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가기
2020년, 코로나19 라는 초유의 감염병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휘몰아친 전대미문의 해에 자생적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실험적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공모사업이 분절된 사업의 형태로 공모가 진행되어 주관기관 또는 주관단체를 선정하고 시작하는 형태였다면, 본 사업은 사업 간 연결고리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6개의 사업을 하나로 묶어 지역사회에 적용해 보는 통합공모 통합운영 방식의 실험적 사업이었습니다.
사업의 추진 방식도 파격이었지만 ‘인생나눔교실’. ‘문화이모작’. ‘지역문화콘텐츠특성화’, ‘무지개다리’, ‘신중년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 전문인력배치’등의 단위사업을 좁은 범위의 지역(시의 경우 동 단위, 군 단위의 경우 면 단위 등)에 투입해 사업의 대상이 되는 주민들의 문화적 소양을 고취하면서 주민들의 주체적 문화 활동을 진작하고, 문화를 통한 지역 공동체의 가치를 제고하는 동시에 지역 내 문화거버넌스 구축을 이루어 이것으로부터 만들어질 지역문화 활동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어느 때보다도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문화안전망을 만들어 가보고자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지원사업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그 지속력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휘발되는 경우를 목격해 왔었기 때문에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운영 사업>은 그 휘발성을 억제하면서 지역문화 활동의 기저를 단단하게 하고자 하는 굉장히 파격적인 지원사업이라 느껴졌습니다.
답은 현장에
앞서 언급한 6개의 단위사업들은 통합운영 형태 이전에도 이미 다양한 운영 주체들이 사업에 참여해 개별적으로 운영되어왔습니다. 사업 그 자체로 활발하게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같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업들은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지 못하고 서로 유리된 채 추진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통합운영에서는 이러한 사업 간 칸막이를 뛰어넘어 참여자들이 다양한 사업에 연관되고, 이 사업에서 배양된 경험들이 저 사업으로 넘어가 문화 활동이 확대되는 모습이 발견되고 드러났습니다.
많은 사례들이 있었지만 문화이모작을 통해 지역 내 문화 활동을 고민했던 지역주민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단계를 지역문화콘텐츠특성화사업과 결합해 추진했던 경험은 통합공모의 가치를 증언해 준 의미 있는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두 사업의 결합을 염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이어 준 사업 간 인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이모작의 할로윈 플래쉬몹, 환경살리기 플리마켓, 종이집 만들기 퍼포먼스 등에 지역문화콘텐츠특성화 차원에서 고려했던 지역 경제 살리기, 주민과 상인 연계 상생 프로젝트 공연이 더해져 운영된 “송도2동 마을 축제”는 참여했던 주체 모두가 주위의 열띤 반응에 큰 자긍심을 만들 수 있었던 축제였습니다. 날씨까지 도왔던 10월31일 토요일 커낼워크에서의 하루는 지역주민들로 인해 그렇게 특별해졌습니다.
신중년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자가 지역문화콘텐츠특성화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공미술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인생나눔교실의 참여자가 더 적극적 활동을 위해 문화이모작과 결합하고 무지개다리사업의 문화다양성 인식 확산을 위한 주민 대상 사업의 기획 회의에도 참여해 적극 생각을 발언하는 등 여러 개의 단위사업이 시너지를 내고 사업의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는 조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장 활동의 마주침에서 비롯된 것들인지라 충분히 검증된 ‘상황’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 지역, 주민, 생태계
상기의 사례들과 결과가 생성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는 6개의 사업이 통합운영될 수 있었다는 것과 기초 단위 안에서도 더 작은 동 단위로 들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민 문화 활동의 토대를 다지고 지역주민들이 문화 활동의 단순한 향유자 혹은 소비자의 지위에서 뛰어올라 창작자이자 생산자의 지위로 올라선다는 것은 지역주민이 문화 활동의 객체에서 주체로 움직일 수 있는 시민력을 부흥하는 문화도시 정책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화’는 사람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역성을 규정하고 한 지역의 문화 활동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주체가 지역주민이라면 결국 문화안전망 즉, 문화생태계는 주체적 문화 활동을 경험하고 추동할 수 있는 지역주민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너무 자명한 이야기라 새삼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명한 사실을 왜 그동안 무수히 많이 지역에 뿌려진 문화정책사업들에서 길어 올리기가 쉽지 않았을까요?
하나의 답으로 규정하기 쉽지 않겠지만 짧은 식견으로는 과거의 문화정책사업들이 문화적 수혜를 확산시키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문화적 수혜의 경험 또는 예술적 경험은 분명 수혜자 스스로의 문화적 관심 영역을 넓히고 더 능동적인 예술 활동으로 귀결되기도 했겠지만 문화 활동 자체를 스스로 설계하고 구체화하며 이끌어 가기에는 그 추동의 힘이 약했으리라 짐작되었습니다.
필자가 있는 곳이 소위 문화판의 영역에 속해있기에 문화와 예술은 늘 자연스럽게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게 말랑말랑하지 않았습니다. 치열한 현실의 생활에서는 문화와 예술은 삶의 본질적 요구가 아니라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 있기 일수였기 때문입니다. 아주 가끔 공연이나 전시와 문학 작품 그리고 영화와 연극 한 편에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통해 삶을 극적인 열정과 희망으로 고무되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가 끊임없이 자신의 삶 속에서 반추하여야 할 본령이 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주체가 되지 못한 극적 경험은 정말 그 순간이 지나버리면 거짓말처럼 증발해 버리고 마니까요.
일상에서의 문화 활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은 주민 각자의 삶을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테제임을 환기할 수 있는 계기라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맹목이 되지 않기 위한 구체적 실천으로 시도되고 있는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운영의 결과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문화생태계의 필요성과 구체성을 밝혀 간다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은 희망과 남은 숙제
6개의 단위사업을 묶은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운영 사업은 그 자체로 실험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인천 연수구의 통합운영 사업명도 <송도2동 문화자치 리빙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어떤 실험의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사업이었습니다. 특히, 6개의 단위사업들은 태생적으로 각각의 사업이 지향하고 끌고 가야 할 미션이 분명하게 설계되어 있고 반영된 사업이었기에 처음부터 사업과 사업의 연결성을 노정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긍정의 사례들은 같은 시기 좁은 범위를 사업 적용의 대상으로 운영하였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연수문화재단이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운영 파트너로 주민자치력에서 남다른 성과들을 보여 온 주민자치회를 품은 것은 주민자치가 문화주체로서의 문화자치로 빠르게 이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깃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업이 지역사회로 활발히 확산되고 다양한 지역 활동 주민 주체를 발굴하는 것에 있어 큰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칫 주민자치의 위력에 기댄 성급한 성과에 매몰되어 다른 주민 주체 찾기가 등한시되고 게을러질 수도 있다는 경계감이 들었습니다.
2021년 이제 곧 2년 차에 접어들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운영사업’은 사업이 적용되고 있는 각각의 지역적 특성과 상이함을 올해의 사업을 통해 그 성과들을 반영하고 반응하면서 더 특화되고 최적화된 통합운영의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6개 단위사업이 안고 있는 사업 저마다의 유형적 꼬리표와 성격의 경계를 최소화하면서 기존 단위사업 공모의 설계로부터 자유로운 통합운영만의 지역 맞춤형 사업 기획이 더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생태계’ 조성은 아시다시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는 긴 호흡이 요청됨으로 생태계 사슬의 가장 밑바탕이 될 사람을 키워 오랫동안 그 지역에 남아 문화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을 통해 지속 가능한 주민 주체 문화 활동을 꿈꾸는 본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운영 사업이 실험 끝에 문화자치라는 든든한 가치를 만드는 문화정책으로 우리 곁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