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소문이라…, 느낌이 어떤가? 솔깃해지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뭐 그렇게 미더운 이야기는 아닐 것 같고, 입에 담아 옮겼다가 괜히 실없는 사람 취급받거나 생각지도 않은 뒤탈이 날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 대놓고 하기는 좀 그렇고, 끼리끼리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지난 3월, 지역의 뜬소문들을 그러모은 범상치 않은 전시가 열렸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부산 영도에서 말이다. 어쩐지 뜬소문이 아닐 것 같은 직감. 그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러 부산 영도로 향했다.
풍덩풍덩, 바다를 온몸으로 품어 안는 영도 아이들 ⓒ 서진영 지형적으로 영도는 상당수의 취락이 언덕에 형성되어 있다. 구불구불 언덕배기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지붕 너머로 그네들 인기척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 서진영 영도 곳곳 흑백 필터를 덧씌우지 않아도 어느 시점에 시간이 멈춘 듯 묵은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풍경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 서진영
바람 잘 날 없는 동네, 영도
본래 절영도(絶影島)라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영도에는 국마장이 운영됐는데 말들이 그림자가 못 따라올 정도로 빠르게 달린다 해서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 자가 조합된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말갈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 바람’ 하는 섬 영도는 요즘 그야말로 바람 잘 일이 없다. 영도라는 지역을 전에 없던 방식으로 아카이빙한 전시 <뜬-소문>의 총괄 운영을 맡은 박지현 크루는 ‘부산에서 가장 덜 변했고,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곳’이 영도라고 했다.
“기록된 역사를 되짚으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영도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한 것은 100년 남짓입니다. 영도에는 토박이라 자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개항 이후 부산항 배후공업단지로 조성되면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산업화 시대에는 미처 원도심에 자리 잡지 못한 이들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부산 내에서도 아주 독특한 ‘이주민의 역사’가 형성된 곳이죠.”
한때 영도는 ‘지나가던 개도 입에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할 만큼 잘나가는 동네였지만 1980년대 들어 조선 산업이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인구 감소, 지역 쇠퇴라는 그림자가 짙어졌다. 영도에서 나고 자란 박지현 크루에게도 이와 관련된 기억이 있다. 영도 밖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분위기상 굳이 영도 출신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영도에 사는 것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이는 박지현 개인만의 경험이 아니다. 이주민의 섬 영도는 줄곧 차별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었고, 가난하다거나 험악한 동네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니 영도가?” 하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쭈뼛쭈뼛하게 되거나 “그래, 와? 내 영도다!” 싸울 듯이 대꾸하게 되거나.
영도사물아카이브 <뜬-소리>의 총괄 운영을 맡은 영도문화도시센터 문화재생팀 박지현 크루 ⓒ 서진영 블루포트2021에서 개최된 영도사물아카이브 <뜬-소리> 전시 전경 ⓒ 영도문화도시센터
터무니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
영도는 현재 부산에서 가장 많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재개발과 같은 물리·환경적인 방식도 있고, 문화·관광 자산을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도 여럿이다. <뜬-소문>은 후자에 해당하는데, 영도에 어떠한 자산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공유하려는 목적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지역의 자원을 축적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도는 박지현 크루의 설명처럼 부산에서 가장 덜 변화한, 그러나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역이니만큼 우리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에 아카이브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영도에서 그 특유의 바람을 체감한 김월식 예술감독은 ‘뜬소문’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기억의 총량이 많은 도시가 행복한 도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도에서도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이 있다면, 그것들이 공유되어 모두의 추억이 된다면 조금 더 재미있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뜬-소문>은 영도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했고, 이를 예술 전시 형태로 구현하였습니다.”
기억이 곧 진실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에서 이야기의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소위 ‘카더라 통신’이라 하는 뜬소문에서도 말이다. “어르신, 옛날에 영도 어땠십니꺼? 영도에 돌고 돌던 소문 같은 거 뭐 생각 안 나십니꺼?” 영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는 것, 그것이 <뜬-소문>이 전개한 영도 아카이브의 시작점이었다. <뜬-소문>은 단순히 기억을 그러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도 사람들의 기억을 들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영도의 ‘터무니’를 그려냈다.
김도희 작가의 <김명태 승천기>. 영도 깡깡이 마을에서 태어난 김도희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 영도의 풍경과 소리를 작품에 적극 반영했다. ⓒ 영도문화도시센터
대표적인 작품으로 김도희 작가의 <김명태 승천기>를 꼽을 수 있다. 작품은 열여섯부터 뱃사람으로 살았다는 김해 출신의 술주정뱅이 할배 김명태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옛 영도 남항동 바다는 달빛 흐린 날엔 어디가 땅이고 바다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칠흑이었다.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갈지자(之)로 다니다가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 얼마나 잦았는지 봉래동 앞바다에 시신 보관하는 장소를 만들었을 정도라고 했다. 그 이야기 틈에 김명태 할배가 있다. 젊은 날 얼마나 고되고도 성실하게 일했는지 평소에도 일본어 선박 용어를 염불하듯 외곤 했던 양반이다. 술 한 잔 걸친 날이면 더욱 청산유수로 목소리를 뺐는데 그 어느 날 또 어디에선가 불콰해진 할배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할배가 진짜 맹태가 될라꼬 그랬는가, 남항동 바다로 돌아갔대이.” 하고 그를 기억한다.
김도희 작가는 이 뜬소문을 듣고 제의(祭儀) 형식의 작품을 구현했다. 먼저 창문을 8폭 병풍으로 삼았다. 김명태 할배가 염불하듯 외웠다는 일본식 선박 용어를 마치 반야심경을 옮겨 적은 여덟 폭 병풍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창문 앞에는 영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소주병을 놓고, 전시실 공중에는 제사상 제수처럼 수백 마리의 말린 생선들을 매달았다. 그리고 자갈치공판장의 경매 종소리를 상여 요령소리처럼 흘려보냈다.
<뜬-소문>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모의하지 않았는데도 ‘진짜야?’라고 되묻기보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런 뜬소문이 생겨났는지를 바라보고자 했다. 자연스럽게 저 바다의 바다 물결처럼, 거센 바람결처럼 일렁일 수밖에 없었던 그네들의 삶을 보듬는 형태의 작품들이 도출됐다. 영도의 터무니는 부러 만들 필요 없이 그렇게 고요히 모습을 드러냈다.
김덕희 작가의 <구르는 배>. 영도 뱃사람들이 출항 전 순항과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쇳가루, 소금, 숯을 뭉쳐 만든 ‘다마’를 굴렸다는 일종의 의식을 관람객들이 함께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 영도문화도시센터 서찬석 작가의 <High and Dry 까닭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영도였건만 결국에 돌아온 한 사내의 시선을 벽화 형식으로 담았다. ⓒ 영도문화도시센터
지역 주민들에게는 낯선 경험, 그럼에도 계속하자는 목소리
<뜬-소문>에는 예술가들이 창작한 작품 외에도 영도에서 수집한 사물을 새로운 형태의 오브제로 형상화한 작품들도 전시됐다. 또한 전체적인 공간 디자인에도 영도의 면면이 반영됐다. 가가호호 대문의 생김새, 방범창 문양, 간판 글자체 등 영도의 골목골목에서 발견되는 시각적 요소를 전시장에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그러니 <뜬-소문>은 영도의 골목을 전시장 안으로 들여와 영도의 기억을 직간접적으로 경험케 한 체험형 전시인 셈이다.
“<뜬-소문>은 외부 기획자들이나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이렇게도 아카이빙할 수 있구나’ 참신하게 다가갔던 반면, 지역 주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 엄청 솔직하셔서 “이기 뭐꼬?”라고 바로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채록과 사물 수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주민들 중에서도 예술 전시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런 아카이빙 작업이 필요하다고, 계속해서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오랫동안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영도이기에 영도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속에 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영도가 좋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들이 있는 거죠. 영도는 섬이라고 해도 부산이라는 대도시의 자치구인데 주민들 간에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끈끈한 유대감이 있어요. 지역에 대한 애착도 크고요.”
이상정 작가의 <상자 안 이야기>. 점점 빈집이 늘어가는 영도다. 그 빈 집 장롱, 서랍 속에서 찾아낸 물품들을 선박 프레임 안에 모았다. ⓒ 영도문화도시센터
<뜬-소문> 전시의 공간 연출에는 영도에서 익숙하게 발견되는 시각적 요소들이 반영됐다. ⓒ 영도문화도시센터
전시 관람객들에게는 <영도 뜬-소문집>이 제공됐다. 작품에 반영된 영도의 뜬소문을 24쪽 분량의 소책자로 정리한 일종의 전시 가이드북이다. ⓒ 영도문화도시센터
영도 사물 아카이브 <뜬-소문> 포스터 ⓒ 영도문화도시센터
<뜬-소문>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영도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아카이브 사업들이 얼개를 짜고 있다. 지난여름 오랫동안 영도 지역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민속, 역사, 건축, 음악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저마다 축적한 내용을 강의 형태로 시민들에게 공유하는 아카데미가 진행되는가 하면, 아카이빙 작업 자체를 문화예술 프로그램화한 영도기록 동아리가 모집됐다. 영도와 관련된 사진, 영상, 메모, 구술 자료를 디지털화할 수 있도록 맡기면 문화예술 활동 또는 생활용품으로 교환해 주는 ‘영도기억전당포’도 마련됐다. 영도 사람들의 언어로 축적된 이야기들이 영도 안에서 계속 회자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지역문화가 형성될 거라는 믿음이 이런 시도들을 가능케 했다.
영도 주민들이 영도기억전당포에 맡긴 사진 ⓒ 영도문화도시센터 영도기억전당포 홍보 포스터 ⓒ 영도문화도시센터 영도기록동아리 모집 포스터 ⓒ 영도문화도시센터
<뜬-소문>은 지역 아카이브에 새로운 물꼬를 튼 프로젝트다. 아카이빙이 단순히 자료를 수집해 디지털화하는 데 그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카이빙은 재창조를 전제로 하는 작업이다. 다소 앞서 나간 것도 사실이지만, <뜬-소문>은 아카이빙과 재창조를 동시에 보여주려 했던 용감한 시도였다. <뜬-소문> 전시를 보고 “이기 뭐꼬?”라고 했던 영도 주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스스로 그들의 이야기를 축적해 나갈지 너무도 궁금해지고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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