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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면 그게 길’, 유진규의 마임 50년
살아 있는 한국 마임의 역사로 불리는 유진규, 그의 몸은 여전히 자유롭다. 그의 늙고 추레한 몸은 시가 되고 연극이 된다. 한번 울부짖기 시작하면 그의 몸은 거침이 없다. 그가 몸을 움직이면 그대로 공연이 되고 어디든 무대가 된다. 오래 수련된 몸에는 ‘예술의 격’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2022년, 그는 마임 인생 50년을 정리하는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 공연을 올렸다. 코로나19 기간에 춘천의 요선시장에서 공연한 실험작이 모티브가 되었다. 요선시장에서 현실과 영화, 무대와 일상이 뒤엉키는 영화 <요선(MIMIST)>은 국내외 영화제에 초대받았다. 요선시장 프로젝트를 통해 춘천의 버려진 시장이 ‘지역의 격’을 높였다.
그가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한 요선시장 프로젝트는 예술이 삶의 격과 지역의 격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 버려진 시장과 늙은 몸은 예술을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춘천 올 로케이션이었던 영화의 완성을 위해 춘천 시민들도 모금으로 힘을 보탰다. 그가 몸을 낮출수록 높아지는 그의 예술은 어떤 고도(高度)에서 세상을 만나고 있는지, 영원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를 춘천의 실험 공간 ‘737포인트’에서 만났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와의 인터뷰는 춘천의 실험 공간 ‘737포인트’에서 진행되었다. Ⓒ 사진가 장성하
요즘이 전성기처럼 보인다. 최근 활동이 활발하시다.
2021년이 50년이었고, 올해는 50주년이 되는 해다. 2020년 겨울에 강원문화재단에 기금 신청을 했다. 원로 예술인 활동 지원이 있었다. 공연도 하고 자료집도 내기로 해서 구술집을 냈는데 코로나가 확산되어 공연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때 춘천 요선시장을 활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60년된 시장인데 폐쇄된 상황이라 코로나를 맞은 우리와, 나이 70을 먹은 유진규와 입장이 같았다. 그 시장을 활용해 공연했다. 코로나 방역 기준에 맞춰 3분에 한 명씩 입장하게 했는데 ‘이 시국에도 공연을 하는구나’ 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극복한 공연이라 더 조명을 받은 것 같다.
코로나에 최적화된 공연이라며 경향신문에서 인터뷰를 하고 전면으로 내주었다. 그것을 예술의전당 유인택 대표가 보고 “이런 분을 우리가 모셔야 한다”라고 직원들에게 얘기해서 갑자기 공연이 만들어졌다. 그 공연이 바로 <유진규 마임 50년,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 공연이다. 이것 때문에 알려져서 여러 지역에서 초청을 받았다.
지금 시대가 유진규의 몸짓을 원했기 때문 아닐까?
사실 리허설 느낌으로 했다. 그렇게 바람을 잡아 놓고 올해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일이 커졌다. 2022년에 50주년을 맞아 춘천에서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를 수정 보완해서 공연했다. 춘천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1981년에 왔으니 41년이 되었다.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 제목이 울림이 있다. 유진규가 걸었던 길이 한국 마임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의 표현이지만, 유진규를 따라오라는 얘기가 아니다. 마임의 길을 걸을 때 내 앞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따라오는 사람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혼도 내고 그랬는데, 결론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해 못하거나, 안 맞거나. 그래서 각자의 길을 가라고 한다.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1972년 판토마임 <억울한 도둑>으로 데뷔했다. Ⓒ 사진가 장성하
유진규가 걸어온 마임 50년은 어떤 길이었나?
1972년에 마임으로 데뷔했다. 그전에는 연극을 했다. 데뷔한 작품이 <억울한 도둑>이었다. 전형적인 판토마임으로 25분짜리 공연이었다. 서양 마임과 다른 우리의 몸짓은 무엇인가 고민한 작품이 <밤의 기행>이다.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1인극제’에 갔는데 거기 일본의 퍼포머들이 자신의 전통에서 끌어내어서 몸짓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우리의 몸짓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에서 <밤의 기행>을 만들었다. 판소리 부채의 발림으로, 우리의 몸짓을 찾아보았다.
유진규의 마임은 늘 실험적이었다.
공연에서 처음으로 말을 한 작품이 <있다 없다>였다. 마임이 꼭 말없이 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왜 공연자는 몸을 다 보여줘야 하는가? 일부만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만든 작품이 <빛과 몸>이다. 눈빛 하나에도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하는데(눈은 마음의 창), 조그만 손전등 하나로 몸의 일부만 비추면서 표현해 보았다.
중간에 슬럼프는 없었나?
1997년 뇌종양이 왔다. 1년을 쉬니까 나았다. 의사도 신기해했다. 몸의 병은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조건 절로 갔다. 거기서 나를 만났다. ‘너 이런 거 왜 생겼어?’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한 달쯤 지나니까 실타래가 한 올 한 올 풀리기 시작했다. 가장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 말로 비수를 날렸더라. 그게 나로 하여금 이렇게 만들었구나. 흘려 넘겼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저런 얘기를 나한테 왜 할까’ 붙들면서 병이 생겼다. 그게 풀리고 나서부터 통증이 사라졌다. 그때 만든 작품이 <빈손>이다. 잡을 때는 잡고 놓을 때는 놓아야, 또 잡으려면 놓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이런 대표적인 작품을 엮은 것이 2021년 작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인데 <모든 사람은 아프다>를 창작해 마지막에 넣었다.
<있다 없다>, <빛과 몸>, <빈손> 등 대표작을 모아 재구성한 작품이 50주년 기념작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이다. <모든 사람은 아프다>는 이 중 피날레를 장식했다. Ⓒ 사진가 장성하
<모든 사람은 아프다>라는 작품은 무엇을 표현했나?
수족관 안에 마지막 남은 광어다. 우연히 그 광어와 아이 컨택트(eye contact)를 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보고 움직이나 싶어서 움직여 봤더니 시선이 따라왔다. 그 광어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 하나가 있고, 지나가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광어가 모든 현대인들의 근원적인 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이렇게 있지 않나. 그래서 그 광어가 되어 입장객을 맞았다. 관객이 입장할 때 누워서 눈만 움직였다. 처음 15분 동안 그렇게 누워 있었다. 작품은 순간의 영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광어를 만나는 순간이 그랬다.
함께 작업한 젊은 예술가들은 어떻게 얘기하는가.
방호복을 입고 하려고 했는데 그들이 벗으라고 했다. 젊은 기획자들이 ‘선생님 몸이 가장 아름답다’고 권했다. 나이 든 몸의 움직임을 본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다고 했다. 오브제는 필요 없으니 몸만 가지고 하라더라. 내가 쓰는 무기들이 해체되는 느낌이었다. 알몸으로 붙어야 했다. 바뀌려고 시도한 것이었기 때문에 따라 했다. 내 ‘주름진 몸’이 섬세한 삶의 결을 표현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즐겨 하신다.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빨리 실감하게 하는 것은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다. 내 작품에는 늘 죽음이 깔려 있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넋이 되어 이어가는 것이다. 죽어도 같이 함께 한다는 것이 나의 생사관이다. 그래서 무속(巫俗)에 관심이 많다. 죽었지만 아직 나에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들이 있다. 껍질이 아니라 무속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죽을 뻔한 고비를 극복한 뒤 자신을 옥죄고 있던 것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작품이 <빈손>이다. Ⓒ사진가 장성하
나이가 들면서 몸을 쓰는 방식이 바뀌었는가.
몸은 나이가 들수록 정직해진다. 뭔가를 보여주려고 힘을 주고 어떻게 보여줄까에 집중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아 그게 그냥 꾸미는 것이었구나. 나의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어느 순간 지나가더라.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삐걱하고, 예전엔 다쳐도 금방 나았는데 이제 안 낫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쁘다. 그래도 이 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대한 나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 이제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마임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다. 우리는 몸을 자기가 쓰고 싶어하는 부분만 쓴다. 특히 얼굴이 그렇다. 이상하고 싫어하는 표정은 안 짓는다. 여고생 대상의 마임 수업을 했다. 여고생들이 아이돌 음악에 맞춰서는 춤을 잘 췄다. 그런데 유진규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서는 춤을 못 춘다. 왜 못추냐고 하면 ‘이 음악에 맞는 춤은 배운 적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몸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게 훈련되어 있다. 드러내는 순간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동물은 안 감춘다.
우리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게 훈련되어 있다는 것은 독특한 발상 같다.
20대 청년 대상으로 프로그램할 때 그런 얘기를 한다. ‘니네가 자리에서 한 번도 안 움직이고 고대로 앉아 있다. 그게 말이 되는 거냐. 동물을 풀어놨다고 치자. 걔네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개나 호랑이나 코끼리도 니네처럼 만들 수 있다. 채찍과 고깃덩어리로 조련할 수 있다. 내 역할은 너희들의 몸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필라테스나 요가 혹은 헬스로 몸을 단련하는 것과 다른 접근법이다.
나에게 몸은 존재의 몸이지 필요의 몸이 아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게 아닌데 그런 몸을 억지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나는 틀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길들여져 왔다. 우리는 몸을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것만 익혔다.
춘천의 요선시장에서 작업했던 과정을 재구성한 영화 <요선>은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사진가 장성하
마임이스트 유진규는 50주년 공연을 계기로 다시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사진은 <한지> 공연 모습. Ⓒ사진가 장성하
장권호 감독의 <요선>은 어떤 인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나?
7년 전에 공연을 하는데 함께 공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찍으러 왔다. 내가 공연하는 것을 계속 찍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다큐를 찍고 싶다고 해서 재미없고 귀찮다고 했다. 그랬더니 단편영화를 찍자고 해서 찍었다. 해보니까 재밌더라.
<요선>은 어떤 내용인가?
내가 공연을 준비하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요선시장 공연 할 때 카메라 놓고 그냥 구경하러 오라고 했다. 시장을 둘러보더니 핸드폰으로 사방을 찍고 다니더라. 뭔가 나올 것 같다고 해서. 그러더니 시나리오를 쓰고 바로 <요선>을 제작하게 되었다. 키워드는 ‘예술가 유진규’인데, 5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면서 생긴 일이 영화의 내용이다.
<요선>에 담긴 유진규는 어떤 모습인가?
장권호 감독이 “선생님을 공연할 때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공연만 하면 이상한 모습이 나온다”라고 하길래 농담으로 “그거 나 아냐”라고 했다. 그랬더니 저 안에 다른 무엇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실제 유진규와 무대 위의 유진규와의 갈등을 그리는 영화를 기획했다. 내가 1인 2역을 한다.
벌써 60주년 공연을 기대하게 된다.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하시면 좋겠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외국의 원로 예술가들과 만났다. 나이 든다는 것이 자기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프랑스에서 온 85세 노인이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현대무용 작품이었는데 인상적이었다. 북유럽에서 온 원로 예술가는 공적 지원구조에 대해 설명했는데 인상적이었다. 원로 예술인도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가 있었다. 노인이 급증하고 있는데 예술가만 대우해달라고 하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기회가 없어진다. 기운도 없어진다. 하지만 의욕은 청년이다. 해왔던 예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춘천국제마임축제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그가 마임으로 요선시장을 환기하자 ‘춘천은 유진규 보유 도시이다’(권순석)라는 말이 다시 나왔다. 이 말에 동의하는 순간, 유진규가 품은 예술의 격은 고스란히 춘천의 격이 된다. 그래서 발현되는 일련의 상승작용은 폐허를 무대로 만들기도 하고, 몸을 악기로 만들기도 하고, 도시의 잊힌 기억을 예술로 형상화한다. 예술이 삶의 격과 지역의 격을 만들어가는 자리에 오늘도 유진규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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