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주택 살이 5년 차.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을 이 선택으로 얻은 교훈 하나는 ‘소속감이 소통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주와 동시에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건 형식이었을 뿐. 지금까지 가장 모범적으로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 준 이는 ‘402호 그분’인데, 그의 탁월한 개인기는 집 주변의 소소한 소식을 비둘기처럼 물어오는 것이다. 엊그제 뒷산에 멧돼지가 출연했다거나, 분리수거 배출 요일이 바뀌었다거나, 집 앞에 깨진 유리 조각이 있으니 다닐 때 조심하라 등등. 분명 나도 보았으나 ‘뭐지?’ 하고 지나쳤던 그 유리 조각에 이웃에 대한 걱정이 담기니, 세상 따뜻한 정보가 되어 공동체의 온기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것도 정보가 되나요?커뮤니티매핑을 진행하며 임완수 교수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지하철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폭, 자전거 통행이 불편한 도로, 모기가 사는 물웅덩이 등을 함께 조사하자고 했을 때 참여자들의 반응이었다. 알고 있거나 알 수 있지만, 굳이 공유하거나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정보가 지도상에 정렬되어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임완수 교수의 답은 “세상과 내가 바뀐다.”이다. 친절과는 거리가 먼 뉴욕 시티에서 화장실 걱정만큼은 덜어낼 수 있는 ‘뉴욕 화장실맵’이 있다니, 우선 아랫배가 한결 편안해지기는 한다.
커뮤니티매핑에 대한 간단한 정의는 ‘함께 만드는 공동체 지도’이다. 누군가는 지역에 있는 커뮤니티 현황을 업데이트하는 지도냐고 묻던데, 틀렸다. 커뮤니티는 지리 정보를 수집하는 참여자들이고, 지도에 기록되는 건 그들이 발견한 지역의 문제 혹은 이슈다. 예컨대 ‘집 근처에서 악취가 가장 심한 곳은 어디인가?’를 조사해 지도 위에 시각화하면 지리 정보가 된다. 혼자서 진행하기엔 방대하고 시간도 오래 걸릴 일이지만 커뮤니티가 함께 하면 손쉽게 빅데이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쯤에서 되묻고 싶다.
스마트폰만 열면 정보와 지도가 쏟아지는 세상인데, 지도 레이어(layer) 하나를 보태는 것이 정말 ‘세상과 나를 바꾸는 일’이 될 수 있는 걸까?
커뮤니티매핑 활동을 20년 가까이 지속해 온 임완수 교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리고 그 경험과 사례가 줄줄 이어지는 책이 바로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도, 커뮤니티매핑』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커뮤니티매핑을 선도하는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무엇보다 참여자들의 인식에 배려와 공감이 스며들었을 때다.
피해 가기 바빴던 빈민촌이나 불편함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지하철 등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살펴보니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원인과 문제가 보였고, 함께 풀어내고 싶어졌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을 때다.
지역이 지역을 모른다고요?그렇다면 세상은? 아니, 세상은 접어두고 공동체가 바뀌게 될까? 커뮤니티매핑이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좋은 도구인 이유는 지역의 자산을 발견하고 체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사람들이 정작 지역의 가치를 모른다.’라는 한탄을 쉽게 접한다. 사실은 그게 아닐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공유할 이유가 없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한 지적이 아닐까.
커뮤니티매핑을 통해 서울 삼양동 햇빛마을에서는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옆집 할머니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마을의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변신했고, 아이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얻었다. <학교 가는 길 안전 지도>를 만들며 ‘안전’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되기도 한다. 현장에 직접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참여는 능동적이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채집한 정보를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자녀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처음으로 원망스럽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후기는 훈훈함의 확장판이다.
시민이 만든 데이터는 애초에 기대했던 것 이상이 되어, 시민의 권리를 바꾸고, 시민권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주민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온라인 민원보다, 군청 앞 시위보다 강한 힘을 발휘해 인종 차별, 범죄 예방 등의 사회 문제를 개선하기도 하고, 더 나은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역의 가로등 지도를 만들어 보면 어떤 지역이 소외되고 있는지가 한눈에 파악된다. 공공 데이터의 착시 효과나 한계를 보완하기도 하고, 행정의 변화를 끌어내기도 쉬워진다. 이때 지도는 여러 현상들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툴이다.
모은 정보를 연결하여 지식으로 만드는 일에는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고, 기술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보 기술에 대한 부분도 간과하고 싶지 않다. 특히 지역마다 고령화가 진행되어 있다 보니, 세상이 정보화되고 기술화될수록 지역에서는 격차만 더 벌어지곤 한다. ‘우연에 의해 생겨난 차별이 정보에까지 이르는 세상’이라,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정보 소외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보 소외는 경제적 소외가 되고, 사회적 참여의 소외로도 이어진다.
쓸 일 없다며 카카오톡 설치를 고집스럽게 거부할 정도로 디지털 문맹에 가까웠던 어머니의 봉인을 해제한 것은 성당(聖堂) 공동체의 단톡방이었다. 딸도 아들도 풀지 못한 일을 공동체가 해낸 것인지, 신앙의 힘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덕분에 가족 단톡방도 원활하게 돌아간다.
사실은 ○○○○를 만드는 겁니다문제가 있을 땐 손쉽게 ‘민원인’을 자처하고, 정보란 ‘구하고 받아야 하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회심의 순간에 도달했다. 이제 정보의 프로슈머가 되어 세상을 바꿀 지도 만들기에 착수하기 직전인데, 책의 거의 끝부분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접하게 된다.
“커뮤니티매핑은 누군가가 제공하는 정보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참여 기반의 공동체 만들기이며, 그 매개물로 지도가 개입해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214쪽)”
이럴 수가! 돌고 돌아 커뮤니티매핑의 방점은 정보나 지도가 아니라 ‘커뮤니티 만들기’에 있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불평등하거나 느슨하거나 무력하지 않은지, 커뮤니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커뮤니티매핑은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리빙랩(Living Lab)이나,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시민과학의 방법이자 도구이기도 하다. 즉, 동네 맛집 지도가 커뮤니티매핑이 되려면 공동체의 고민이 녹아 있어야 하고, 지역의 삶을 개선하는 공익적인 목표가 포함되어야 하며, 결과물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티매핑의 주제는 무궁무진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집단지성으로 문제해결 능력이 높아지고, 그 방향성은 정보의 불균형과 차별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사회혁신까지 꾀하는 ‘빅피처’를 향해 있다.
임완수 교수는 커뮤니티매핑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라고 했다. 동의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정보의 환금성(換金性)이 극대화되고 있는 사회적관계망(SNS)이 아니라 마음을 눌러 적은 ‘손편지’에 더 가깝지 않을까. 이웃에게 공감과 배려를 표현하고 싶을 때 메시지 몇 줄과 함께 기프티콘을 보낼 수 있겠지만, 신박하게도! 지도에 적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내게 커뮤니티매핑에 찍힌 정보는 결국 ‘불편했겠습니다, 걱정됩니다. 조심하길 바랍니다.’ 등의 마음으로 읽힌다. 그에 대해 회신하시려거든, 부디 지도에 적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