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를 말할 때 문화 생활과 문화 행정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그 갈라진 틈을 감지하고, 관 중심에서 벗어나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끄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 거의 모든 지역의 과제이지만, 좋은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이 현장에서 무척이나 빛났던 김해시 남동균 주무관을 만났다. 2008년부터 김해시에서 행정 업무들을 담당해온 15년차 공무원이다.
행정과 시민 사이 ‘말하는 김해’ ‘듣는 김해’
남동균 주무관의 이력은 흥미롭다. 팝 음악지 칼럼니스트 출신에 수필가로 등단한 문인이고, 창원 출신인 그는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김해에 별다른 연고도 없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술과 언어에 대한 소양과 감각이 높고,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2018년에 이동한 부서인 문화예술과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광의의 문화’ 형성을 위한 구조, 관이 아닌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문화도시 사업이 그에게 맡겨졌다. 문화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점의 폭을 넓히는 일. 문화의 정의를 광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기존과는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김해시가 예비 사업 기간을 포함하여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기까지 근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한번 실패도 경험했다. 남동균 주무관 자신조차 기존에 해오던 대로만 준비했음을 통감하는 계기였다. 다시, 도시 전체가 문화도시를 중심으로 굴러갈 수 있는 행정 구조를 모색했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시민이고, 행정은 후원자의 역할을 하는 진짜 구조를 만든다. 환경하고도 접목할 수 있고, 사회적 문제나 경제, 산업과도 연결할 수 있다. 당장 동네의 길고양이 문제라든지, 출산율이나 자살률과 같은 사회 문제라든지, 그 어떤 의제라도 발의할 수 있다.
“어떤 위계나 권위에 의해서 내 생각과 사고가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이야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도시. 그것이 저희가 말하고 바라는 김해입니다. ‘말하는 김해, 듣는 김해’가 문화도시 거버넌스의 대표적인 키워드예요.”
시민의 성금으로 2009년 설립된 김해 시민의 종. 김해시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매해 제야의 종 타종식 행사를 진행한다. ⓒ한새리
김해문화의전당은 2005년에 문을 열었다. 개관 17년 만에 대규모 리모델링 행사를 마치고 지난 9월 4일 재개관했다. ⓒ김해시청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위대한 개츠비>를 쓴 F.스콧 피츠제랄드예요. 그는 ‘남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다른 말로 이야기하라’고 말했죠. 우리에겐 이미 좋은 자원이 있어요. 이것을 다른 말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저 중앙의 어법으로만 이야기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중앙의 어법과 관점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이 하찮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지역 스스로 자기 지역에 대한 열패감을 걷어내고 지역만의 어법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이를 위해 기존의 방식에 익숙해진 ‘관’을 설득시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 또 공무원 입장에서 ‘민원’이라는 낱말에 가둬놓은 시민들을 믿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끄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러한 설득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말과 글이다. 언어에 민감한 남동균 주무관을 주축으로 한 팀은 한목소리로 프로젝트의 핵심을 전달하고,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들을 언어로 말하고 쓰고 공유해왔다. 이 과정은 단순 설득의 단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의 변화, 언어의 변화가 지역 언어의 변화를 만든다고 믿었다.
지난 2020년 JTBC에서 방영된 <싱어게인>에서 준우승을 했던 정홍일은 김해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한국에서 몇 안 되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정홍일은 김해에서 성장하며 뮤지션으로서 힘을 키웠다. 보통 지역을 방문한 스타가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면 그 공간에 대한 예찬과 숭배가 강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단순한 화젯거리로 그칠 뿐, 지역에 지속적으로 힘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로컬은 그러한 경험을 무수히 해왔던 터, 지역에서 자생한 정홍일과 같은 존재를 계속해 화두 삼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해문화의전당에서 만난 남동균 주무관. ⓒ한새리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품은 사람
뮤지션을 포함해 지역 출신 아티스트의 성장과 지속적인 무대가 전시적 성과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 콘텐츠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시선은 남동균 주무관의 개인적인 이력과도 관련이 있다.
“부모님이 음악과 문학 애호가였어요. 덕분에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성장기를 보냈죠. 집에 비틀스, 카펜터스, 롤링스톤스 등의 LP가 잔뜩 쌓여 있었어요. 어릴 땐 그것이 보편적인 문화라고 생각했어요.” 틈만 나면 기사와 칼럼을 해석하고 읽고 썼던 그는 2003년 음악 평론 공모전에서 라디오헤드의 6번째 앨범 <헤일 투 더 시프(Hail to the thief)>에 관한 글이 좋은 평가를 받아 음악글쟁이로 데뷔하게 된다. 그때만 해도 번성했던 팝 음악 전문지들이 이후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따라 안타깝게도 폐간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때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당시 공무원의 인기가 지금보다도 높았거든요. 나인투식스가 보장된다는 ‘편견’도 있었고요. 퇴근 후 글도 쓰고 공연도 보러 다니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가 공무원 시험 치르던 해, 김해는 가장 모집 인원이 많았다. 인재를 필요로 했던 당시 김해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고, 이후 보여준 급성장이 예측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재 김해는 전국에서 광역시를 제외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15번째로 큰 도시다.
설득이란 결국 진정성으로부터 나온다. 프로젝트의 핵심을 나누는 강의 중인 남동균 주무관. ⓒ김해시청
기록으로 뻗어나간 인생의 변화
음악으로 시작된 예술과 문화에 대한 남동균 주무관의 소양은 공무원 임용 후에도 이어졌다. 수필가가 된 것도 공무원 재직 중의 일이다. 2014년 에세이문예사가 주관한 제40회 계간 <에세이문예> 본격수필신인상을 받았다. 출품한 수필 제목은 <인도 위를 걷다>이다. 에세이의 근간이 되어준 오랜 취미인 산책은 현재까지도 글이 되기 위한 생각의 여정을 이끌어주고 있다. 주말에도 프로젝트와 관련된 도시를 방문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자료집들을 훑으며 지역의 좋은 사례들을 공부하곤 한다.
생각을 기록하는 것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회의 참여자들의 말을 기록하고 다시 공유한다. 회의록을 사전에 공유하여 자신이 발언한 부분을 복기하고 새로운 의견을 생각해오면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늘 수첩을 들고 다니고, 스마트폰 메모장에도 카테고리 별로 생각을 정리해 둔다. 업무 메모도 있지만, 작가로서의 영감도 있어서 언젠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갈무리될 날도 고대하고 있다.
남동균 주무관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가는 언변을 구사한다. 또 상대가 무엇을 바라는지 먼저 생각하고 준비하고 설득한다. ⓒ김해시청
“우리가 밥벌이 현장에서 쓰는 글을 통칭해서 보고서라고 한다면, 보고서 역시 독자를 상정하고 써야 되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글은 마음을 쏟아붓기 마련 아닐까요? 독자들이 꼭 이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애쓰게 되는 거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도시를 생각하는 일이라고 여기면 마음을 담은 노동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특히 공공의 영역은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정과 지역을 연결하는 일은 무수한 언어가 오가고 기록된다. 남동균 주무관이 참석한 회의 모습. ⓒ김해시청
집단지성이 쌓는 진짜 문화를 만든다
좋은 문화는 곧 ‘시민력’으로부터 나온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당장 돈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도시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발의한 의제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김해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해석도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사실 김해에 있어서 가야는 매우 소중한 역사적 자원이지만, 뛰어넘어야 할 무엇이기도 하다.
“시민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제 왕의 역사만을 이야기하지는 말자고 해요. 이미 김해는 타 지역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고, 이런 시민들에겐 과거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내 생활의 가치가 필요해요. 다만, 봉건국가가 아니라 연맹체였던 가야국은 서로 싸우지 않고 다른 가치를 존중하고 조율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그 문화 DNA가 오늘날의 김해에 전해졌다고 생각해요. 왕들의 이야기 말고, 이렇게 시민의 역사로 바라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요.”
“순간순간 계속해 아카이빙을 하면서 환류를 하는 거예요. 환류하지 않으면 생각이 고도화되지 않더라고요. 생각을 고도화시키기 위한 장치로 아카이빙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김해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에게 그는 김해의 현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웰컴로42길’를 추천한다. “김해는 경기도 안산 다음으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예요. 김해도서관부터 수로왕릉, 분성광장까지 이어지는 약 1.5km 구간 안에 과거와 현재의 김해가 공존하고 있어요. 다문화거리가 있는 동산동을 포함한 웰컴로42길은 공존과 포용, 이웃을 환대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42’는 가야건국 2천년이 되는 2042년, 너와 나의 사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가치가게는 웰컴로42길에서 공존과 환대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고 실현하는 상인들의 공간이다. ⓒ김해시청
가치가게에 참여하는 업종은 카페나 음식점은 물론 갤러리, 공방, 미용실 등 다양하다. ⓒ김해시청
김해의 새로운 이야기와 관점은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도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요. 문화를 어떻게 시민들에게 전달할까? 그 문화를 만드는 주인공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에요. 정신적인 가치를 심어주는 작업이죠. 가치가 있고 고귀한 일이에요.”
문화는 당장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행정의 변화, 시민의 변화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새로운 지역 문화를 형성하는 일은 어쩌면 몇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살며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쌓아야 한다. 남동균 주무관은 올해 초 문화예술과에서 기획예산담당관으로 부서를 옮겼다. 좀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문화행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백년대계, 혹은 수백 년의 빅피처로 바라보면 그의 몫이 크다. 그는 김해의 공무원이자 시민이고, 아카이빙의 중요함을 아는 성실한 기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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