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축제자랑』은 에세이스트 김혼비‧박태하 부부가 K를 찾으러 다녀온 12개의 축제에 대한 여행기다. 그리고 이 글은 지극히 ‘K스러운’ 한 독자의 독후기다.
축제 여행기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는 『전국축제자랑』은 에세이스트 김혼비‧박태하 부부의 언어로 투사되는 축제의 홀로그램이다. 부부의 평소 티키타카를 옮겨 적은 듯 시종일관 유쾌하고 수다스럽지만, 과정은 정교했다. 두 사람의 감성과 통찰로 이루어진 한 권이라, 모든 문장이 이중의 검열을 통과해야 했고, 두세 배의 수정을 거쳤다. 그렇게 탄생한 『전국축제자랑』은 기막히게 재밌고 유익하다. (순서가 중요하다. 유익해서 재밌는 책이 아니다.)
‘현웃’을 보장하는 유머 코드와 재치 있는 말장난에 푹 빠져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지역과 축제에 대한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만나 공감하고, 고민하게 된다. 실은 현장을 어루만지고 돌아온 저자들의 혜안을 직접 듣고자 했지만 부부는 ‘조심스럽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했다. 300여 페이지에 걸쳐 12개의 축제를 물고, 뜯고, 맛보고, 삼킨 저자들이 ‘조심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쉬웠지만 어쩐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축제는 재밌고 쉬운 것이지만, 축제에 대해 말하는 건 용기와 배려가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이 남다른 이유도 거기에 있다.
K를 찾아 떠난 여행용기와 배려가 가득한 『전국축제자랑』이지만, 이 책에도 몇 개의 심리적 허들이 있다. 첫째, ‘K스러움’의 용례에 익숙해져야 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K스러움은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어설프고 키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종종 부부의 대화 주제가 된다는 ‘한국(인), 대체 왜 이런가’라는 질문에서 ‘이러함’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K스러움’인 것인데, 이 신조어는 본문에서 K-퍼포먼스, K-민족주의, K식 교육관, K-자본주의, K-샤머니즘 등으로 무한 변주되기도 한다. 평소에 K-POP, K 방역 등에 실린 국뽕성 K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 책에서 K가 모든 저열한 것들의 대(명사가 아닌)형용사처럼 불쑥불쑥 등장할 때마다 혓바늘처럼 까슬거리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국축제자랑』은 그 불편함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그 ‘K스러움’의 근원을 찾아, 그리고 김혼비의 국내 여행력 상승과 박태하의 뻘쭘 지수 하락을 위해, 정념과 관념이 교차하는 한국의 지역 축제들을 쫓아다녀 보기로 했다.”
불편하고 이상한 것에 직면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흥겹기로 한’ 축제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내와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먼 지방 중소도시의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K스러움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저자들은 총 12개의 축제를 만났다.
의좋은형제축제(충남 예산), 왕인문화축제(전남 영암), 영산포홍어축제(전남 나주), 의병제전(경남 의령), 밀양아리랑대축제(경남 밀양), 음성품바축제(충북 음성), 강릉단오제(강원 강릉), 젓가락페스티벌(충북 청주), 와일드푸드페스티벌(전북 완주), 양양연어축제(강원 양양), 벌교꼬막축제(전남 보성), 지리산산청곶감축제(경남 산청)를 방문한 여행기는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에 연재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책으로 묶였다. ‘코시국’(코로나 시국)의 여행책인데도 쇄(刷)를 거듭해 7쇄에 이르렀다.
어떤 체험, 어떤 고백까슬거렸던 K의 허들을 넘었다면, 두 번째 허들은 너무 옳아서 아픈 지적들이다. 축제를 참여한 경험은 없지만 K스러움에 진절머리가 나는 이들이라면 저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뼈 때리는 이야기들이다. 의병제전(경남 의령)의 ‘부자 기(氣) 받기 투어’를 두고 “이 노골적으로 못생긴 작명을 보는 순간 미학적으로 내상을 입었”다거나, 밀양아리랑대축제(경남 밀양)에서 관람한 <밀양강 오딧세이 공연>이 “‘우리가 왜 짱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을(관련이 없을 것 같으면 ‘관련’의 의미를 무한 확장해서라도) 때려 넣어 보여주면 되는 K-쇼의 척도”였다고 일갈하는 식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아 골라서 옮기기도 어렵다. 물론 반전의 순간들도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진심을 만나게 되면 부부는 솔직하게 자신들의 편협과 오해를 인정한다. 열두 곳의 축제에서 본 거리 행진 중 단연 최고로 기억하게 되었다는 경남의령 의병제전에 대한 저자들의 고백은 이러하다.
애국은 적어도 우리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구린’ 것이었다.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해 온 대부분의 것들이 구렸고,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경우 대부분이 뒤가 구렸다. 그랬기에 축제에 오기 전 김혼비는 마뜩잖았고 박태하는 다소 심술궂었다. 미안했다. 의병 개개인의 삶의 결을 추상적 가치로서의 ‘애국’으로 뭉뚱그려 버리는 게 K-민족주의라면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 어떤 진심들마저 ‘구림’으로 뭉뚱그려 버린 게 우리가 한 일이었다. (81쪽, ‘의령의 진짜 유령은’)
왕인박사 추모 한시 백일장에 참여해 의관을 정제한 채 붓을 잡은 노인들에게서는 ‘이제는 고리타분하게 여겨져 세상으로부터 저 멀리 떠밀려 버린 듯한 어떤 행위를 끝까지 붙들고 모든 것을 쏟아 내는 사람들의 존재는 언제나 우리에게 조마조마한 존경심을 갖게 한다(38쪽, ‘학구 많은 축제 중에서’)’라고도 했다. 그렇다. ‘무언가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로 그 무언가를 귀하게 만드는 것’이다.
‘천진한 잔인함’의 연속이라 읽는데도 용기가 필요할 만큼 아팠던 양양연어축제(강원 양양)는 킬러 콘텐츠라고 하기엔 너무 처참한 킬링필드였다. 특히 맨손 연어잡이 스페셜 이벤트는 “생태적 철학이 부재한 마구잡이식 맨손 잡기에, 그런 와중에도 ‘고퀄’인 기술력에, 로또식 한탕주의까지 뒤섞인 너무나도 K적인 행사”라고 정조준한다. 이유 있는 비판, 적확한 지적, 솔직한 감상이기에 이들이 내는 (가성이 아닌) 진성은 화력 쎈 무기가 되어 답답한 마음을 한 방에 뚫어준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괜찮지 않은 것’ 투성이다.
‘체험’이라는, 교육적이면서도 적당히 모험적인 느낌까지 섞여 있어 어디에 갖다 붙여도 그럴싸해지는 마법의 단어로 포장한들 결국에는 대량 살상 행위의 일부가 되는 체험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일 리도 없다. (224쪽, ‘어떤 체험은 소중하지 않다’)
서글픈 최후의 보루하지만, 시원한 편이 있다면, 서운할 편도 있겠다. 그 미묘한 입장 차이가 세 번째 허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한민국 축제 신(sean)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300페이지 분량으로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이 부족했다거나 전문 인력이 투입되지 않았다거나, 마땅한 장소가 없다거나, 정치적인 계산이 개입되었다거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거나, 하다못해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 등등…, 이유 없고, 사연 없는 축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들을 알기에 부부는 냉정하리만치 찰진 언어로 실망스럽거나 혼란스러웠던 축제를 유희적으로 고발하면서도, 저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도리를 놓치지는 않았다.
특히 경계한 것은 ‘어느 세계에서는 소중한 것은 함부로 재단’하는 일이었다. 그런 조심성을 바탕으로 저자들은 1년 넘게 방문한 축제의 현장에서 집요하고 성실하게 “이 축제는 왜 이런가”라는 문제의식을 키워나갔고, 그 차고 넘치는 노력 끝에 나름의 맥락을 얻었다. 지역에서 축제란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지방 중소 도시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다들 하는 마당에 안 할 수도 없어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뽑아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라고. ‘스산함이 정겨움을 압도하는’ 지방 소도시의 쇠퇴를 목격하고 나면 응원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관람객의 마음이지, 나태한 기획을 방어할 일은 아니다(이건 나의 생각이다). 실패할 수 있는 만 가지 상황과 이유가 있겠지만, 축제는 그런 불가항력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 철저하게 기획되고, 계획되고, 예상되어야 하는 종합예술 엔터테인먼트다. 막걸리잔 너머로 ‘졌(지만) 잘 싸(웠다)’식 위로만 삼키기엔 지역에서 축제란, 너무나 절실한 생존의 대안이다.
축제는 이런 지방 도시들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시도하는 분투일 테지만, 거듭된 축제를 통해 지자체 스스로도 이제 알고 있을 것 같다. 축제를 통해서는 인구 유출을 막는 것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도, 하다못해 축제 자체의 수익을 내는 것도 무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축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불황일수록 그나마 유일하게 노력해 볼 구석이 관광마케팅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288쪽, ‘축제장을 나서며’)
취향과 노력의 세계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쯤 대한민국의 어느 축제 현장에 서 있었다. ‘이게 어떤 면에서 축제인가’ 싶은, 미묘한 감정을 솔직하게 다 옮겨 적을 수가 없었다. 사실 고작 5시간이었던 축제 공연 시간도 다 지켜줄 수 없었다. 이쯤에서 음성품바축제(충북 음성)로 향하는 저자들의 인내와 진정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도시적 감수성에 길들여진 1980년대생의 미학적 기준’에서는 ‘전 영역에서 골고루 미달’한 품바이고, ‘초대형 경로잔치인 건 아닐까?’라는 우려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정리해야 한다며 부부는 1박 2일을 머물며 축제를 관람했다.
품바뿐 아니라 대부분의 축제에서 부부는 정성을 다했다. 김혼비는 와일드푸드페스티벌(전북 완주)에서 와일드푸드파이터가 되기 위해 밀웜과 굼벵이 음료를 마시고 돼지코를 먹었으며, 박태하는 벌교꼬막축제(전남 보성)에서 ‘바퀴 달린 널배 타기’에 참가해 몸소 완벽한 OTL 자세를 시전한다. 이렇게 적극적인 관람객이라니. 지방 소도시 축제에 대해서는 흔치 않은 귀인들이다. 이들이 진심으로 쫓은 끝에 얻은 K스러움에 대한 고백도 옮겨 적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사실은 알고 있었다. 때로는 어설프고, 때로는 키치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혼잡한 열정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우리는 결코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중략) 그리고 우리도 남들 못지않게 거기에 절망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또 때로는 비웃는 ‘K스러움’도 결국은 그 마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29쪽, ‘축제의 힘을 믿든 말든’)
축제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요약하면 대부분 ‘시시할 것 같아서’ 혹은 ‘시시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가 된다. ‘칠순 잔치만도 못한 동네 축제’라는 야박한 평도 쉽게 던져진다. 그러나 철학서를 정독하듯 축제를 참관한 부부는 여행의 끝에서 말했다. “글을 쓰면서 축제 사회자와 공연자들의 어떤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고. 그리고 “응원과 염려가, 기대와 현실이 뒤섞인 갈팡과 질팡 사이에서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이 옴팡 싹텄던 것 같다”고.
좋은 글은 저자와 독자가 함께 손잡고 마음의 허들을 넘게 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전국축제자랑』은 이미 합격선을 한참 넘었다. 적어도 대한민국 축제에 대해서라면,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다르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손잡고 ‘K스러움’의 허들을 넘은 부부도 다음 여행, 다음 축제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축제를 통해 사람을, 세계를 발견하는 이 부부여행자들의 탄생에서 대한민국 소도시 축제에 대한 희망을 본 것 같다. 사족이지만, 이 책은 좋은 여행기의 모범이기도 했다. 너무 좋았다는 강릉단오제(강원 강릉), 지리산산청곶감축제(경남 산청)의 이야기를 보시라고 아껴둔다. 마지막으로 필자들이 축제를 통해 얻었다는 이 세계에 대한 통찰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282쪽, ‘작지만 맞춤한 것들을 만나기 위해’)
그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축제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