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 지역에, 현장에, 정책에 묻습니다
“제가 이 낫을 놓는 순간,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아름다운 우도의 ‘실경예술’
고흥군 우도의 갯벌에서 마주했던 어느 가을날, 석양의 낙지잡이 광경은 황홀한 충격이었다. 시시각각 화려한 색깔을 쉼 없이 덧씌우며 고요히 저무는 하늘, 광활한 갯벌 위를 느릿한 몸짓으로 나아가는 할매의 실루엣, 그 발걸음을 따라 곰지락거리는 무수한 생명들, 요란한 바닷새들의 떼울음과 그악스런 부리질…. 어떤 화가라야 저토록 장엄한 빛깔을 그려낼 수 있을까. 어느 시대의 음악가가 저 야생의 울림을 소리의 변주로 지어내랴. 대자연의 캔버스 위로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뭇 생명체들을 죄다 동원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행위예술가가 어디 있으랴. 홀로 누리기엔 너무도 과분했던 그날의 감동과 생생한 느낌을 이따금 되새기곤 한다.
우도 낙지잡이 Ⓒ전라도 닷컴
“할매는 허리춤에 ‘다라이’를 질끈 동여매고 갯벌 위를 휘적휘적 걷는다. ‘이 구멍이구나’ 싶으면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갯바닥을 힘차게 파헤친다. 갑자기 팔을 쑤욱 집어넣었다 빼면 영락없이 낙지 한 마리가 손에 들려 있다. 이 모든 동작은 순식간에 일어나고, 얼추 다섯 시간가량 반복된다. 잡은 낙지를 ‘다라이’에 넣고 발걸음을 옮기면 수백 마리 갈매기들이 내려앉아 아귀다툼을 벌인다. 할매가 갯바닥을 뒤집어놓은 바람에 낙지먹이였던 쏙(딱새우)이나 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들이 도로 갯벌 속으로 파고들세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별별 괴성을 지르며 서로를 위협하고 밀쳐내면서 갯바닥을 쪼아댄다. 그러다 멀리 파도 철썩이는 소리 들릴 만큼 짧은 평화가 찾아들고 갈매기들은 다시금 할매 주위를 맴돈다.”
붉은 노을이 번져가고 사방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갯벌에서 벌어지는 이 신비로운 퍼포먼스는 참으로 장관이었다. 사람과 자연의 공생! 인간의 삶의 방식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거대한 공동체를 느낄 수밖에.
‘지역소멸’ 광풍에 사라지는 지역 문화자산들
그러나 우주적 상상력에 가슴이 벅차오르던 장엄한 우도의 ‘실경예술’을 지금은 볼 수가 없다. 할매들은 늙고 병들어 갯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가뜩이나 일할 사람 없는 시골에서 그토록 고된 노동을 대물림할 젊은이들이 있겠는가.
섬마을의 낙지잡이가 끊겼다고 세상이 달라질 게 있으랴 싶지만 그렇지 않다. 더구나 낙지잡이를 둘러싼 온갖 기억들이 귀중한 문화자산으로 남겨지지 않는다면 걱정스러운 일이다.
바닷길 열리면 부리나케 낙지 팔러 가던 오일장의 추억, 어린 자식과 늙은 부모를 위해 정성스레 솜씨를 부려 만들어낸 오만가지 음식들, 징글징글 고된 갯일을 이겨내자며 함께 부르던 노래, 험난했던 세월을 꿋꿋하게 살아낸 낙지잡이 할매들의 숱한 사연들도 시나브로 사라져 끝내 흔적조차 남지 않으리.
“갈매기 군단을 이끌고 유유히 갯벌을 걸어가는 억대 연봉의 행위예술가,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들이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탄성을 지른다. 인터넷, SNS,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 한국의 ‘아름다운 낙지잡이’가 지구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신안군 다물도 마을 주민 Ⓒ전라도 닷컴
우리 시대의 문화란 모든 지역문화의 총합이기에 쇠락해가는 농어촌 지역의 마을문화도 허투루 할 수는 없다. 섬마을의 낙지잡이를 둘러싼 수많은 글과 사진, 영상들이 귀중한 문화자산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 가까운 훗날에는 노을 지는 갯벌에서 지난날 할매들의 낙지잡이를 재연하는 예술가들의 아주 특별한 행위예술이 수많은 관람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잊고 있고, 점점 잃어가는 무궁무진한 지역문화 자산들이 ‘지역소멸’이라는 광풍에 날려 속절없이 사라져서는 안 될 일이다.
가새미역, 마을 역사와 지역문화의 ‘밑돌’
섬으로만 이뤄진 고을 진도군에서도 가장 많은 섬을 거느린 곳이 조도면이다. 154개의 섬이 바다 위에 새처럼 떠 있다 해서 조도(鳥道)다. 조도에서도 가장 먼 바다 쪽으로 끄트머리에 맹골군도가 있다. 맹골도, 죽도, 곽도 등 세 개의 유인도가 올망졸망 정겨운 이웃을 이룬다. 벌써 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섬들을 오가며 보냈던 3일 밤낮의 체험은 강렬한 추억으로 남았다.
맹골군도 섬 돌미역 채취 모습 Ⓒ전라도 닷컴
맹골군도의 섬들을 빙 둘러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하는 한여름이었다. ‘울돌목 다음으로 세다’는 ‘맹골수로’의 물살에 부대끼는 그곳 미역들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지역 특산물이다. 이파리는 죄다 떨어져 나가고 줄기 부분만 남아 있는 모양이 가위를 닮았다 해서 ‘가새미역’이라 부른다. 섬사람들은 밤이든 낮이든 물때에 맞춰 미역을 낫으로 베고 모으는 공동작업을 한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잔뜩 힘을 잔뜩 준 채 버팅기면서 몇 시간씩 낫질을 하는 모습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한낮의 맹렬한 태양 아래서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미역을 채취하고, 가구 수대로 공평하게 분배한 뒤 집집이 네모난 나무틀에 미역을 펴서 말리는 작업이 달포 남짓 진행된다. 맹골도 미역이 워낙 알려진 명품인지라 고생한 만큼 소득이 되기도 하지만 태풍이라도 오는 날이면 그 즉시 작파해야 하는 불안한 생업이다.
“파도가 밀려오는 갯바위에 서서 낫질을 할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 윗대, 윗대 할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제가 이 낫을 놓는 순간 그 모든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돈벌이 얼마나 잘 되기에 해마다 이 고생을 하느냐’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40대 회사원인 그는 1년 동안 쓸 수 있는 모든 휴가를 모아 고향 곽도에서 꼬박 한 달을 보낸단다.
그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인간의 깊이와 태생지를 향한 근원적 소명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결코 40년 인생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수백 년, 수천 년, 아니 수수만 년 긴긴 역사의 끝에 서 있는, 그 유장한 역사를 완성하는 꼭짓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숱한 시간 속에 축적된 가족의 내력이요, 마을의 역사와 지역의 문화를 떠받치는 밑돌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모든 지역에서 저마다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야 할 까닭을 이토록 명징하게 설파하는 그는 잊을 수 없는 스승이었다.
지역문화,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년 동안 애오라지 순정한 시골 어르신들의 삶과 해묵은 마을문화들을 톺아봐 왔다. 그 세월은 도시에서 가공된 현란한 대중문화가 온 나라 지역문화를 야금야금 잠식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시장(市場)의 잣대로 문화의 값을 매겨 오면서 지역마다 인구가 급격히 졸아들고 오랫동안 유지해온 공동체문화의 토대가 허물어졌다.
(좌) 오랜 마을 이야기와 노래가 전승되는 화순군 우봉마을. 외국인 탐방객들이 어르신들과 함께 호박죽을 끓이고 있다.
(우) 신안 흑산도 예리항 수협 공판장. 진짜배기 흑산도 홍어가 경매된다. 홍어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전라도 닷컴
남도에서는 수백 년 된 마을의 풍물굿들이 줄줄이 끊겼다. 누에고치에서 실 뽑아내듯 구성진 사설을 읊던 할매들은 동네 문화교실에서 서툰 몸짓으로 에어로빅을 배우기도 한다. 관광객을 모으고 돈벌이만 된다면 지역과 무관한 구조물을 세우고 축제도 만들고…. 지역 사람들은 문화역량을 발휘하는 주체가 아니라 문화예술의 동원 대상이자 구경꾼이 되고…. 지역은 줏대를 세우기보다 ‘문화도시’라는 허망한 푯대를 향해 쓸데없는 각축을 벌이는 건 아닌지. 한국 문화의 정체성, 전통과 민속의 끌텅이라 할 지역문화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늘 우도 갯벌의 장관, 곽도에서 낫질하던 사내의 이야기를 상기한다. 화순 우봉마을 들노래와 여럿이 나눠 먹던 호박죽, 돈 대신 양심을 좆아 부채를 만든다던 전주의 장인과 남원 부절마을 ‘묏방석’ 짜던 할배들, 진도 소포리 노래방 엄니들, 참혹한 비극을 노래로 삭히던 오월어머니들을 생각한다. 지역문화의 미래를 논하고자 한다면, 이 무궁무진한 문화자산과 예술 현장이 빛나는 한류문화의 본향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반드시 짚고 시작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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