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름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
우리의 범위를 키우면 가능하다.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알리는 무지개다리 사업이 존재하는 이유다.
‘무지개’와 ‘다리’라는 두 단어의 조합에서 다양한 문화와 연결고리라는 의미가 전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정확하게 ‘무지개다리 사업’은 무엇인가?
2012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무지개다리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다양성 정책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간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상호 공존하도록 돕는 사업이다. 정의는 그러하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면 어려울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구성원들의 소통과 교류를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그 수단으로 문화예술을 이용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다소 쉬울 것 같다. 국적, 인종, 성별, 종교, 나이 등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다만, 이 사업명 자체는 내년부터 바뀔 예정이다. 일부에서 무지개다리를 반려동물 장례문화로 오인지하거나, 혹은 무지개 자체를 성소수자와 관련된 색깔로 바라보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는 다소 딱딱하지만 직관적으로 ‘문화다양성 확산사업’으로 명명될 것이라고 알고 있다.
문화예술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이라니, 굉장히 이상적인 것 아닌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이 사업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들을 그저 소개만한 후 무조건 이해해달라고 일방적으로 다가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문화예술적으로 삶에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지개다리 사업이 원하는 방향이다. 심지어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권 내에서도 우리 안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나? 문화예술을 통하면 소통과 교류가 보다 원활하게 가능해진다. 아무래도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서 다양한 공연, 행사, 축제 등을 기획하여 일상 속에서 잘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인 구로문화재단이 이 사업의 주체이다 보니 그 누구보다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로문화재단은 구로구의 문화다양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궁금하다.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은 2021년 현재 전국 25개의 기관에서 주관하고 있다. 구로문화재단은 2013년부터 8년 연속으로 이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익히 알다시피 구로구는 인구학적 특성이 뚜렷한 지역이다. 총 인구 대비 외국인 주민비율이 12.6%(2019년 기준)으로 높은 편이다. 특히 한국계 중국인과 중국인의 거주 비율이 영등포와 안산에 이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인구학적 특징으로 인해 외부에서 보면 지역민 갈등이 빈번하게 야기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큰 문제가 대두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모두가 어울려 살기보다는 각자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딪힐 일이 거의 없기에 갈등도 없다는 게 맞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현시점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미리 문제를 예방하고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려고 한다. 향후 10년, 20년이면 인구 구성은 지금보다 더 다양해질 테니 지금부터 서로의 문화 격차를 느끼지 않도록 다방면에서의 교육이 필요한 셈이다.
우리 사회가 잘 어울리며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문화다양성의 가치 확산이라고 믿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하다. 문화만이 아니라 생각, 가치, 태도, 지식, 언어, 행동 등 어떤 것이라도 서로의 차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있다면, 타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사회의 구성원인 지역 주민이 어울려 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구로문화재단에서 무지개다리 사업을 맡고 있는 나의 입장으로는 ‘우리의 범위’를 크게 확장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은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도 아닌데…”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 결국 우리의 범위가 넓어지면 이해의 성숙도가 확연하게 깊어질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서로의 다름은 줄어들지 않고 끝까지 다를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결국은 ‘우리’이기 때문에 차별이나 혐오 없이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문화다양성을 ‘다문화’의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가?
정확한 지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다양성을 단순하게 ‘다문화’라는 좁은 범위로 한정 짓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실제로 2012년 무지개다리 사업의 시작이 그러하였다.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 새터민 등 새로이 유입된 이주민과 지역 내의 선주민과의 화합과 교류에 많은 공을 들였던 게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구로구 주민의 10% 정도가 이주민이다. 가리봉동의 경우 주민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고. 때문에 구로구는 이들과 관련된 논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몇년 전에는 영화 <청년경찰>이나 <범죄도시>와 같은 미디어로 인해 중국동포사회를 향한 편견과 혐오가 조장되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多)가치포럼’을 진행했다.
각 분야의 교수, 변호사, 교사, 활동가, 동포협회장 등이 토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무지개다리 사업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각색모임’의 경우 관내의 문화다양성 이슈를 책임 있게 모색하기 위한 공공기관의 종사자들의 연구모임으로 구로문화재단의 의도가 지역 사회에 긍정적으로 뿌리내려서 주체적인 모임들이 많이 형성되기도 했다. 만약 무지개다리 사업이 없어진다 해도 자발적으로 행해질 거라는 판단을 할 정도로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럼, 다문화 이상의 무엇이 문화다양성의 가치라고 생각하는가?
문화의 범위는 그보다 굉장히 큰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무지개다리 사업이 다문화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소수문화, 세대문화, 하위문화, 지역문화 등을 아우르려고 애쓰고 있다. 다양성의 대상인 이웃이 장애인이거나 미혼모가정, 혹은 성소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문화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인디영화 상영회를 하는 등 장르로서의 소수문화를 알리는 사업 분야도 확장하고 있다.
연극 단체 ‘묘사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삶은 오뎅>이라는 연극 활동 역시 문화다양성 기반의 문화예술교육의 일환이다. 이러한 이색적이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갖게 되면 창의력도 증진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문화발전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1년 사업에 ‘지구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우리’의 범위를 넓히는 작업의과정으로 보면 되는가?
그렇다. 우리는 결국 모두 같은 지구인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다소 과장되게 광범위해진 듯해도,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화로이 공존하자는 의미 말이다. 그래서 2021년의 주요사업의 명칭 역시 지구인연구소, 지구인실험소, 지구인공작소 등으로 명명했다. 여기에 문화다양성이 있는 날과 문화다양성 주간행사까지 총 5개의 주요 사업 분야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추진하는 <지구인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사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문화다양성에 관련된 다양한 실험을 실행하는 지구인실험소에 <지구인 프로젝트>가 속해 있다. 소수문화와 하위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의 프로젝트이다. 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예술의 주체가 지역 사회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제도다. 이 프로젝트의 하나로서 지난 10월 ‘구로에서 꽃, 피다’가 진행된 바 있다. 의도적으로 사람의 계획에 따라서 식재한 정원수나 가로수가 아닌 자연스레 자리를 잡은 관내의 잡초들을 관찰하면서 이주해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뻗어 내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워크숍이다.
또 하나의 지구인실험소인 <꼬마탐정단>의 경우 어린이의 시선으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로 그 주체가 미래 세대이자 오늘의 시민인 어린이가 되는 것이다. 어린이를 성인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기존 관점의 전환이라고 보면 된다.
구로문화재단에서 진행해온 프로젝트를 듣다 보니 문화다양성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우리가 미처 인지 못했던 일상 속에도 차이와 다름은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 지역 구민들이 조금씩 자연스레 접하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매년 5월 21일 세계문화다양성 날을 기점으로 일주일간 문화다양성 주간 행사를 펼치고 있다. 올해는 ‘문화다양성 책방’ 가족, 어린이, 지구환경, 젠더, 소수자, 독립출판, 직업을 운영하고, 오감의 다양성을 위해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비롯해 채식 소셜다이닝 등 문화예술 포럼과 교육, 체험 프로그램,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결론적으로, 무지개다리 사업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2년 동안 구로문화재단에서 이 사업을 담당해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성소수자를 가까이서 만나고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가졌던 신념마저도 깨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다른 게 없으니까, 결국 같은 지구인이니까. 그만큼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해하고, 그 차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마음과 태도를 키운다면 차별과 혐오는 없어진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이 밖에도 주변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수없이 관찰해왔다. 그렇기에 이 사업의 지향점은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 사업의 역할이 희미해지길 바란다(웃음). 문화다양성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지는 시기, 그것은 곧 우리가 모두 차이와 차별 없이 편안한 상태라는 뜻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