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 지역에, 현장에, 정책에 묻습니다
삶의 격(格)은 무엇이고, 지역문화의 ‘문화적 행갈이’는 어떻게 바뀌는가?
2023년이 밝았지만,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문화시민으로서 삶의 격(格)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하고, 지역에서 문화적 행갈이를 바꾸려는 재미있는 모색들이 계속되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웃고 즐기며 하는 문화적 행갈이를 위해 어떤 ‘에티튜드’가 필요한지 현장 전문가와 함께 신년 정담(鼎談)을 나누었다.
좌담 참석자 : 고영직 편집위원장(오른쪽), 문화컨설팅 바라 권순석 대표(왼쪽), 영도문화도시센터 고윤정 센터장(가운데) ⓒ 한지희
고영직 위원장
오늘 좌담의 주제가 ‘격(格)’이긴 한데, 아주 어려운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편하게 나누시죠. 우선, 바쁜 연말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권순석
늘 비슷합니다. 여전히 서식지는 춘천이고, 최근 경남을 자주 왔다갔다 합니다. 주어진 일을 하는데,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늘 버거웠어요.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들 때문에 좀 복잡하고 머리가 아파요. 마지막 밀린 원고를 쓰기 싫어서 오는 증상일 수도 있고요.(웃음)
고윤정
참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어요. 2월에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부터 시작해서 여름에 캠프를 진행하고, 가을에 베를린에서 ‘레드 닷’1)상 받고 이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들어 더더욱 ‘리더십’과 ‘경영자의 태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도시센터의 리더로서도 ‘지속가능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문화시민’을 남기는 것, ‘문화적 구조’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직이나 철학이라는 걸 구성했을 때 제가 생각하는 옳은 것이 무엇인가, 원칙을 세워놓아야 선택을 할 때 용이하더라고요. 그래서 2022년은 제 언어를 좀 잡아갔던 시간이었고, 스스로한테 수고했다, 말하고 싶어요.
좌담에 참석한 세 사람은 현장의 전문가로 2022년 한해를 보내면서 리더십과 문화적 구조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 한지희
문화적 구조는 시스템만으로 되지 않는다.
리더(leader)는 리더(reader)여야 한다.
고영직 위원장
‘문화적 구조’라는 말을 들으니까, 레이몬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1988)2)가 ‘감정 구조’라는 말을 하거든요. ‘Structure of Feeling’이라고 하는 것인데, 특정한 시대 특정한 감정은 어떤 견고화된 구조가 있다는 거예요. 하이데거 식으로는 그룬트스티뭉3), 즉 ‘근본 감정’이라고 번역하는데, 20세기 전반에 하이데거는 그것을 ‘불안’이라고 봤던 거고요. 이 감정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거든요. 쉽게 바뀌지 않는 감정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무의식을 바꾸는 일이니까요.
권순석
어제가 창립 기념일이었네요. 2001년에 회사를 만들었으니까 만 22년차에 들어가요. 늘 안정되고 싶다, ‘시스템’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은 조직이지만 분업, 협업 시스템, 그 다음 책임과 권한, 이런 것들이 자리를 잡으면 나는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라는 얄팍한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결국 리더 역할은 또 리더 역할대로 누가 하든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 20년이 지나니까 이것이 시스템만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죠. 문화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싸우기도 하고 논쟁도 하고 계속 합의해 가면서 조금씩 진보해 가는 거지, 역할로만 나눠놓으면 그냥 공장의 기계 같은 역할밖에 더 되겠는가 싶어요. 이쪽 일의 숙명 같은 거죠.
고영직 위원장
권 대표님이 모든 게 시스템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문화라고 할 때 우리는 내용을 생각하지만, 사실 문화의 본질은 ‘형식’이에요. 그 중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형식!
저는 농민의 아들인데, 어릴 때 저희 집에 그 당시 상이군인들이 여럿이 다니면서 구걸을 했어요. 저희 어머니가 그런 사람들을 함부로 쫓지 않고 마루에서 개다리소반에다가 밥상을 차려 줬어요. 그 시대가 품은 문화의 형식, 사람을 대하는 형식이었어요. ‘환대’라는 말도 없던 1975년 무렵인데,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이니, 20대 초반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겨우 40대 초・중반이었던 거죠. 우리 경제 규모가 전 세계 11위,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형식이 지금 더 진화했는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시스템만으로는 되지 않을 텐데,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리더’는 리더(leader)가 아니라 책을 읽는 ‘리더(reader)’라고 합니다, 사람의 업데이트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라서, 꾸준하게 축적해 나갈 때 힘이 발휘될 것 같습니다.
권순석
단어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저는 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았어요.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해외 사례도 많이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지구 전체가 동시대에 모든 것이 다 되는 상황이잖아요. 이제는 근본적인 자기 질문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를 어떻게 해독하고 해석해내느냐, 의미 부여를 어떻게 하느냐가 오히려 더 경쟁력인 시대죠. 그러다 보니까 일상적인 단어에 대해 ‘새로움’이 아니라 ‘새삼스러움’ 같은 것을 느끼고, 스스로 되묻는 거죠. 이게 무슨 뜻일까. 근본적인 의미를 되묻는 걸 최근에 많이 합니다.
고영직 위원장
좋습니다. 김훈 선생님이 ‘늙기의 기쁨’4)에 대해 쓴 글이 최근 저한테 인사이트를 주고 있어요. 늙기의 기쁨이란 ‘동사의 세계가 아니라 형용사의 세계다’라고 얘기예요. 사실 동사의 세계는 ‘보다’의 세계지만, 형용사의 세계는 ‘보인다’의 세계거든요. 그러니까 예전과 똑같은 어떤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는 거죠. 권 대표님이 말씀하신 ‘새삼스럽다’도 형용사의 세계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늙기의 기쁨을 만끽하는 중이랄까요? (웃음)
문화를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바라보면, 그에 따른 적절한 의례가 필요하고, 리더에게는 그 판을 깔아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 한지희
문화적 행갈이엔 공들인 의례가 필요하다
‘대화적 대화’를 위한 리더의 언어 던지기
고영직 위원장
이번 좌담의 타이틀로 제가 ‘삶의 격’, ‘문화적 행갈이’ 등을 제시했는데요,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항상 문화를 ‘내용’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문화는 ‘형식’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축제에서도 의례(ritual)를 잘 구성해야 하죠. 의례는 형식이잖아요. 우리가 문화적인 활동에서 적절한 문화적 형식을 만들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좀 들어요. 행갈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16줄 시에서 14줄을 쭉 붙여 쓰고 행갈이를 해서 2줄을 썼다면, 14줄과 2줄은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의미의 등가성(等價性)이 있다는 거죠. 이렇게 시의 행갈이와 같은 문화적 행갈이가 과연 지금 이뤄지고 있는가?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고윤정
사람이 변화하는 것, 성장하는 것을 좋아해요. 시스템을 구조라고 한다면, 구조를 새롭게 보고, 새롭게 만드는 것을 선호해요. 그러다 보니까. 조직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잘합니다. 내가 원하는 조직에서 정반대로 가고 있는 조직을 딱 찍어서, 그 조직과 거꾸로 가는 방식을 택하죠. 너무 시스템적으로만 굴러가면 사람이 객체화되잖아요. 반대로, 내가 도구가 아니고, 이 시스템을 만드는 주체라고 느껴질 때 조직은 잘 돌아가게 돼요. 어떻게 하면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이 객체나 부속물처럼 느끼지 않고 시스템의 주체로 느끼게 할 것인가가 저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였어요.
저도 고민을 많이 하는데, 좋은 방법을 찾는다면 ‘속도전’이었어요. 분기별로 조직 평가를 하고 변화가 필요한 문제점들에 대한 의견을 받아요. 그리고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당장’ 실행해요. 저희는 점검 회의와 공유 학습형 회의를 진행하는데, 주제를 잡는 것은 제 맘이기도 합니다.
학습형 회의에서 권위 구조를 흩뜨리는 것도 제 독재적 권한이기도 합니다. 문화재단이라고 하면, 말을 하는 사람은 주로 임원급들이잖아요. 하지만 화자를 정하고 마이크를 넘기는 것은 제 마음인 거죠. 오늘은 9월생이 이야기해 보자고 한다든지, 안경 쓴 사람이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한다든지.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는 마이크를 넘기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럽게 진행되기도 해요.
권순석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고윤정 센터장님한테 우리가 농담으로 ‘독재 아니야?’라고 했었는데요(웃음), 사실은 이것이 한 끗 차이인 것 같아요. 그 과정과 결과물이 크게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 것은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의 철학과 방식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다소 원사이드하게 일방적으로 던지는 주제로 보이겠지만, 조직의 목적과 부합되고 고민되는 화두들을 계속 던지고 있으니, 저렇게 토론하는 방식들도 틀리지 않게 진행되는 것이죠.
그것이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계속 아젠다를 세팅(setting)하고 키핑(keeping)해오고 있다가 시의적절할 때 꺼내놓는 거죠. 아젠다를 어떻게 생성해내고 보유하고 가져가는지, 이 부분이 저는 궁금해요.
고영직 위원장
우리가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정하고 그다음에 추진 체계를 짜잖아요. 리더의 역할은 결국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게 중요하죠.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프로젝트’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왔잖아요. 프로젝트라는 말이 라틴어인데 프로(pro)는 ‘앞으로’라는 뜻이고 젝트(ject)는 ‘던지다’라는 뜻이에요. 고윤정 센터장님이 얘기하신 상황에서 리더는 뭘 던지는가 하면, 바로 ‘언어’를 던져야 하는 거죠. 그게 가장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가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제땅말’이라고 써야 하는 이유
일상에 ‘관계의 평상’ 놓기
고윤정
제가 사회학,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그 방면으로 일하다가 문화 쪽으로 분야를 바꿨는데요, 너무 교과서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저는 ‘문화가 사회를 바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많은 경험들을 했는데, 문화적 접근만큼 효과가 큰 것을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어요. 고영직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것이 어쩌면 ‘형식’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면 학교에 사고치는 아이들이 있는데, 학생주임 선생님을 보고 “저 새끼 쓰레기, 보기 싫어요”라고 한단 말이에요. 상담을 해도 안 되고 병원을 데려가도 안 되었는데 효과를 본 프로젝트가 딱 하나, 축구 경기였어요! ‘권위’를 바꾸는 틀을 갖춘 것이 축구 경기죠. 남자 중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동등한 플레이어로서 만나는 축구를 하는데, 경기를 하면서 골을 넣거나 수비를 잘 한 사람들을 칭찬하면서 권력 관계, 서열 관계가 바뀌는 거죠. 축제도 마찬가지였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가장 큰 순간이 축제였는데, 그런 경험 후에 사람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런 것이 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문화의 형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문화예술이 진짜 세상을 많이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크게 하는 것 같아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저와 제 주변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니즈’를 저는 욕구라고 표현해요. 시작은 그 욕구에 대한 질문이죠. 저와 센터 동료들의 고민은 ‘내가 앞으로 뭐 하고 살까?’ 잖아요. 그 질문이 ‘무슨 일을 할까?’로 전환되고, 그 다음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자리인지, 거리인지’를 생각하게 돼요. 어떤 ‘자리’로 가고 싶은 건지, ‘거리’를 하고 싶은 것인지 구분하다 보면 ‘일자리’가 아니라 ‘일거리’로 정리가 되고, 그러면 저는 언어가 한번 바뀌게 되는 거죠.
고영직 위원장
축구 경기 이야기는 진짜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네요. 그걸 ‘관계의 평상’이라고 저는 부릅니다. 우리 삶에 관계의 평상을 놓는 게 중요하다는 건데, 속된 말로 표현하면 ‘관계의 다이다이’라고도 하고요.(웃음)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이런 평상 같은, 새로운 관계들이 나와야 되잖아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가벼운 교류’를 느끼고 서로의 안녕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의 평상들이 생겨나야 하는 거죠. 길거리에 벤치 하나만 있어도, 거기서 가벼운 교류가 일어나면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실제 범죄예방 효과가 커요.
권순석
사전에 ‘격’이라는 단어로 화두를 주셨잖아요. 지난해부터 현장에서 많이 회자되는 ‘제땅말’이 오늘 주제와 가장 닿는 단어였어요. 우리가 흔히 ‘방언’, ‘사투리’ 이렇게 쓰고, 문제의식이나 고민이 없었는데, 경기도문화원연합회 《경기문화저널》에 실린 전고필 선생의 글에서 ‘제땅말’을 보고, 오히려 띵 맞는 느낌이었어요. 그 단어가 주는 힘이 엄청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투리나 방언이 존재하려면 표준어나 중앙의 개념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중앙의 변방으로서의 언어, 그럼 느낌을 알면서도 그냥 스스럼없이 일상에서 써왔는데, ‘제땅말’이라는 단어를 딱 접하는 순간, 다 해결이 된 느낌이었어요. ‘내가 두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의 내 언어’라고 하는 지역의 자기 주도성이 살아 있는 말이잖아요.
‘격’이라는 단어의 뜻을 포털에서 검색해봤는데 딱히 아는 상식선을 벗어나는, 뭐가 없어요. 격은 멋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잖아요. 누가 기준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현재의 결과를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번복되지 않는 것, 즉 문화가 사회 변화에 중요하다, 결국 문화여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관점에서 “문화=격”이라고 생각했어요. 10 중에 9가 갖춰지면 격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가치’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격이라고요.
고영직 위원장(왼쪽)이 던진 ‘격’이라는 화두에 고윤정 센터장(오른쪽)은 특유의 ‘쪼’를 강조했고, 권순석 대표(가운데)는 ‘새삼스러움’으로 답했다. ⓒ 한지희
격이 있는 사람이란? 도시란? 사회란?
시대정신의 부재와 갈등의 사유화
삶의 질이 아닌 삶의 격을 바라보기
고영직 위원장
문화적인 행갈이가 지금 당장 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중요한 거고 삶을 재밌게 살아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제한된 조건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진심으로 얘기하면 ‘한 사람의 혁명’ 같은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고윤정
누군가를 봤을 때 ‘저 사람 참 품격 있다’, ‘격이 있다’ 생각되는 경우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나답게 사는 사람’, 제 표현대로 하자면 ‘쪼’대로 사는 사람이 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나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알고 타인을 아는 사람들’이 품격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격의 의미를 확대해서 도시의 격을 생각해봤어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도시도 그런 성향으로 가겠죠.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고,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 그게 도시의 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영직 위원장
오늘 이야기는 결국 자기 스타일, 자기 공부, 자기 언어의 지점으로 요약이 되네요. 권대표님 이런 토픽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마무리를 지어 주시죠
권순석
저는 ‘격을 만들기 위한 쪼’가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새삼스럽다’라는 표현을 언급했는데, 주변에 있는 것을 읽고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 또한 격이라고 한다면, 그걸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문화정책 이야기도 하셨지만 정부의 기조에 따라 정책이 변화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자기 부정 내지는 과거 부정의 방식의 흐름이라면 결국 이전에 상대가 있는 것이고, 그 상대와 최소한의 동의 및 합의 과정이 있었는가를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인정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슬픈 얘기죠. 그냥 인정하면 되는데,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는 게. 아무튼 그 지점부터 좀 가보면 어떨까 싶어요.
고윤정
오늘 말씀들을 들으면서 나는 또 어떻게 앞으로 살까, 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었습니다. 도시에는 그 도시의 디엔에이(DNA)가 필요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막상 현장에서 부딪혀 보면,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재해석하고 새롭게 보는 것이 더 어렵더라고요.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도시의 DNA를 찾고 살펴보는 것이 더 어렵고, 주목받지를 못해요. 굉장히 많은 설득과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도시에서 아카이브 사업을 해야 됩니다’라고 설득하는 데 3년 걸렸어요.
그래서, 이런 ‘시간’을 보장하도록 정책이 설계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격조, 쪼, 제 멋대로, 멋을 찾아가려면 그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을 지켜봐 주었으면 해요. 안 그러면 단기간에 이슈되는 새로운 것들만 하게 되니까요. 저와 동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아요. 정책에서는 시간을 바라면서도 본인 활동으로는 빛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커서 항상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저 스스로도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고영직 위원장
제가 삶의 격을 고집한 이유가 있어요. 삶의 격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삶의 질’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건 다 자동차가 몇 대고 GDP는 어떻게 되고 등등 경제지표에 대한 거예요. 이제 이런 문화에서 좀 벗어나자는 것. 저는 이제 문화백수 15년차로 접어들었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배, 파도에 흔들리는 배가 되긴 했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제 ‘쪼’를 상실하지도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좀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고, 삶의 격이라는 화두를 몇 년 전부터 생각하게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행갈이가 필요하듯이 문화적인 행갈이가 필요한데, 그것을 만들어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것을 듣고자 했습니다.
권순석
격에 대해 마무리하자면, 사회의 격도 있고, 문화의 격도 있고, 개인의 격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모든 격에는 상대가 있죠. 개인의 격조차도, 내가 갖고 있는 일상과 이상과의 차이, 즉 상대가 있는 거잖아요. 상대에 대한 고민들, 인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안 보려고 하거나 상대를 격한 대립의 전선에다가 자꾸 던져놓잖아요. 아까 이야기하신 시대정신에 대한 문제제기일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문화의 영역 혹은 문화의 역할이 더 커지겠다, 고민을 더 많이 해야겠다, 뭐 이런 생각이 좀 듭니다.
고윤정
저는 뭐 솔직히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요. 어찌 됐든 지역에서, 현장에서 할 일은 ‘편’을 많이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정부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을 하니까 편을 많이 만든다는 것에 좌우 구분이 없는 것 같아요. 2023년에는 지역에서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제 스스로 불편하다고 느꼈던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기업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분들을 더 많이 만나보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에요.
고영직 위원장
어느 순간부터 새해가 됐다고 해서 뭔가 설레고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어찌 보면 반복되는 일상일 수 있지만 권 대표님 말씀처럼 그 일상이 ‘새삼스럽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안목을 잃지 않는 것, 설렘 DNA를 잃지 않는 것, 그게 개인의 멋과 격을 살리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또 지역에서의 일 또한 중앙정부가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그 땅이 어디 날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 손안에 달려 있는 것이고 하기 나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말에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오늘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