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의 노래가 울린다.
복작복작, 어느 마을 시골 장터 가득 젊음이 스민다.
‘청년’이라는 계절이 있다면 아마도 늦은 봄과 여름의 끝자락 그 사이. 다소곳한 꽃잎처럼 피어났다가 한없이 푸르러지는 잎사귀를 닮은 시간. 대전 유성시장 골목 어귀, 청년의 계절을 닮은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을 만났다. 젊기에 더 새롭고 아름다운 그들의 목소리. 예술을 찾고 무대를 기획해 음악으로 시장과 소통하는 청춘마이크의 이야기를 담았다.
낭만적인 이름이다. 청춘마이크.
그렇게 느껴졌다면 정말 다행이다. 조합 이름이 워낙 딱딱해서(웃음). 이번 2021 청춘마이크 기획형 <가는 날이 예술장날>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를 해보자면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에서 청년예술가를 위해 기획한 버스킹 무대다. 전국 100년 지역전통시장 7곳을 선정해 차례로 돌아가며 공연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 기획형 사업이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끝나는 일회적인 공연인 것은 아니다. 버스킹에 참가하는 아티스트들과 조합이 협동해 시장의 특색에 맞는 자작곡을 작곡하고, 그 노래에 어울리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 뮤직비디오는 청춘마이크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구독 그리고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인터뷰 답변을 너무 막 던진 것 같은데, 죄송하다(웃음).
궁금한 것이 많다. 우선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이라는 이름, 살짝 어렵게 느껴진다. 조금 친숙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름만 듣고 딱딱하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미팅이 생겨 나가면 왠지 나이 그득한 중년의 신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구성원이 젊다며 종종 놀라기도 한다(웃음). 바꿔야 하나 가끔씩 고민도 한다. 이름만 조금 거창할 뿐이지, 그냥 대전에서 거주하고 있는 청년 예술인들의 모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연 기획자, PD, 작곡가, 가수 등 음악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모여 만든 조합이다. 예술을 다루는 직업은 시장 자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업계 관행에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때가 많다. 지역 축제를 예로 들어보자면, 계약 자체를 뮤지션들과 행사 주체가 직접 하지 않는다. 중개업자가 행사 주최와 계약 후 뮤지션들을 따로 섭외해 공연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중개업자가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정작 뮤지션들은 적은 출연료를 받게 된다. 그래서 많은 행사를 참여해도, 특히나 젊은 ‘무명’ 뮤지션들은 넉넉한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다. 그래서 생각했다. 지역 청년 예술인들끼리 모여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계약을 맺어 예술가들에게 합당한 수익을 지불하자고. 그렇게 기획하게 된 공연이 바로 ‘가는 날이 예술장날’ 이다.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 청춘마이크의 ‘청춘’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다. 설마 나이?
맞다. 물리적으로 나이, 그러니까 34세 미만의 성인을 뜻한다. 실제로 청춘마이크는 34세 미만의 청년만 참가할 수 있다. 이제 답변에 달콤한 감성 한 스푼 정도를 첨가하자면, 청춘은 지역의 고유 문화와 소통하며 배워가는 이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첨가해 주체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가는 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청춘마이크의 ‘청춘’은 지역문화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아티스트들이라고 생각한다.
왜 하필 시장을 공연 장소로 선택했을까? 청춘과 시장, 둘 사이의 관계가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앞서 언급했듯 "가는 날이 예술 장날"사업은 전국 100년 지역전통시장 7곳을 선정해 차례로 돌아가며 공연한다. 대전 유성시장, 순천 웃장, 정읍 샘고을시장, 진주 유등시장, 영주 풍기 중앙시장, 동해 북평장, 충북 옥천장. 오랜 시간을 거쳐 역사와 전통을 가득 머금고 있는 장소들이다. 깊은 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익어온 시장에는 대중들에게 잊혔거나, 알게 모르게 무뎌진 새로운 문화가 가득하다. 매 순간 새로운 영감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청년예술가들에게는 문화적으로 ‘놀이터’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지역’ 시장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 서울에도 정말 많은 시장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가는 날이 예술 장날"사업의 취지가 지역 청년예술가와 지역 전통시장이 협업해 테마송을 제작한 후 공연을 선보이고, 뮤직비디오와 같은 로컬 콘텐츠를 생산해 지역 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지역’ 문화는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꼬리표를 없애고 싶었다. 대다수의 문화예술 행사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은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지방은 서울보다 문화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라는 꼬리표가 무의식 중에 지역 문화에 따라붙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이 스스로 지역 문화에 대한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역의 오랜 전통을 머금은 시장에 찾아가 젊은 청년들의 방식으로 지역민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전통에 새로운 예술을 입혀 그 결과물을 전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보이고자 했다.
시장을 섭외하는 일이 가장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공연을 기획한 이들이 ‘청년’이고 지역 시장 고객층들은 연령층이 상당히 높다 보니 소통 문제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시장 섭외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공연하려는 시장을 찾아 연락을 하고, 현장 답사를 나선다. 시장 상인회와 간단한 협의를 거치고 공연을 진행하려는 시장 인근 상인분들께 인사를 드린다. ‘사전 인사’가 포인트다. 시장은 글과 종이로 관계를 맺는 공간이 아니다. 직접 얼굴을 뵙고,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 것이 친밀감을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시장이 상인분들의 생계 장소이다 보니, 다소 소란스러운 문화행사를 달갑게 반겨주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장을 다녀보면 지역 시장 상인분들은 시장 활성화에 대한 고민을 상당히 많이 하고 계신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젊은이들이 조언을 구하러 다니고, 방향을 같이 논의하는 것을 어찌나 예쁘게 여겨 주시던지. 가끔 상인분들과 작은 트러블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후다닥 뛰어가 음료라도 사서 드리며 슬며시 웃으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주신다. 처음에는 시장이라 어려울 거라는 편견을 가졌는데, 알고 보니 시장이라 가능한 것들이, 그리고 따뜻한 것들이 많았다.
청춘마이크에서는 주로 어떤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는지 궁금하다. 국악, 클래식, 어쿠스틱, 트로트 등 정말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진다. 버스킹에 참가하는 예술가들의 특성에 맞게 구성이 짜여지니 매번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아티스트들이 다들 처음에는 시장이니까 트로트를 선보여야 하나 걱정하는데, 시장이란 공간은 어떤 장르의 음악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클래식을 연주해도, 어쿠스틱을 연주해도 상인분들이 장사를 하다 말고 나와 춤을 추다 가시곤 한다.
버스킹에 참가하는 청년예술가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는 것인가? 또 참가하는 예술가들의 지역 제한이 있는가?
지역 제한은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34세 미만의 청년, 물리적인 나이. 이것만 충족한다면 작품을 창작하고 표현하는 예술가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선정 기준은 ‘예술가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능이 지역 테마송에 잘 담겨 얼마나 시장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후 선정한다. 지역 테마송은 대전문화산업단지협동조합에서 직접 작곡을 해서 청년예술가들에게 제공한다. 그럼 각 아티스트들마다 본인의 색을 입혀 가사와 멜로디, 템포 등을 편곡해 실제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이다. 공연을 선보인 후에는 지역의 대표적인 여행지에 따로 찾아가 뮤직비디오도 추가 촬영한다. 뮤직비디오에는 시장 브랜드, 특산품 같은 지역의 요소를 잘 녹여 청춘마이크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다. 가끔 여름철 햇볕 아래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지역 어르신분들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한다. 예쁜 얼굴 다 타겠다며 한바탕 호통을 치시고는 시원한 식혜 한 잔 주고 쓱 떠나신다.
시장은 사람이 워낙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관객 유치 걱정은 없겠다. 맞다. 엄청 북적이지는 않지만 오고 가는 많은 분들이 잠시 멈춰 젊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감상해 주신다. 다만 지금은 코로나 시국인지라 비대면 공연 위주로 진행한다. 즉각적인 소통이 없으니 많이 아쉬움이 남지만, 오히려 더 넓은 관객층들에게 지역의 시장과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니까 조금 거창하게 가겠다. 지역문화와 청년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살짝 대학교 입시 논술 문제 같다(웃음). 결국 청년은 지역문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양성과 새로움을 부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양하고 새로움만을 추구해선 안 된다.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지역문화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존을 위해서는 공감이 그 시작점이니까. 지역문화가 뿌리라면 청년은 영양분이다. 이미 단단하게 내린 뿌리에 새로움과 다양함이라는 영양분을 공급해 그 뿌리가 굵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 청년들의 목소리가 좋은 영양분이 될 수 있게 지역문화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지역문화와 청년은 그렇게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