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것

글 | 이충한 (하자센터 기획부장)
청소년, 청년과 쪼그라드는 미래

나는 하자센터(서울시립 청소년 미래진로센터)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무엇이든, 지금, 하자!’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보니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들이 마주하는 위기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청소년과 청년이 누구인지 말하기는 참 어렵다. 어린이나 중장년, 노년층에 비해 딱히 특징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꾸로 그것이 바로 청(소)년기의 중요한 보편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불확정성’과 ‘가능태로서의 속성’, 즉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인 미래(未來)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 말이다.

그 자체로 ‘미래’인 존재지만,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는 ‘미래가 현재 쪽으로 쪼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미래가 ‘확정’되어있다. 웬만큼 노력해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힘들고, 자신의 힘으로는 평생 집 한 채를 마련하기도 힘들며,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일상을 위협할 만큼 거대한 기후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의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미래라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저 멀리서부터 행사 끝난 레드카펫처럼 둘둘 말려서 현재의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하자센터 제작 영상 - ‘미래의 넌, 어떻게 생각해?’ https://youtu.be/zGpNGmBw9TA ⓒ 하자센터

‘거리두기 사회’가 보여준 미래

하지만 포화된 현재의 무게에 눌려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은 기성세대라고 다르지 않다. 멀리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당장 ‘사회적 거리두기’를 그만두게 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해 제대로 상상해보고 있는가.
이르면 한두 달 안에, 우리 사회도 ‘위드 코로나’ 체계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를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했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하루빨리 그동안 잃은 것을 되찾아야 한다. 그런데 1년 반 동안 날마다 확진자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살다보니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코로나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시간과 리듬의 개념’이다. 국민 대부분이 ‘어제의 코로나 확진자 수’와 같은 단일한 숫자를 향해 매일매일 1년도 넘게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일은 역사상 없던 일이다. 나들이를 가고 싶은 마음들이 높아지면 확진자 수가 늘고 걱정하는 마음들이 높아지면 확진자 수가 안정되는, 마치 SF 애니메이션 속의 네트워크화된 영혼들처럼 서로의 리듬이 동기화(synchronization)된 것도 사상 처음이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공간과 밀도의 개념’이다. 집단감염을 피하기 위해 물질세계, 오프라인 공간의 밀도는 최대한 낮춰져야만 했다. 그렇게 오프라인에서 서로 멀어진 개인들은 디지털 비물질세계, 보통 온라인이나 가상세계라고 불리는 공간에 가까워졌다. 영화관보다 OTT 서비스가, 공연장보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대형 회의실보다 온라인 회의툴이 안전했고,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물론 위드 코로나 체계에 접어들게 되면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오프라인 물질 세계로 쏟아져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물질 온라인 세계가 텅 비게 될 리는 없다. 그 편리함과 가능성을 모두가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물질 중심 경제로의 전환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비물질 인프라와 일의 미래

4차 산업혁명 논의가 나왔을 때 ‘AI와 로봇의 발달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단한 AI나 로봇이 나오지 않아도 비물질 생산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체제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나기 어렵다. 물질 위주의 경제에선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추가적인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자동차 게임만 하고 있는 비물질 경제라면 생산된 게임을 ‘복제’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자리 증가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산업화 시대 정부가 대기업으로 하여금 고용을 직접 창출하도록 윽박질렀던 방식, IMF 이후 일자리가 없으니 자영업을 하라고 부추겼던 방식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젊은이들 역시 일에 대해 다른 상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새로운 일을 상상하고 경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 아버지들의 성공담은 이제 유효기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일하면 내 존재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최소한의 행복감을 가져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 자체의 진로’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폭풍 같은 시대의 변화 속에 자신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청(소)년 사이에서 확산될 수밖에 없다. 불안은 다시 청(소)년들을 포화된 현재 속에 포획되게 만들고, 일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쌓여가지 못한다.

하자센터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사진
하자센터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사진

하자센터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사진 ⓒ 하자센터

미래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다시 돌아와서, 청(소)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그들의 미래는 어떠할지에 대해 묻는다면 지금처럼 정말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둘러앉아 서로 대화하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청년과 일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도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한다.

10년 정도 청년정책의 언저리에서 관찰하면서 훌륭하다고 생각되었던, 그래서 미래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이는 좋은 정책과 사업들은 대부분 청년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대화’의 의미는 단순히 대상자를 배려한다는 측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대화는 파편화된 사회에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에 가깝다.

그래서 앞으로 청년을 위한 인프라는 자신과 세계의 전환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기 위해 최적화된 공간과 시간을 포함해야 한다. 오프라인 상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과 밀착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경계를 넘어 다른 공동체와 접속할 수 있는 비물질 공간이나 플랫폼등의 자원도 필요하다.

하자센터에서 해왔던 일들 역시 늘 청(소)년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늘 대화를 통해 작업을 하고, 작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 즉 서사(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것을 돕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이야기’ 속에 미래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내가 온전히 나인 채로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함께 모여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일 지도 모른다.

여성가족부와 진저티 프로젝트가 함께 한 청년참여 플랫폼
여성가족부와 진저티 프로젝트가 함께 한 청년참여 플랫폼

여성가족부와 진저티 프로젝트가 함께 한 청년참여 플랫폼 ‘버터나이프 크루’ ⓒ 진저티프로젝트¹

이충한
하자센터 기획부장
대학 졸업 후 멋모르고 대기업 브랜드매니지먼트 팀에 취직했다가 26개월 만에 자퇴한 후 드라마·뮤지컬 음악감독, 사회적기업 ‘유자살롱’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 서울시립 청소년 미래진로센터(하자센터)에서 기획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 ‘노오력의 배신(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