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3년 가을호_만나다
만나다 : 사람을 통해 지역문화를 만납니다
문화예술은 처방전이 아니라 면역제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현대인의 ‘중독 라이프 스타일’에 ‘문화가 있는 날’이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손상원 총감독은 “처방전이 될 수는 없어도 면역력은 길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바쁜 현대 도시인의 일상에 ‘선물같은 순간’을 제공했던 ‘문화가 있는 날’이 10주년을 맞았다. 크고 대단한 무대가 아니더라도, 쉼표가 되더라도, 조용히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해주고 일상의 위로가 되었던 ‘문날’, 그 태동을 함께 했던 손상원 총감독은 10주년 행사의 연출도 맡았다. 그에게 ‘문날’의 지난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감독님이 기억하는 ‘문화가 있던 최고의 날’은 언제인가?
‘문화가 있는 날’의 첫 사업단장을 맡아 1년 정도 참여 했었다. 10년 만에 10주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청춘마이크’를 처음 만들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국의 사례를 가지고 와서 우리식으로 바꿔내고, 제목을 결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아직 청년이지만 그들을 대우해주고, 그들의 무대를 소중하게 만들어줘서 공연할 수 있게 해주자는 의도로 만들었다. 공모를 하고 오디션을 해서 그들을 무대에 세웠던 것이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 페스타 총감독 손상원 대표경 ⓒ 지역문화진흥원
- ‘청춘마이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이걸 전국적으로 어떻게 진행하지, 하는 고민이 되었다. 지역의 운영 대행 파트너를 찾기도 힘들었다. 일단 우리가 뭘하려고 하는지 설명해서 대행사를 참여시켜야 하는데, 그 파트너를 구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 우리가 청년일 때는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이제는 청년 예술가를 위한 트랙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그들이 선배들과 경쟁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판단에 따로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한다. 그런 사업의 효시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16 청춘마이크 발대식 단체사진 ⓒ 지역문화진흥원
2016 청춘마이크 발대식 축하공연 ⓒ 지역문화진흥원
- 청년 예술가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식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청년 예술가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은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낚는 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무대를 만들어주고 무대 경험을 쌓고 본인의 레퍼토리를 갖게 해주면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처음에는 1시간 분량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본인의 프로그램을 갖추면 새로운 기회를 만날 가능성이 커진다.
- 그렇게 해서 좋은 원석을 만난 경험이 있었다면?
용산구청아트홀에서 영아티스트어워즈 무대를 만들었을 때다. 역시 오디션 방식으로 선발했다. 경쟁이라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겠지만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아티스트로 존재하는 것이라 아티스트에게는 숙명이다. 그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 중에 유명한 아티스트가 된 경우도 많았다.
2016 문화가 있는 날 청춘마이크 영아티스트어워즈 수상 ⓒ 지역문화진흥원
2016 문화가 있는 날 청춘마이크 영아디스트어워즈 축하공연 ⓒ 지역문화진흥원
- 영국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했다. 그 기획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지하철에서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위해 맥주회사에서 카펫을 무대에 깔아주었다. 그들이 아티스트임을 존중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공연비는 적었지만 그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었다. 연말 경연에서 1등을 한 청년 예술가에게는 여왕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주어졌다. 모두 공평하게 지원하는 방식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렇게 명예를 획득하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청춘마이크라는 무대를 통해서 젊은 아티스트가 빛을 볼 수 있는 구조가 되도록 했다.
- ‘청춘마이크'와 함께 ‘지역 거점 특화 프로그램’ (현 지역문화 콘텐츠 특성화)도 ‘문화가 있는 날'의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모든 지원사업은 지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뉴얼이 공지되고 그에 맞춰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역 거점 특화프로그램’은 매뉴얼을 정하지 않았다. 지역의 거점을 기반으로, 장르를 불문해서, 지역을 특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제출하라, 라는 미션만을 제시했다. 쉽지 않았지만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 신청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막연했을 것 같다.
엄청난 문의전화가 왔다. 지원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물었다. 그 와중에 보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춘천마임축제의 ‘몰아일체’와 같은 프로그램은 치열하게 구성해서 지원한 케이스라서 돋보였다. ‘아 이게 해보니까 가능하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지역에도 좋은 기획자가 많다. 그들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좋은 결과를 도출한 셈이다.
2016 문화가 있는 날 지역 거점 특화프로그램 물화일체 현장사진(1) ⓒ 지역문화진흥원
2016 문화가 있는 날 지역 거점 특화프로그램 물화일체 현장사진(2) ⓒ 지역문화진흥원
- 아직 ‘문화가 있는 날’의 혜택을 누려보지 못한 국민도 많다. ‘문날’의 혜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문화가 있는 날’은 국민의 일상 속 문화향유권 확대를 통한 문화적 삶의 실현을 목적으로 문화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인 ‘문화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문화라는 보편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인 매달 마지막 수요일과 그 주간에 주요 문화시설 가격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유형의 ‘기획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니 함께 즐기시길 바란다.
- 이미 ‘문화가 있는 날’을 누렸으면서도 그것이 어떤 행사였는지 모르고 누린 분들도 많은 것 같다.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야기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냥 문화예술이 거기 있어서 즐겼는데, 알고보니 ‘문화가 있는 날’의 프로그램이더라, 그런 사례가 많다. 하지만 그걸 꼭 각인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에게는 어떤 사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가까이서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면 되는 일이다. 문화예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일이다.
- 일상을 사는 평범한 시민에게 ‘문화가 있는 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 20대 초중반의 청년이 어렸을 때 엄마의 손을 잡고 간 동네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갔던 영화관에서, 여자친구와 데이트했던 고궁에서 ‘문화가 있는 날’의 혜택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선물같은 순간’을 주었다는 것을 되새겨보는 것으로 1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0주년이라고 거창한 것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되새겨주고 싶다.
- 현재는 지역문화진흥원 외 8개 문화시설 협회·기관이 기획사업의 시행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좀 더 특성화 되고 있을 것 같다.
8개의 시행 주체는 같이 동등하게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다들 각각의 개성이 강한 곳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 영역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역할을 나눠 가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
[8개 협력기관]
- ‘문화가 있는 날’의 초반 사업은 상당히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초창기에 기업들이 많이 참여했다. 기업에서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조기 퇴근을 시켜주기도 했다. 기업이 할 수 있는 큰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또한 기업들을 위해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공장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가서 공연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여유가 있어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즐김으로써 삶이 여유로워진다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문화가 있는 날에 동참하는 기업(2014년 8월 1일 기준) ⓒ머니투데이
- 요즘은 ‘문화가 있는 날’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가?
매달 전국의 400개 내외의 영화관, 200개의 공연장과 500개의 전시시설이 관람료 할인 또는 무료관람, 연장개관을 통해 문화가 있는 날을 참여하고 있고 50곳의 문화재과 900개의 도서관도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프로스포츠, 한화리조트 등 민간 협력사와 함께 문화향유의 기반을 마련하여 적극적인 문화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문화시설 연계, 지역 맞춤형으로 기획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약 20,000여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동안 꾸준히 성장했다.
- ‘문화가 있는 날’은 10년 넘게 장수하는 문화예술 정책이고 아직도 텐션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향유자의 힘이다. 우리의 삶이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향유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 이후는 그냥 펼쳐 놓으면 알아서 즐기게 된다. 일상에서 쉽게 문화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 경험하면서 이 정책이 계속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 찾아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중에서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창신동 봉제 골목에 문화도시락을 배달했던 사업이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문화를 함께 배달한다는 개념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빠 죽겠는데 뭐하는 짓이야?’라며 외면하던 분들이 꾸준히 문화도시락을 배달하자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때 큰 보람을 느꼈다.
- 문화기획자들은 정말 바쁘다. 정작 본인이 문화를 향유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감독님은 ‘일 중독’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치유하고 있는가?
맞다. 공연하는 사람이 공연을 가장 못 본다. 공연을 보아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게 되니까 일이 되곤 한다. 의도적으로 보러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일 때문에 공연을 못 보는 것은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니까. 최근 5년 정도는 다양하게 감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만든 공연도 감상하면서 보는 여유가 생겼다.
- 바쁘다는 핑계로 문화예술을 향유하지 못하는 ‘바쁜 현대 도시인’들에게 문화로 쉼표를 찍는 방법을 추천한다면?
문화예술은 보고 감탄하는 ‘느낌표’적인 성격도 있지만 일상의 여유를 갖게 해주는 ‘쉼표’적인 성격도 있다. 바람이 있다면 쉼표가 느낌표가 되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공연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청소년이 좋은 공연을 보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보겠다고 미뤄놓은 사람보다 일상의 쉼표처럼 경험한 사람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 ‘맨날, 만날, 문날(문화가 있는 날)’이 10주년 페스타의 슬로건이다.
문화의 달도 있었고, 문화가 있는 날을 중심으로 문화가 있는 주(2017년)로 확장되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겐 365일 문화가 없는 날일 수도 있다. 매달 하루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이 계기가 되어 매일매일이 문화가 있는 날이 될 수도 있다. 언제나 당신 가까이에 문화 예술이 있다는 것을 환기하는 것이 문화가 있는 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 페스타 포스터(1) ⓒ 지역문화진흥원
문화가 잇는 날 10주년 페스타 포스터(2) ⓒ 지역문화진흥원
-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 페스타 총감독을 맡고 있다. 이번 페스타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면 말해 달라.
10주년 페스타가 열리는 공간인 광화문 일대에서 야외전시를 하려고 한다. 지난 10년을 이야기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즐기면서 10년을 되돌아보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을 지나던 국민들이 ‘문화가 있는 날’의 프로그램을 조금이라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맛 뵈기’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았다. 세종대왕상 뒤에서는 청춘마이크 팀들의 연합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
- 대중문화가 주는 강한 자극에 중독된 현대인에게 ‘문화가 있는 날’이 내리는 처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약을 먹고 감기가 낫는 것처럼 문화가 그런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고 본다. 중독된 현대인에게 문화 예술이 계속 스며들어서 ‘면역력을 강화해준다’고 할 수 있다.
- 앞으로 ‘문화가 있는 날’은 어떤 방향으로 더 국민에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여유가 있으면 보러 간다’는 것은 바로 ‘심리적 거리’를 말한다.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느낀다는 것이다. 더 가까이에, 더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곳에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 페스타 [맨날, 만날, 문화가 있는 날]”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을 맞이하여 2023년 10월에는 문화가 있는 날이
한 달로 확대되어(10월 1일 ~ 10월 31일) 전국적으로 문화가 있는 날 행사가 진행됩니다.
특히, 10월 20일 금요일부터 22일 일요일 3일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 10주년 페스타 및 청춘마이크 페스티벌 행사가 함께 개최되어
공연, 전시 등의 볼거리와 체험, 이벤트 등의 놀거리가 풍성한 행사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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