 우리 사회가 다문화·다인종 사회가 될 것임을 예견케 한다. 65세 이상 인구 또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규모가 17.5%로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있으며, 2025년에는 20.6%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1인 가구 규모도 크게 증가하였는데, 2005년 전체 가구 대비 20%를 차지하던 1인 가구 규모는 2021년 33.4%를 차지하였고, 2050년에는 39.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혼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2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1996년 36.7%였으나, 2022년 조사에서는 17.6%로 하락하였다. 부모 봉양 의무도 1996년에는 응답자 긍정율이 72.1%였으나, 2022년에는 51.5%로 크게 감소하였다.
1인가구 증가 및 개인화, 고령화, 다원화하는 사회
이런 각종 현황 데이터들은 우리 사회의 ‘개인화’ 경향이 가속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 추세와 1인 가구 증가 경향은 청년이나 고령층 모두 기존에 보호 울타리로 작용하였던 가족이라는 보호막이 점차 해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공동체 문화에 대한 강조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 이슈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에 대한 인식 ©문화체육관광부
1인가구 추이 ©통계청
기존 공동체 관계의 해체와 개인화 경향은 우리 사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외로움’ 문제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우리 사회 고독사 사망건수는 3378명으로, 2017년 대비 5년 사이 40%가 증가하였다. 일찍이 ‘히키코모리’(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주목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만 19살에서 34살 사이 은둔형 외톨이는 전체 인구의 2.4%, 20~30만 명 정도(2022년 말 기준)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최근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와 연계되면서 더욱 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이라는 이슈가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1950년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을 통하여 이미 현대 사회의 사람들을 ‘고독한 군중’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외로움이 개인적 심리 상태를 넘어 사회적 개입을 필요로 하는 문제로 확대되면서 세계 각국은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내각에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하였으며, 2021년 일본 또한 정부 부처 안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신설하였다. 이외에도 유럽 각국이 다양한 정책을 통하여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해소 문제를 새 정부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의 이유와 원인은 다양하다. 사회적 고립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사회적 고립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고립은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요인에 의해 유발되기도 하지만, 신체적, 정서적, 문화적 요인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적 고립에 대한 대응은 다양한 층위와 방식,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들 가운데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영역이 문화영역이다. 사회적 고립을 촉발하는 요인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러한 고립이 강화되고 고착되는 것은 심리적, 정서적, 문화적 기제와 긴밀히 연관된다. 사회적 고립 극복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고립을 벗어나고자 하는 개개인의 의지와 선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사회적 고립의 공고화가 심리적, 정서적, 문화적 차원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고립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고립 극복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된다고 할지라도 고립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고립을 강화하는 심리적, 정서적 기제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방적 사회정책으로서 생활문화활동
사회적 고립 극복과 관련하여 문화영역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심리적, 정서적 방어기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활동, 특히 생활 속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려 실시하는 생활문화활동은 관심과 흥미에 기반하여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고립을 강화하는 심리적, 정서적 방어기제를 약화시키고, 타인과 자연스럽게 교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데 용이하다. 뿐만 아니라 급속히 변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며, 디지털화되고 개인화된 현대 사회가 사람들을 우울하고 외롭게 만들 수 있는 잠재적 사회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활문화활동은 사회적 고립에 대한 사후적 처방이 아니라 사전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매우 적극적 특성을 갖고 있다.
생활문화활동하는 시민들 ©생활문화플랫폼 ‘문득
사회적 고립을 넘어서게 하는 생활문화활동의 이러한 효과는 관련 연구를 통하여도 확인된 바 있다. 지역문화진흥원 사업을 대상으로 2022년 실시한 한 연구(김세훈 외, 2022)에 따르면, 생활문화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관계망은 문화활동 참여 이전과 이후에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생활문화활동 참여 이전, 참여자들의 관계는 강도가 다소 약하거나 특정 사람과만 관계를 맺고 있거나 친밀도가 다소 낮았던 것에 비해, 참여 이후에는 참여자 간 상호 관계가 전반적 측면에서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일상적 관심사 또한 생활문화활동 참여 전후 큰 변화를 보였다. 이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가족’, ‘건강’, ‘돈’과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관심사는 생활문화활동 참여 전후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반면, ‘동네/지역’이나 ‘이웃’에 대한 관심은 참여 이전에 비해 가장 큰 증가를 보여줌으로써 생활문화활동이 사회적 고립과 같은 문제의 예방/극복에 도움이 됨을 확인해 주었다.
생활문화공동체 사업 참여 이전/이후 비교 © 2022 생활문화사업 성과분석 연구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학자가 『피로사회』라는 저서를 통하여 지적하듯이, 현대 사회는 긍정성의 과잉으로 말미암아 역설적으로 피로를 유발한다. 피로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고독한 군중으로 다중 가운데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때때로 사회적 고립 상태에까지 놓이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때때로 혹은 항상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신의 관심에 기반하여 생활 속에서 이웃과 함께 참여하는 문화활동은 이러한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우리 사회에서 생활문화활동이 사회 자본을 중심으로 특히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 고립 문제에 대한 효과적 대응의 가능성이 그만큼 생활문화영역에서 많이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