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대한 애정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이들은 대개 이러한 의문점에 대한 답을 ‘사람’에서 찾았다. 사람이 사는 도시,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 사람이 어울려 만들어낸 특별한 문화 그리고 그 문화에서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을 찾는 것. 이 논의를 더 깊고 넓게 꽃피우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뭍’에서부터 ‘섬’을 찾아왔다.
도시에 문화정책을 입힌 문화도시 사업‘문화도시’는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하여 지정되는 ‘법정문화도시’를 의미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부터 문화도시 지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사업은 도시의 문화계획을 통한 사회발전 프로젝트(City’s Culture Plan)로 시민이 문화적 삶을 실현하는 사회적 장소로서 문화도시를 육성하고 지원한다. “모든 도시는 특별하다”는 정책 구호에서 느껴지듯 문화도시 사업은 각 도시가 가진 독특한 창의성을 활용하여 문화적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때문에 문화도시에 지정된 도시는 5년간 국비 50%, 지방비 50%를 매칭하여 총 사업비 기준 최대 200억 원의 지원을 받게 된다. 대규모 시설 조성계획이 아닌 ‘지역문화발전 종합계획’을 지원하고, 지역 중심·시민 주도형 도시문화 거버넌스에 초점을 맞추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문화도시 사업은 정부와 시민, 그리고 전문가의 협업 체계가 잘 맞물려야만 추진할 수 있는 가장 ‘문화적인’ 사업으로 많은 지자체들의 목표사업이 되었다.
문화도시는 지정 이후 1년의 예비 사업기간을 거쳐 본 도시로 선정이 되는데, 2021년 현재 법정 문화도시는 본 도시 12개, 예비도시 16개가 지정되었으며, 2021년 8월 현재 4차 예비도시 선정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그동안 문화도시 사업의 지정과 컨설팅을 지원해온 지역문화진흥원이 2021년 6월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한 문화도시 전담기관으로 지정되어 정책의 효과적 추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서귀포, 그 곳에서 ‘관광’ 말고 ‘문화’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문화도시협의회는 전국의 문화도시를 순회하며 정책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 7월 8일부터 9일까지 이틀간 열린 2차 포럼은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의 주관으로 다섯 개의 세션 발제 및 토론 그리고 서귀포시 곳곳의 문화도시 사업지를 둘러볼 수 있어 관광지로서의 제주도 서귀포시가 아닌, 사람이 일구어낸 문화도시 서귀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호응을 얻었다.
특히 하나의 장소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대정읍, 안덕면, 표선면, 성산읍, 남원읍 일대의 마을카페, 모임 공간 등에서 각기 다른 주제를 발제하고 토론하는 형태로 추진되었다. 서울, 부천, 원주, 강릉, 부산, 순천, 완주, 경주, 제주 등 다양한 도시에서 문화도시를 일구어가는 사람들이 참석해 문화도시 사업에 대한 지역의 관심도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거리두기 지침과 방역수칙을 지키느라 많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어려웠고, 마스크를 쓴 상태로 긴 시간 토론을 이어갔지만 누구 하나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의 고민, 도시의 지속성과 목표이번 포럼에서는 도시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유독 눈에 띄었다. 다섯 개의 세션 중 세 개의 세션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도시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첫 번째 세션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지역화와 문화도시」를 주제로 원주시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 제현수 센터장이 발제를 했다. 제 센터장은 ‘SDGs의 지역화’는 지역의 맥락에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아젠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설계하고 이행하며 모니터링하는 과정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SDGs의 기획과 이행은 지방정부가 지역 사회에서 적용한 목표와 세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규정하고, 계획하며,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SDGs의 모니터링은 세부목표의 관련 성과를 지리적, 인구학적으로 자료를 세분화하여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유엔 해비타트회의 주요 의제 및 ‘모두를 위한 도시’의 실현 개념은 곧 ‘모두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 모두에게 적정하고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부여하는 도시임을 강조했다.
세 번째 세션에서도 도시의 지속성에 대해 언급됐다. 주제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생산과 소비,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서울새활용플라자 윤대영 전문위원이 발표를 맡았다. 윤 전문위원은 서울새활용플라자의 주요 활동인 ‘자원 순환 물류체제 구축’, ‘새활용 작은집 짓기 건축학교’, ‘플라스틱 회수과정 교육’을 비롯하여 버려지는 자원으로 만드는 업사이클 제품들을 함께 소개했다.
또한 세계 도시의 기후위기 대응 현황을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쓰레기 방치 현황과 폐기물 발생 현황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특히 2020년 12월 기준 전국 쓰레기 산이 407개에 달한다는 환경부 자료는 세션에 참석한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영국 그린퀸 10대 에코 관광가이드, 제로 웨이스트 여행 등을 사례로 들었는데 프랑스의 오래된 철도역사 ‘라 레씨 클레르’, 영국 음식나눔 네트워크와 독일 그린패션투어, 일본 재사용 나눔가게 패스 더 바통, 스웨덴 새활용센터 리투나 등 다양한 해외 사례를 소개해 문화도시가 사회의 생산과 소비에 문화적인 방식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다섯 번째 세션에서는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s)와 문화도시 성과관리 체계」를 주제로 전북연구원 장세길 연구위원이 발제했다. 장 연구위원은 문화도시 사업에 있어 성과를 점검하는 것은 목표의 설정과 실현을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역공동체, 지역균형발전, 문화의 창의성, 사회혁신 등의 차원에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화도시 사업에서의 성과관리 가이드라인은 모든 도시에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효과성(사업목적 달성)과 영향성(사회기여) 측정지표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문화도시 정책목표가 추상적 목표에서 구체적인 목표로 재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시의 자원 그리고 거버넌스도시의 자연 자원, 고유자원에 대한 토론과 정책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뜨거웠다.
두 번째 세션에서 논의한 「기후 위기, 탄소중립 시대의 문화도시」는 한라산 생태문화연구소 김찬수 소장이 발제를 하였는데, 도시는 자연과 더불어 호흡할 때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제주도 고유의 식물자원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근거를 다양한 자료와 함께 설명하며 자연의 고유 자원이 문화도시에 기여하는 바에 대해 환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네 번째 세션은 강릉시문화도시지원센터의 지금종 센터장의 기조발제로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과 문화도시」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지 센터장은 문화도시와 지역문화진흥계획의 근거법인 ‘지역문화진흥법’이 문화도시와 이를 구성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관점을 더 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문화도시는 문화부 공모사업이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동시에 각 지자체가 추구해야 하는 바람직한 도시발전의 비전, 대안적 지역발전 모델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어 단어 사용의 맥락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 개정은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하며, 문화정책의 수평적 분권, 즉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정부와 민간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신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문화도시 사업은 올해 4차 예비도시 선정과 3차 본도시가 선정될 예정이다. 이는 이 사업이 당초 그렸던 로드맵을 기준으로 2단계, 즉 ‘문화도시 발굴-육성기’의 절반 가량을 지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든 절반을 왔다는 것은 ‘벌써’ 또는 ‘아직’의 갈림길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 포럼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를 고민했다.
벌써 절반을 지나온 문화도시가 어떻게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혹은 아직 우리 도시는 출발조차 하지 못했지만 정책사업은 절반이나 와 버린 이 시점에서 우리 도시의 특별함을 사업화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고민 속에서도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문화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되지 않아도 모든 도시는 문화도시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고, 문화 거버넌스를 통해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문화는 일상이지만, 도시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러한 힘이 모여 있는 것을 사람들은 ‘문화생태계’라고 부르고 이 생태계가 순환을 거듭하면 ‘도시 브랜드’를 창출한다. 그리고 뭍에서 섬으로 온 이들은 이러한 힘이 지역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증폭됨을 잘 알고 있었다. 문화도시는 그렇게 작은 바람에 민들레 씨앗이 흩뿌리듯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넓게 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